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상회 - 거짓말 파는 한국사회를 읽어드립니다
김민섭.김현호.고영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블랙피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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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레임(frame). '액자, '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한 장의 단순한 사진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주로 언론 보도에서 '하나의 고정된 생각이나 관념'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마치 의사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법률용어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언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익숙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 프레임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으니까.

  ≪거짓말 상회≫는 자기계발, 사진, 음식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 사회를 덮어 씌우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대중들은 유독 이 세 가지 주제에 기대었고 그 사이에 한국 사회는 그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흐름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한 관념들에 물들다 못해 푹 젖어버린 사람들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써내지만 그 이야기 중 가운데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마치 음식의 본질을 찾은 것처럼 믿는 사람들을, 책의 저자인 김민섭, 김현호, 고영은 이 질문 하나로 프레임 밖으로 끌어낸다.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청춘'의 프레임
  만나는 사람의 영역이 넓어지고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괴리감에 몹시도 지쳐 있을 때, 내가 꺼내들었던 것은 자기 계발서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0권 중의 절반 이상은 자기 계발서였다. 지금은 그 트렌드가 '힐링 에세이'로 바뀐 것 같은데, 솔직히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다. 자기 계발서를 꺼낼 당시만 해도 그것이 문화의 흐름이었기에 무언가에 홀린 듯 집어 들었다. '청춘', '20대', '미쳐라!', '즐겨라!' 식의 키워드들을 제목으로 달고 있었던 자기 계발서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물론 나도 그중 몇 권을 골라 읽었다. '왜 죄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원하는 해결책은 알려주지 않는 건데? 질문만 던지는 게 전부야?' 그 뒤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지 않았다. 어차피 뻔하디 뻔한 내용일 테니까.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원래 힘들고 아픈거야', '나처럼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으니 힘내' 하는 식이었다. 청년은 그러한 방식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를 계발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으니 사회적 보살핌과 자기 계발이 함께 필요하다면서, 우리 사회는 청년이라는 한 세대의 권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p.28)

  ≪거짓말 상회≫는 사회가 '청춘'에게 씌운 프레임을 들춰낸다. 청춘의 전유물처럼 제시된 꿈, 열정, 도전은 오히려 청춘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사회는 성공과 실패, 단 두 가지 잣대로 청춘들을 분류했고 성공의 기준은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 높은 연봉 등으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청춘들에게 노력을 강요했고 청춘들이 "힘듭니다!"라고 외치니, '노오력, 노오오오력'을  하라고 대답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사회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창의 인재'를 일컫는 청춘이 되었다. '남들이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대입을 목표로 삼았고 입학 후엔 자기소개서 한 줄을 채우고자 일명 '스펙'이라고 불리는 활동들을 했다. 여전히 충분하다는 생각보다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뭐, 위로가 되는 점은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기 계발서에 있는 내용대로 모두가 노력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큰 구덩이에 빠지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싫어한다. 왜 자꾸 나한테만 잘하라고 강요해? (이렇게 불평하면 요즘 청년들은 이게 또 문제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그럼 보여드릴 테니 충분한 기회 좀 주십시오!")

 개인에게 가혹한 '잘'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도 그래서 "그쪽은 '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사실 개인들은 일을 좀 못해도 괜찮다. 더구나 '잘'은 사회가 정해 둔 기준일 뿐이다. 우리는 일을 충분히 잘해 왔고 또 잘하고 있다. (p.74)

 

 

 

 

'진짜'의 프레임
  가끔 프로그램의 장면 일부가 캡처된 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어 연예인들을 구설수에 오르도록 만드는 경우를 본다. 정지된 한 장면으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시작하고 곧 상황은 심해지면서 '원래 그런다더라','성격 안 좋기로 소문이 났다'라는 일명 '카더라 통신'들이 전파된다. 종종 정지된 장면이 아닌 앞뒤 맥락이 담긴 영상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갈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정지된 사진 하나의 영향력은 크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 영향력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믿도록 말이다.

  사진은 대중을 향해 발신하는 정치적 메시지이자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미디어이며, 통치자들은 대개 어떤 이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보여 주려 노력한다. (p.114)

  ≪거짓말 상회≫는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진의 교묘한 프레임을 들춰낸다. 대통령들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진들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색, 신념 등에 따라서 사진을 해석한다. 사진들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간혹 그것이 '실제'인지에 대해 간과하게 된다. 카메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실제 있었던 일을 담아낸다는 우리의 착각은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진짜' 프레임이 씌워진 사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완벽한 구도와 절묘한 표정의 하모니!)
  '진짜' 프레임을 쓰고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들과 '진짜' 프레임을 쓰고도 가짜처럼 보이는 진짜들 사이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수잔 콜린스의 책 헝거게임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모킹제이>에서 가혹한 현실에 혼란스러운 피타는 캣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난 이제 뭐가 진짜고 뭐가 만들어 낸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Real or Not real?"

