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 웨이보 인싸 @하오선생의 마음치유 트윗 32
안정병원 하오선생 지음, 김소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어차피 사람은 모두 한 권의 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읽어도 이해 안 되는 사람이 있고,


계속 읽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중에서



예전과 달리 '정신과'에 대한 많은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디서도 쉽게 접할 수 없어 일반인들로서는 알기 어려웠던 영역이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정신 치료'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는 탓에 부정적인 이미지는 쉽게 벗겨지지 않지만, 자신의 투병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는 수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손길을 내미는 의료계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하여금 이 이미지도 머지않아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는 꽤나 흥미로운 책이다. 중국 안정병원의 정신과 의사이자 SNS 웨이보의 인기 블로거인 하오 선생의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은 그가 안정병원에서 근무하면서 10년간 경험한 것과 5년간 정리한 것을 3년에 걸쳐 글로 탄생시킨 첫 책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바라본 병원의 일상을 보여주며, 자신이 만난 환자들이 가진 내면세계를 펼쳐낸다.



나는 매일 펑위와 같은 환자들을 만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현실에 대한 괴로움으로 심리적 억압과 우울, 절망을 겪고 있으며 자신을 믿지 못하고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두운 구석에 혼자 고립되어 있곤 했다.



'정신병원에는 어떤 환자들이 찾아오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에 하오 선생은 생생한 시선으로 전해준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우울증, 불면증 등등 정신적 문제를 떠나서 다양한 사례의 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 과정 속에서 정신 질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로서는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하오 선생의 인간적 면모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유쾌하고 재치 있게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해내는 하오 선생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마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 속 이라부 선생을 보는 듯하다. (물론 하오 선생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다!) 이라부 선생처럼 의사라고 믿기지 않을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비슷해 보인다. 단순한 '환자'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때로 농담을 던지거나 진심을 다한 조언을 하며 '친구'같은 모습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을 그런 딱딱한 이미지가 아닌 친근하고 재치 있는 의사로서, 하오 선생은 환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의사로 느껴질 수밖에.





나는 더 이상 펑위를 나무라지 않았다. 병의 고통이 가져오는 '해방'에 대한 갈망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환자들은 병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때, 특히 희망, 이를테면 치료에 대한 희망, 삶에 대한 희망, 생명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죽음을 일종의 해방으로 여긴다. 이건 마치 감기에 걸리면 재채기가 나오는 것처럼 병으로 인한 것일 뿐, 우리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해하고 있는 '자살'과는 다르다.



중국 소설이나 에세이는 개인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편이다. 어딘가 한국 정서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생활상과 문화를 반영한 유머러스한 표현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는 SNS 웨이보에 그가 작성한 글을 엮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꽤나 재미있는 표현들이 돋보인다. 하오 선생만이 가진 특유의 유머들이 글 속에 자유롭게 퍼져 있달까.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표현들이 문화적 차이로 마음껏 음미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사실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정신 질환을 안고 살아간다. 하오 선생의 유쾌한 글 속에 있는 환자들이 전부가 아닐뿐더러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 남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으로 밤잠 이루지 못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와 같은 책들이 자주 사람들의 눈에 띄길 바란다. 하오 선생이 만났던 일부의 환자들처럼 정말 대화로 가볍게 풀릴 수 있을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신 질환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는 것처럼 우리 몸이 아픈 것일 뿐이죠. 우리가 정신 질환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정신 질환 환자들을 좀 더 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자신의 병을 마주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정신 질환 환자들에게도 귀여운 구석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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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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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화자는 매우 중요하다. 독자들은 소설의 중심이 되는 사건을 화자를 통해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 가까운 독자에게 화자는 믿어야 하는 존재,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자리한다. 하지만 때로 짓궂은 작가들은 이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소설의 묘미로 만들어 내는 창작 기법을 사용한다. 만약 화자가 독자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화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믿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선택의 길에 놓인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뉴욕타임스> 43주 베스트셀러인 《우먼 인 윈도》는 독자 스스로 자신에게 이러한 물음들을 끊임없이 던지도록 만든다. 이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A.J.핀은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소설의 재미를 끌어내고자 한다. 어딘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화자를 내세우며 A.J.핀은 독자들에게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주인공 애나의 시선으로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을 세세하게 지켜보며 그 속에서 숨겨진 트릭을 찾는 임무가 주어지는 셈이다.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일까? 나는 수족관의 담수어 같은 표정으로 일상적인 점심시간의 풍경을 얼빠진 듯 바라보는 여자일까? 새로 생긴 식료품점이라는 기적에 놀라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방문객일까? 얼어붙은 머릿속 깊은 곳이 지끈거린다. 화가 난다. 완패한 기분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애나의 이웃집에 새 가족이 이사 오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애나는 카메라를 통해 이웃집을 살펴본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아이 하나. 단란해 보이는 세 가족의 모습에 애나는 눈을 쉽게 떼지 못하고 그들에게 매료된다. 특히 아내인 제인 러셀에게.


