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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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화자는 매우 중요하다. 독자들은 소설의 중심이 되는 사건을 화자를 통해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 가까운 독자에게 화자는 믿어야 하는 존재,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자리한다. 하지만 때로 짓궂은 작가들은 이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소설의 묘미로 만들어 내는 창작 기법을 사용한다. 만약 화자가 독자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화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믿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선택의 길에 놓인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뉴욕타임스> 43주 베스트셀러인 《우먼 인 윈도》는 독자 스스로 자신에게 이러한 물음들을 끊임없이 던지도록 만든다. 이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A.J.핀은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소설의 재미를 끌어내고자 한다. 어딘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화자를 내세우며 A.J.핀은 독자들에게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주인공 애나의 시선으로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을 세세하게 지켜보며 그 속에서 숨겨진 트릭을 찾는 임무가 주어지는 셈이다.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일까? 나는 수족관의 담수어 같은 표정으로 일상적인 점심시간의 풍경을 얼빠진 듯 바라보는 여자일까? 새로 생긴 식료품점이라는 기적에 놀라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방문객일까? 얼어붙은 머릿속 깊은 곳이 지끈거린다. 화가 난다. 완패한 기분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애나의 이웃집에 새 가족이 이사 오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애나는 카메라를 통해 이웃집을 살펴본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아이 하나. 단란해 보이는 세 가족의 모습에 애나는 눈을 쉽게 떼지 못하고 그들에게 매료된다. 특히 아내인 제인 러셀에게.


어느 날, 이사 온 기념 선물이라며 양초를 들고 이선이라는 남자아이가 찾아온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나가 궁금해했던 제인 러셀이라는 여성도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와인을 마시고,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내며 애나는 제인 러셀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며칠 후, 러셀 가족의 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카메라로 확인한 애나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가슴에 칼이 꽂힌 채 도움을 요청하는 제인의 모습을 보게 된 애나는 급히 119에 연락을 한다. 제인을 도와야 된다는 생각으로 트라우마를 무시한 채 집 밖으로 뛰쳐나간 애나는 곧 정신을 잃게 되고, 깨어난 그녀에게 경찰은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한다. 과연 애나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건 당신들이야."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마법 지팡이를 휘두른다. "상상은 당신들이 하고 있다고. 저 창문을 통해서 피범벅이 된 제인을 봤어."



《우먼 인 윈도》는 제인 러셀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게 된다. A.J.핀은 두 부분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속도감으로 전개하며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이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주인공인 애나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녀의 생활을 낱낱이 묘사한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녀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하는 일상적인 루틴들을 세세한 묘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들이 이 인물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후 제인 러셀의 죽음이라는 소설의 가장 큰 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오로지 애나의 시점으로만 사건을 바라보아야 하는 독자들은 진실과 거짓, 현실과 망상이라는 그 두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하며 소설을 읽어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까지 독자들은 긴장감을 놓지 못한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모든 게, 저 사람 부인, 저 아이의 엄마가 칼에 찔리는 걸 본 순간 시작됐다고. 그게 바로 당신들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야. 그게 바로 당신들이 묻고 있어야 할 질문이라고. 나한테 내가 보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마. 내가 본 게 무엇인지는 내가 아니까. "



사건의 진실은 화자의 입을 통해 알 수 있다. 작가가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짓궂은 트릭으로 사용한다고 하여도 그 끝에는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의 끝에 애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진실을 들려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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