  그렇다면 과연 사진의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사진은 대상의 일상과 인격을 그대로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인가? (p.96)

 

 

 

'냉면'의 프레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우리나라 예술단은 북한을 방문해 공연을 했다. 당시 가수 백지영의 인터뷰가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 그가 "사실 공연이 중요한 것이지만, 저는 공연만큼 (냉면을)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화제가 된 것은 '평양냉면'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본 국민들은 "통일이 된다면, 평양에 가서 원조 평양냉면을 먹어보겠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단순한 이 냉면에도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니!

  '냉면 곧 여름 별미' 하는 감각은 냉면이 요식업에 들어오면서 이미 발생했다. 여름을 농촌보다 더 타는 도시 거주자에게 여름 별미 냉면이란 자연스러운 감각이었다. (p.252)

  마지막으로 ≪거짓말 상회≫는 냉면, 오뎅(어묵), 맥적 등을 예시로 들며 음식에 씌워진 프레임을 들춰낸다. 음식에 씌워진 프레임은 우리가 그 음식을 즐기는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된다. '여름엔 냉면이지!'처럼 '비 오는 날엔 파전', '파전엔 막걸리', '김장하는 날엔 수육'이라면서 우리는 음식들을 한 프레임 속에 가둬버린다. 인터넷에선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음식의 유래, 조리법 등을 나열하면서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에서 오는 차이도 우열을 가리려고 아등바등한다. 
  지난 연휴,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었다. 한창 낮일 때, 급격히 올라가는 기온에 나도 모르게 '더울 땐 냉면이지!'라고 이야기하며 냉면을 먹었다. 그것도 '원조' 할머니네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기 전에 '원조','전통', 'TV 출연', '맛집'이라는 프레임에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프레임에 갇혀 음식의 대한 예의를 보이지 못했다! 뭐라 해도 '맛'이 최우선이야!

  지난 경험과 고착된 감각의 거짓말이 낳은 "맛없다"를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벗어남은 더 넓은 세계로 창을 내는 아주 구체적인 행위이다. 미각에 깃든 거짓말 하나를 그 뿌리까지 반성하다 보면, 내가 맞을 세계를 더욱 넓힐 수가 있다. 내가 나아갈 세계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p.198)

 

 

  아직도 우리가 들춰내야 할 프레임들은 많다. 책의 저자 김민섭, 김현호, 고영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했던 질문처럼,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그런 질문을 던지도록 만드는 것. '괜찮다'라는 말로 포장하여 진실을 놓치지 말 것. 오랜만에 굉장히 필요한 책을 만난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그것이 인물이든 조직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 개인은 그가 속한 시대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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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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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것 같으면서도, 타인이 느끼는 고통의 반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지도 않고 입을 연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이 타인에게 어떤 비수로 꽂아질지도 모른 채.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고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나는 그동안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척을 해왔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라는 말로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묻어버렸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의 고통을 짓밟았고 그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지 알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성폭행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어째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속했을까? 이 소설은 쉽게 내뱉는 질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p.34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열세살 소녀 팡쓰치의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장한 어른들에 의해서 짓밟힌다.

  류이팅과 팡쓰치는 집을 떠나 타이베이의 같은 학교로 진학할만큼 절친한 사이다. 입학한 첫 해 쓰치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팅은 그런 쓰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날, 경찰서에서 쓰치가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팅은 경찰서로 달려간다. 쓰치는 곧 가오슝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이팅은 쓰치에 대한 걱정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이팅은 쓰치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자신들의 선생님이었던 리궈화 선생이 5년동안 쓰치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고, 이팅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아듣겠니? 날 원망하지 마. 넌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아름다움이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거야. 넌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모든 사람의 것일 수 없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넌 내거야. 넌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널 좋아해. (p.90)

  아직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팡쓰치는 리궈화 선생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뤄졌던 그 폭력이 사랑 그 자체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자신도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긴다. 어린 팡쓰치가 이런 태도를 지닐 수 밖에 없던 이유에는, 팡쓰치를 알고 있는 어른들 중 그 누구도 팡쓰치가 기댈 곳 하나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팡쓰치뿐만 아니다. 리궈화 선생에 의해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을 겪은 쿠키, 궈샤오치도 팡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쿠키는 남자친구에게, 궈샤오치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돌아오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처벌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질책이었다.
  작가 린이한은 이 소녀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어낸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 먼저인 사회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이 세 소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 데는 그들이 스스로를 파먹도록 만들고 있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건 리궈화 선생만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지위를 보고 오히려 피해자를 질책했던 궈샤오치의 부모님과 그저 방관했던 아파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p.267)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무자비한 폭력은 팡쓰치와 닮은 쉬이원에게서도 일어난다. 첸이웨이와 결혼한 쉬이원은 팡쓰치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그의 폭력 속에서 점차 약해진다. 첸이웨이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그녀에게 가해지는 손찌검으로, 그녀는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워한다.