어느 날, 이사 온 기념 선물이라며 양초를 들고 이선이라는 남자아이가 찾아온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나가 궁금해했던 제인 러셀이라는 여성도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와인을 마시고,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내며 애나는 제인 러셀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며칠 후, 러셀 가족의 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카메라로 확인한 애나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가슴에 칼이 꽂힌 채 도움을 요청하는 제인의 모습을 보게 된 애나는 급히 119에 연락을 한다. 제인을 도와야 된다는 생각으로 트라우마를 무시한 채 집 밖으로 뛰쳐나간 애나는 곧 정신을 잃게 되고, 깨어난 그녀에게 경찰은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한다. 과연 애나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건 당신들이야."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마법 지팡이를 휘두른다. "상상은 당신들이 하고 있다고. 저 창문을 통해서 피범벅이 된 제인을 봤어."



《우먼 인 윈도》는 제인 러셀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게 된다. A.J.핀은 두 부분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속도감으로 전개하며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이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주인공인 애나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녀의 생활을 낱낱이 묘사한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녀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하는 일상적인 루틴들을 세세한 묘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들이 이 인물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후 제인 러셀의 죽음이라는 소설의 가장 큰 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오로지 애나의 시점으로만 사건을 바라보아야 하는 독자들은 진실과 거짓, 현실과 망상이라는 그 두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하며 소설을 읽어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까지 독자들은 긴장감을 놓지 못한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모든 게, 저 사람 부인, 저 아이의 엄마가 칼에 찔리는 걸 본 순간 시작됐다고. 그게 바로 당신들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야. 그게 바로 당신들이 묻고 있어야 할 질문이라고. 나한테 내가 보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마. 내가 본 게 무엇인지는 내가 아니까. "



사건의 진실은 화자의 입을 통해 알 수 있다. 작가가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짓궂은 트릭으로 사용한다고 하여도 그 끝에는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의 끝에 애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진실을 들려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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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 여행 갑니다
김비.박조건형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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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를 거슬러 앞뒤가 뒤바뀐,


우리의 여행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지쳐버릴 때,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난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먼 해외까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의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지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그곳에 있을 나를 상상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여행 이야기가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로 부부만의 일상을 그리고 쓰며 기록한 일상 드로잉 작가 박조건형과 소설가 김비의 여행 이야기도 다른 색으로 시작된다. 우울증, 뇌종양, 비자발적 퇴직…. 어는 것 하나 지독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지만, 그 여느 때보다 평온했던 두 부부는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무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가벼운 삶을 살았으니, 가벼운 여행을 선택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42일 후 현실로 되돌아갔을 때, 어떤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와 나는 다시 또 그곳에서 그렇게 일상이라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테니까.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에서 보여줬던 그대로 박조건형 작가는 그림으로, 김비 작가는 글로 여행을 담아낸다. 같은 여행을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길을 잃어 여행 갑니다》 책 한 권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보여주었던 사랑은 낯선 여행지에 놓인 두 부부에게 더 애틋하고 서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더 커져만 간다.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서로를 다독이고 이끌어가는 두 사람의 여행은 보는 사람도 부럽게 만든다.



여행하는 시간 자체가 온통 선물이구나. 파리는 우리 두 사람을 설레게 하고, 놀라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든, 어떤 궁지로부터 도망쳐 왔든 상관없었다. 서로 다른 빛깔과 무게로 우리를 감싸고 있던 그 모든 시간의 숨결 하나하나가 우리를 축복하는 것만 같았다. 여행의 포근한 품속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여행에 언제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장기간의 여행이 계속될수록 '집'은 꽤나 그리운 장소가 되어간다. 친구와 떠난 일주일 간의 베트남 여행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이곳에 오면 행복하고 재밌는 순간만 가득할 것만 같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쁜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편안한 마음보다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으니. 여행도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으로.


《길을 잃어 여행 갑니다》 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그런 '집'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꼭 좋았던 순간만 남기는 것이 여행기의 전부가 아니란 듯이, 두 부부는 그들이 도망치듯 떠나왔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친다. 여행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누구나 지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두 부부의 이야기는 가감 없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 여행의 모든 순간이 낭만적인 것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또, 조금은 웃긴 게 그마저도 여행이니까 떠나고 싶도록 만들기도 한다.



떠날 수 없을 때 떠나지 못하는 마음은 돌아갈 수 없을 때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과 어쩌면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도착점과 출발점은 정반대의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똑같은 곳을 의미하는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여행은 시작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일상을 떠나는 설렘과 더불어 돌아오는 길엔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두 부부가 보여줬던 것처럼. 그리고 머지않은 시간에, 나 역시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소소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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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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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는 항상 딸이 먼저였는데

자식은 언제나 자신이 먼저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부모님은 늘 나를 먼저 챙겨주셨다. 아니, 어쩌면 머리가 자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 지금도 엄마, 아빠 눈에는 여전히 나는 서툴러 보이나 보다. 여전히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계시니. 못난 딸은 그런 마음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가끔 겸연쩍은 듯한 미소로 내게 무언가를, 그러니까 대체로 젊은 내가 더 잘 아는 것들에 대해서, 부탁해오실 때마다 귀찮단 뜻을 가장 먼저 내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못난 짓 하나를 더 해버린다.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이렇게 못난 짓을 해버린 나에게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끔 만든다. 임희정 아나운서는 이 책을 통해 짙고 깊은 마음 이야기들을 고백한다.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해 그녀는 그동안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독자들에게 내비친다.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에는, 그녀의 부모님이 계셨다.



