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상회 - 거짓말 파는 한국사회를 읽어드립니다
김민섭.김현호.고영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블랙피쉬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프레임(frame). '액자, '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한 장의 단순한 사진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주로 언론 보도에서 '하나의 고정된 생각이나 관념'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마치 의사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법률용어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언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익숙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 프레임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으니까.

  ≪거짓말 상회≫는 자기계발, 사진, 음식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 사회를 덮어 씌우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대중들은 유독 이 세 가지 주제에 기대었고 그 사이에 한국 사회는 그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흐름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한 관념들에 물들다 못해 푹 젖어버린 사람들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써내지만 그 이야기 중 가운데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마치 음식의 본질을 찾은 것처럼 믿는 사람들을, 책의 저자인 김민섭, 김현호, 고영은 이 질문 하나로 프레임 밖으로 끌어낸다.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청춘'의 프레임
  만나는 사람의 영역이 넓어지고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괴리감에 몹시도 지쳐 있을 때, 내가 꺼내들었던 것은 자기 계발서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0권 중의 절반 이상은 자기 계발서였다. 지금은 그 트렌드가 '힐링 에세이'로 바뀐 것 같은데, 솔직히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다. 자기 계발서를 꺼낼 당시만 해도 그것이 문화의 흐름이었기에 무언가에 홀린 듯 집어 들었다. '청춘', '20대', '미쳐라!', '즐겨라!' 식의 키워드들을 제목으로 달고 있었던 자기 계발서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물론 나도 그중 몇 권을 골라 읽었다. '왜 죄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원하는 해결책은 알려주지 않는 건데? 질문만 던지는 게 전부야?' 그 뒤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지 않았다. 어차피 뻔하디 뻔한 내용일 테니까.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원래 힘들고 아픈거야', '나처럼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으니 힘내' 하는 식이었다. 청년은 그러한 방식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를 계발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으니 사회적 보살핌과 자기 계발이 함께 필요하다면서, 우리 사회는 청년이라는 한 세대의 권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p.28)

  ≪거짓말 상회≫는 사회가 '청춘'에게 씌운 프레임을 들춰낸다. 청춘의 전유물처럼 제시된 꿈, 열정, 도전은 오히려 청춘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사회는 성공과 실패, 단 두 가지 잣대로 청춘들을 분류했고 성공의 기준은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 높은 연봉 등으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청춘들에게 노력을 강요했고 청춘들이 "힘듭니다!"라고 외치니, '노오력, 노오오오력'을  하라고 대답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사회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창의 인재'를 일컫는 청춘이 되었다. '남들이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대입을 목표로 삼았고 입학 후엔 자기소개서 한 줄을 채우고자 일명 '스펙'이라고 불리는 활동들을 했다. 여전히 충분하다는 생각보다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뭐, 위로가 되는 점은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기 계발서에 있는 내용대로 모두가 노력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큰 구덩이에 빠지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싫어한다. 왜 자꾸 나한테만 잘하라고 강요해? (이렇게 불평하면 요즘 청년들은 이게 또 문제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그럼 보여드릴 테니 충분한 기회 좀 주십시오!")

 개인에게 가혹한 '잘'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도 그래서 "그쪽은 '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사실 개인들은 일을 좀 못해도 괜찮다. 더구나 '잘'은 사회가 정해 둔 기준일 뿐이다. 우리는 일을 충분히 잘해 왔고 또 잘하고 있다. (p.74)

 

 

 

 

'진짜'의 프레임
  가끔 프로그램의 장면 일부가 캡처된 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어 연예인들을 구설수에 오르도록 만드는 경우를 본다. 정지된 한 장면으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시작하고 곧 상황은 심해지면서 '원래 그런다더라','성격 안 좋기로 소문이 났다'라는 일명 '카더라 통신'들이 전파된다. 종종 정지된 장면이 아닌 앞뒤 맥락이 담긴 영상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갈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정지된 사진 하나의 영향력은 크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 영향력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믿도록 말이다.

  사진은 대중을 향해 발신하는 정치적 메시지이자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미디어이며, 통치자들은 대개 어떤 이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보여 주려 노력한다. (p.114)

  ≪거짓말 상회≫는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진의 교묘한 프레임을 들춰낸다. 대통령들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진들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색, 신념 등에 따라서 사진을 해석한다. 사진들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간혹 그것이 '실제'인지에 대해 간과하게 된다. 카메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실제 있었던 일을 담아낸다는 우리의 착각은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진짜' 프레임이 씌워진 사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완벽한 구도와 절묘한 표정의 하모니!)
  '진짜' 프레임을 쓰고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들과 '진짜' 프레임을 쓰고도 가짜처럼 보이는 진짜들 사이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수잔 콜린스의 책 헝거게임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모킹제이>에서 가혹한 현실에 혼란스러운 피타는 캣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난 이제 뭐가 진짜고 뭐가 만들어 낸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Real or Not real?"

  그렇다면 과연 사진의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사진은 대상의 일상과 인격을 그대로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인가? (p.96)

 

 

 

'냉면'의 프레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우리나라 예술단은 북한을 방문해 공연을 했다. 당시 가수 백지영의 인터뷰가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 그가 "사실 공연이 중요한 것이지만, 저는 공연만큼 (냉면을)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화제가 된 것은 '평양냉면'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본 국민들은 "통일이 된다면, 평양에 가서 원조 평양냉면을 먹어보겠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단순한 이 냉면에도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니!

  '냉면 곧 여름 별미' 하는 감각은 냉면이 요식업에 들어오면서 이미 발생했다. 여름을 농촌보다 더 타는 도시 거주자에게 여름 별미 냉면이란 자연스러운 감각이었다. (p.252)

  마지막으로 ≪거짓말 상회≫는 냉면, 오뎅(어묵), 맥적 등을 예시로 들며 음식에 씌워진 프레임을 들춰낸다. 음식에 씌워진 프레임은 우리가 그 음식을 즐기는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된다. '여름엔 냉면이지!'처럼 '비 오는 날엔 파전', '파전엔 막걸리', '김장하는 날엔 수육'이라면서 우리는 음식들을 한 프레임 속에 가둬버린다. 인터넷에선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음식의 유래, 조리법 등을 나열하면서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에서 오는 차이도 우열을 가리려고 아등바등한다. 
  지난 연휴,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었다. 한창 낮일 때, 급격히 올라가는 기온에 나도 모르게 '더울 땐 냉면이지!'라고 이야기하며 냉면을 먹었다. 그것도 '원조' 할머니네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기 전에 '원조','전통', 'TV 출연', '맛집'이라는 프레임에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프레임에 갇혀 음식의 대한 예의를 보이지 못했다! 뭐라 해도 '맛'이 최우선이야!

  지난 경험과 고착된 감각의 거짓말이 낳은 "맛없다"를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벗어남은 더 넓은 세계로 창을 내는 아주 구체적인 행위이다. 미각에 깃든 거짓말 하나를 그 뿌리까지 반성하다 보면, 내가 맞을 세계를 더욱 넓힐 수가 있다. 내가 나아갈 세계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p.198)

 

 

  아직도 우리가 들춰내야 할 프레임들은 많다. 책의 저자 김민섭, 김현호, 고영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했던 질문처럼,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그런 질문을 던지도록 만드는 것. '괜찮다'라는 말로 포장하여 진실을 놓치지 말 것. 오랜만에 굉장히 필요한 책을 만난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그것이 인물이든 조직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 개인은 그가 속한 시대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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