  첸이웨이가 이원의 마음속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작은 짐승을 기르고 있고, 그 짐승이 이원의 마음을 휘젓고 다니며 모든 감각의 울타리를 향해 수시로 달려들고 있었다는 걸 이팅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건 고통의 몽타주였다.(p.33)

  팡쓰치의 말대로 세상에는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사랑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사랑한다는 우리들의 착각 속에서 오히려 타인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계속 곱씹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진 폭력들을 타인의 문제들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세상 그 어떤 팡쓰치든 소비되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그녀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소설로 보여지는 건 원치 않아요. 매일 여덟 시간씩 글을 썼어요. 쓰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언제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죠. 다 쓰고 난 뒤에 보니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쓴, 이 가장 무서운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이에요. (p.338 '작가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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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5가지 방법 - 정답 없는 문제조차 정답을 제시해야 하는 당신을 위한
조셉 L. 바다라코 지음, 최지영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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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 과정에 놓인다. 오늘의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것부터 새로운 직장으로의 이직 여부 등에 대한, 어쩌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까지. 그리고 종종 사회에 놓인 위치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확장되기 마련이다.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 오기를 희망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는 선택의 길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5가지 방법》에서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되는 우리에게 좋은 결과 도출을 위한 5가지 단계의 프로세스를 제시한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저자 조셉 바다라코는 흑과 백의 사이, 그러니까 우리가 명쾌하게 답을 얻을 수 없는 그 혼란한 상태를 '회색'이라고 표현한다. 회색 지대에서 우리는 5가지의 질문을 통해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영을 관리하는 리더 입장에서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질문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 삶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회색 지대는 조직 관리자에게 업무상 최대의 난제이다. 사실 회색 지대는 업무를 넘어서 인생에서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다루는 일은 업무 능력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을 시험하는 일이다. (p.11)

  살면서 회색 지대를 피하기란 어렵다. 회색 지대에서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위험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회색 지대 문제를 잘 해결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과 타인에 크게 기여하고 자신의 커리어와 자아의식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p.15) 그래서 저자 조셉 바다리코는 이 회색 지대에서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 5가지로 '최종 결과는 무엇인가?', '나의 핵심 의무는 무엇 인가?', '현실 세계에서 실효성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내가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를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5가지의 질문을 인본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며, 그 해결책을 철학자 밀과 칸트, 정치적 사상가 마키아벨리 등의 사상에서 찾아낸다. 이 5가지 질문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정립하여 저자 조셉 바다리코는 우리가 그 프로세스 과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못하게 하면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그럼에도 유독 눈길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나의 핵심 의무는 무엇인가?', '현실 세계에서 실효성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은 리더의 위치에는 놓여 있지 않은 현재의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는 나의 기준에 맞춰 제멋대로 의사결정을 한다. 쉽게 예를 들자면, 친구와 약속을 정하는 과정을 들 수 있겠다. 주로 친구에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기는 하지만, 간혹 나의 스케쥴에만 꽂힌 채 친구에게 일정을 강요하는 행동을 보이곤 한다. 곤란해하는 친구의 감정 상태는 헤아리지도 못한 채, 나의 감정만을 내세우는데 그 결정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은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두번째 질문은 그 과정을 반복하는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질문이 가지는 의미는 이것이니까.

  자신의 이해관계, 경험, 판단, 세상을 보는 관정에 매몰되지 말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반드시 자기 본위의 감옥에서 탈출하라. 자신이 직접 당하는 당사자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지, 그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할지를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열심히 상상해보라. (p.99)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선하기만을 고집하는 자는 선하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때로 나는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혹은 하고싶은대로 하려는 경향도 있고.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나를 가둬두는 울타리가 되었고, 더 나아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잠식시키는 이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그대로 에워 쌌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행운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

   생각에 빠져 주저 앉아 있을 시간은 끝났다.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5가지 방법》을 읽었으니, 이제 나의 회색 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일만 남았다. 흑과 백으로 명쾌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그 시기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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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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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이별 그날 밤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그때의 모든 감정은 씻어 내려갔지만, 첫 이별을 마주했던 그날 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여느 때와 똑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그렇게 이별을 고할 줄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을 듣는 순간 관계의 을로 전락한 나에게 상대방은 기다리라고 했다. 정리가 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상대방은 함께 시작한 연애를 혼자 정리하고 끝내버렸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매일 밤 울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다시 되짚어보기도 했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그러다 제풀에 지쳤고 상대방은 이미 끝낸 정리를 나는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했다.

