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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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는 항상 딸이 먼저였는데

자식은 언제나 자신이 먼저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부모님은 늘 나를 먼저 챙겨주셨다. 아니, 어쩌면 머리가 자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 지금도 엄마, 아빠 눈에는 여전히 나는 서툴러 보이나 보다. 여전히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계시니. 못난 딸은 그런 마음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가끔 겸연쩍은 듯한 미소로 내게 무언가를, 그러니까 대체로 젊은 내가 더 잘 아는 것들에 대해서, 부탁해오실 때마다 귀찮단 뜻을 가장 먼저 내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못난 짓 하나를 더 해버린다.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이렇게 못난 짓을 해버린 나에게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끔 만든다. 임희정 아나운서는 이 책을 통해 짙고 깊은 마음 이야기들을 고백한다.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해 그녀는 그동안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독자들에게 내비친다.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에는, 그녀의 부모님이 계셨다.



그러다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면 이내 정확한 내 이름 석 자와 오빠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아들과 딸의 이름은 정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함께 그 이름들만큼은 바르게 쓰고 싶으셨을 것이다. 자식의 이름만큼은 여러 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해 쓰셨다.



자신이 있기까지 그 위에는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부모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어스름한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노동을 하고 돌아와 누구보다 일찍 잠드셨던 아버지의 삶부터 가족들을 위한 밥을 짓기 위해 수 천 번의 쌀을 씻었던 어머니의 삶까지. 임희정 아나운서는 자신이 보고 느꼈던 부모님의 삶을 특별하게 써 내려가지 않는다.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그들의 삶 일부를 그저 자신이 보고 느껴낸 대로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여전히 자식으로서 느낄 수 있는 부모의 삶, 그만큼을.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이 오로지 임희정 아나운서만의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는다. 나의 부모, 독자들은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는 순간, 저자 부모의 삶에서 내 부모의 삶과 마주한다. 내가 이제껏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혹은 비슷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의 먹먹함은 가슴속에 멍울이 맺히도록 만든다. 오늘은 부모를 끌어안고 이 멍울을 터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엄마는 생각이 아빠와 딸 둘뿐이었지만, 나는 생각이 나 하나뿐이다. 둘도 못 된다. 그래서 나는 자식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아, 나는 어쩌면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곱씹으며 페이지를 넘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인들에게 '주 중 행사'라는 별칭을 붙이며 이야기할 정도로, 엄마와 목욕탕을 자주 갔다. 탕 속에서 몸을 불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등을 밀며 살갗을 맞대는 시간이 좋았다. 집을 나와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와 목욕 가기는 꽤나 힘든 일이 되었다. 그래서였는지 얼마 전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다녀온 목욕이 무척이나 좋았다. 서로 살을 문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딸의 살갗을 자주 만지거나 밀어주거나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어릴 때의 자식은 온몸을 만져주고 토닥여주어야 커질 수 있었는데, 어느덧 자신의 몸보다 더 넓어지고 길어진 딸의 몸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엄마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나는 다 커버린 후 엄마의 쓰다듬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어졌다.





자식으로 어떻게 부모의 큰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사랑의 크기는 내 곁에 부모가 없어지고서야 큰 슬픔으로 깨달을 지도 모른다. 슬픔으로 깨닫기보다는 웃음으로 그 사랑의 크기를 알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어려운 건 왜일까. 그래서 여전히 못난 딸은 오늘도 '자식'이 아닌 '웬수'가 되어간다. '이 못난 딸을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결코 그 순간을 놓치질 않길 바랄 뿐이다. 나도 겨우 자식이 되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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