그러다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면 이내 정확한 내 이름 석 자와 오빠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아들과 딸의 이름은 정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함께 그 이름들만큼은 바르게 쓰고 싶으셨을 것이다. 자식의 이름만큼은 여러 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해 쓰셨다.



자신이 있기까지 그 위에는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부모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어스름한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노동을 하고 돌아와 누구보다 일찍 잠드셨던 아버지의 삶부터 가족들을 위한 밥을 짓기 위해 수 천 번의 쌀을 씻었던 어머니의 삶까지. 임희정 아나운서는 자신이 보고 느꼈던 부모님의 삶을 특별하게 써 내려가지 않는다.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그들의 삶 일부를 그저 자신이 보고 느껴낸 대로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여전히 자식으로서 느낄 수 있는 부모의 삶, 그만큼을.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이 오로지 임희정 아나운서만의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는다. 나의 부모, 독자들은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는 순간, 저자 부모의 삶에서 내 부모의 삶과 마주한다. 내가 이제껏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혹은 비슷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의 먹먹함은 가슴속에 멍울이 맺히도록 만든다. 오늘은 부모를 끌어안고 이 멍울을 터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엄마는 생각이 아빠와 딸 둘뿐이었지만, 나는 생각이 나 하나뿐이다. 둘도 못 된다. 그래서 나는 자식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아, 나는 어쩌면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곱씹으며 페이지를 넘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인들에게 '주 중 행사'라는 별칭을 붙이며 이야기할 정도로, 엄마와 목욕탕을 자주 갔다. 탕 속에서 몸을 불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등을 밀며 살갗을 맞대는 시간이 좋았다. 집을 나와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와 목욕 가기는 꽤나 힘든 일이 되었다. 그래서였는지 얼마 전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다녀온 목욕이 무척이나 좋았다. 서로 살을 문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딸의 살갗을 자주 만지거나 밀어주거나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어릴 때의 자식은 온몸을 만져주고 토닥여주어야 커질 수 있었는데, 어느덧 자신의 몸보다 더 넓어지고 길어진 딸의 몸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엄마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나는 다 커버린 후 엄마의 쓰다듬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어졌다.





자식으로 어떻게 부모의 큰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사랑의 크기는 내 곁에 부모가 없어지고서야 큰 슬픔으로 깨달을 지도 모른다. 슬픔으로 깨닫기보다는 웃음으로 그 사랑의 크기를 알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어려운 건 왜일까. 그래서 여전히 못난 딸은 오늘도 '자식'이 아닌 '웬수'가 되어간다. '이 못난 딸을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결코 그 순간을 놓치질 않길 바랄 뿐이다. 나도 겨우 자식이 되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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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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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알려 주고

서로 위로하고 싶었다.

《사기병》 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질 때가 있다. 정신없이 모든 신경을 그 일에 쏟아붓고 나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게 꽤나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나를 이렇게 무너뜨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또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하물며 그런 사소하고 작은 일조차도 내 일상이 평범해지는 것을 방해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큰 병이 있단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어떤 기분일까?


인스타그램에서 누적 5천만 뷰의 화제작 《사기병》 은 그림책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다 어느 날 갑자기 위암 4기를 선고받은 윤지회 작가의 투병기를 담은 책이다. 암을 선고받았던 그 순간부터 1년의 이야기를 윤지회 작가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그려낸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과 같은 암 환자들에게 항암 일기를 써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사기병》 은 솔직한 투병 이야기를 풀어낸다.






살아야 한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암 수술 후 투병 생활이 시작되면서 윤지회 작가는 과거가 되어 버린 일상을 떠올린다. 두 돌 된 아기의 엄마이자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고 무민 캐릭터와 SF 영화를 좋아하며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즐겨 하고 아이를 재우고 웹툰을 보면서 피로를 풀며 호러 영화나 공포 영화는 못 보고 동물 학대와 장 보기를 싫어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군가에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병에 의해 정해진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혹자는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도록 해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말하는 이도 알 것이다. 그래서 《사기병》 속의 투병기가 더욱 강해 보이는 이유다. 버겁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어쭙잖은 위로의 말씀이 때로는 더욱 상처가 된다는 솔직한 고백 때문에.








그녀가 투병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아들 반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선고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아들이었던 윤지회 작가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아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간다. "아들이랑 야구장 가기", "아들이랑 워터파크 가기", "아들이랑 내 그림책 읽기", "아들 초등학교 보내기" 등등. 그리고 아들과 보내는 일상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어쩌면 투병 생활은 환자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지회 작가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오늘도 그녀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으니. 항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고, 암이 또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때로 기절을 하거나 속을 게워내게 되어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사기병》에서는 가족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진다.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심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있기에 단단해질 수 있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그것만으로 《사기병》 은 감사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윤지회 작가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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