  ​나의 첫 이별은 그렇게 왔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하나도 그렇지 못했다. 너무도 괘씸한 마음에 다시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울분에 매일 밤을 울었다. 각각의 이별의 이유는 다르다. 그러나 이별은 모두 슬프다.
  ​ SNS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상담자 디제이 아오이는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를 통해 이별을 앞둔, 또는 이별하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별'에 대해 조언해준다. ​이별 후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밀려오는 이별 후유증의 응어리진 감정에 대한 해소 등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가 아닌 '난 이렇게 쿨해질 수 있어'라고.

 

 

 

  헤어진다는 건 잔혹한 일이에요. 사귈 때는 서로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별에는 필요 없거든요. 어느 한쪽이 "더 이상 안 되겠어"라고 말하면 그냥 거기서 끝인 겁니다.(p.119)

​  사랑하는 이유가 다르듯이 이별하는 이유도 제각각 다르다. 상대방의 식어버린 마음에 의해서, 두 사람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또는 상대방의 불륜으로 인해서. 그 외에도 다양한 이별의 이유에 대해 디제이 아오이는 몇 가지 예시를 제시한다. 모두가 그런 이유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별한 사람들 사이의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교류는 통하기 마련이다.

​  한 번의 연애가 끝나면 당당히 홀로 일어서야만 합니다. 연애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거든요.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법이에요.(p.179)

​  "헤어지자."
  이별 앞에 이 한마디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구분 짓는다.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그 한마디를 듣는 사람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항상 헤어짐을 통보받는 쪽도 여성, 그 슬픔에 잠겨 있는 것도 여성이라는 생각은 너무 고정적인 패러다임이 아닐까. 이별의 이유가 다양하듯이, 그 이별을 통보받는 사람의 성별도 고착화되어 있지는 않을 텐데. 여성이라고 해서 더 슬픈 것도, 남성이라고 해서 덜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디제이 아오이가 예시로 드는 사례들(고민 상담 내용)의 대부분의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이 살짝 아쉽기는 했다.

 

 

 

 

   ​디제이 아오이는 이별 후 최종 목표로 '홀로서기'를 제안한다. 사랑했던 두 사람이 각자의 길로 들어서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곧게 일어설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발견한 나의 매력적인 모습이 점점 좋아진다면 애인이 없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혼자일 때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때입니다. (p.197)

​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첫 이별 그날 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곱씹었던 그 행동은 상대방을 통해 본 나의 모습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반성의 시간으로 나는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메꾸고, 또다시 찾아올 새로운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만든다. 이별 후 빛나는 나의 모습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날 다음의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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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묘약 - 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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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살아간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걷다 보면,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느림의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가장 알맞지 않을까 싶다.
  ​《여름의 묘약》은 저자 김화영이 여행한 1969~2012년의 프로방스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보랏빛의 라벤더가 고원을 뒤덮고 있고, 여름 뙤약볕 아래 꿀같은 낮잠을 즐기고,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와인 한 잔을 즐기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프로방스의 여름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저자 김화영은 프로방스 여행 과정을 그대로 나열하는데,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는 그와 함께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그를 따라서 분수대가 인상적인 광장에서부터 한적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알베르 카뮈의 집까지 프로방스가 주는 그 여유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여름의 건조하고 부드러운 공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온 천지에 가득한 라벤더, 타임, 로즈메리 향기,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 창공을 향해 화살표처럼 솟아오르는 시프레나무의 고장 프로방스. (p.172)

​  《여름의 묘약》에서는 프로방스의 정취도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한 많은 문학가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도 있다. 저자 김화영은 40년 동안 많은 불문학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해왔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불문학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의 모습은 《여름의 묘약》에서 그대로 보이는데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부터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작가들에 대해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알베르 카뮈이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알베르 카뮈론을 전공한 저자 김화영은 프로방스를 여행하던 도중에 알베르 카뮈의 집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카뮈의 딸인 카트린 카뮈와 대화하고 알베르 카뮈의 손길이 닿았던 그곳을 고스란히 느낀다.
  문학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반 고흐가 살아있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길 바랐다. 그가 죽고 난 뒤, '반 고흐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문화센터'를 차리고 반 고흐가 없는 부르주아적 '문화'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배척했던 고흐 덕에 관광수입도 올리고…… 환한 대낮의 삶이 가끔 악몽 같아 보일 때가 있다. (p.120)

  느긋하게 여행을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름의 묘약≫을 통해 본 보랏빛의 프로방스는 아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문학 기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면 모든 것을 잊고 햇빛 드는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하며 독서하는 것도 모두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프로방스'를 조심스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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