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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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알려 주고

서로 위로하고 싶었다.

《사기병》 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질 때가 있다. 정신없이 모든 신경을 그 일에 쏟아붓고 나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게 꽤나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나를 이렇게 무너뜨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또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하물며 그런 사소하고 작은 일조차도 내 일상이 평범해지는 것을 방해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큰 병이 있단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어떤 기분일까?


인스타그램에서 누적 5천만 뷰의 화제작 《사기병》 은 그림책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다 어느 날 갑자기 위암 4기를 선고받은 윤지회 작가의 투병기를 담은 책이다. 암을 선고받았던 그 순간부터 1년의 이야기를 윤지회 작가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그려낸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과 같은 암 환자들에게 항암 일기를 써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사기병》 은 솔직한 투병 이야기를 풀어낸다.






살아야 한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암 수술 후 투병 생활이 시작되면서 윤지회 작가는 과거가 되어 버린 일상을 떠올린다. 두 돌 된 아기의 엄마이자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고 무민 캐릭터와 SF 영화를 좋아하며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즐겨 하고 아이를 재우고 웹툰을 보면서 피로를 풀며 호러 영화나 공포 영화는 못 보고 동물 학대와 장 보기를 싫어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군가에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병에 의해 정해진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혹자는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도록 해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말하는 이도 알 것이다. 그래서 《사기병》 속의 투병기가 더욱 강해 보이는 이유다. 버겁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어쭙잖은 위로의 말씀이 때로는 더욱 상처가 된다는 솔직한 고백 때문에.








그녀가 투병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아들 반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선고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아들이었던 윤지회 작가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아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간다. "아들이랑 야구장 가기", "아들이랑 워터파크 가기", "아들이랑 내 그림책 읽기", "아들 초등학교 보내기" 등등. 그리고 아들과 보내는 일상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어쩌면 투병 생활은 환자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지회 작가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오늘도 그녀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으니. 항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고, 암이 또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때로 기절을 하거나 속을 게워내게 되어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사기병》에서는 가족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진다.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심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있기에 단단해질 수 있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그것만으로 《사기병》 은 감사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윤지회 작가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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