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묘약 - 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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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살아간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걷다 보면,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느림의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가장 알맞지 않을까 싶다.
  ​《여름의 묘약》은 저자 김화영이 여행한 1969~2012년의 프로방스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보랏빛의 라벤더가 고원을 뒤덮고 있고, 여름 뙤약볕 아래 꿀같은 낮잠을 즐기고,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와인 한 잔을 즐기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프로방스의 여름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저자 김화영은 프로방스 여행 과정을 그대로 나열하는데,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는 그와 함께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그를 따라서 분수대가 인상적인 광장에서부터 한적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알베르 카뮈의 집까지 프로방스가 주는 그 여유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여름의 건조하고 부드러운 공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온 천지에 가득한 라벤더, 타임, 로즈메리 향기,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 창공을 향해 화살표처럼 솟아오르는 시프레나무의 고장 프로방스. (p.172)

​  《여름의 묘약》에서는 프로방스의 정취도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한 많은 문학가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도 있다. 저자 김화영은 40년 동안 많은 불문학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해왔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불문학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의 모습은 《여름의 묘약》에서 그대로 보이는데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부터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작가들에 대해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알베르 카뮈이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알베르 카뮈론을 전공한 저자 김화영은 프로방스를 여행하던 도중에 알베르 카뮈의 집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카뮈의 딸인 카트린 카뮈와 대화하고 알베르 카뮈의 손길이 닿았던 그곳을 고스란히 느낀다.
  문학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반 고흐가 살아있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길 바랐다. 그가 죽고 난 뒤, '반 고흐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문화센터'를 차리고 반 고흐가 없는 부르주아적 '문화'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배척했던 고흐 덕에 관광수입도 올리고…… 환한 대낮의 삶이 가끔 악몽 같아 보일 때가 있다. (p.120)

  느긋하게 여행을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름의 묘약≫을 통해 본 보랏빛의 프로방스는 아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문학 기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면 모든 것을 잊고 햇빛 드는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하며 독서하는 것도 모두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프로방스'를 조심스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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