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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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것 같으면서도, 타인이 느끼는 고통의 반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지도 않고 입을 연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이 타인에게 어떤 비수로 꽂아질지도 모른 채.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고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나는 그동안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척을 해왔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라는 말로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묻어버렸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의 고통을 짓밟았고 그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지 알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성폭행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어째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속했을까? 이 소설은 쉽게 내뱉는 질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p.34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열세살 소녀 팡쓰치의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장한 어른들에 의해서 짓밟힌다.

  류이팅과 팡쓰치는 집을 떠나 타이베이의 같은 학교로 진학할만큼 절친한 사이다. 입학한 첫 해 쓰치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팅은 그런 쓰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날, 경찰서에서 쓰치가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팅은 경찰서로 달려간다. 쓰치는 곧 가오슝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이팅은 쓰치에 대한 걱정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이팅은 쓰치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자신들의 선생님이었던 리궈화 선생이 5년동안 쓰치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고, 이팅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아듣겠니? 날 원망하지 마. 넌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아름다움이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거야. 넌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모든 사람의 것일 수 없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넌 내거야. 넌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널 좋아해. (p.90)

  아직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팡쓰치는 리궈화 선생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뤄졌던 그 폭력이 사랑 그 자체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자신도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긴다. 어린 팡쓰치가 이런 태도를 지닐 수 밖에 없던 이유에는, 팡쓰치를 알고 있는 어른들 중 그 누구도 팡쓰치가 기댈 곳 하나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팡쓰치뿐만 아니다. 리궈화 선생에 의해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을 겪은 쿠키, 궈샤오치도 팡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쿠키는 남자친구에게, 궈샤오치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돌아오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처벌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질책이었다.
  작가 린이한은 이 소녀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어낸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 먼저인 사회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이 세 소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 데는 그들이 스스로를 파먹도록 만들고 있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건 리궈화 선생만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지위를 보고 오히려 피해자를 질책했던 궈샤오치의 부모님과 그저 방관했던 아파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p.267)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무자비한 폭력은 팡쓰치와 닮은 쉬이원에게서도 일어난다. 첸이웨이와 결혼한 쉬이원은 팡쓰치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그의 폭력 속에서 점차 약해진다. 첸이웨이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그녀에게 가해지는 손찌검으로, 그녀는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워한다.

  첸이웨이가 이원의 마음속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작은 짐승을 기르고 있고, 그 짐승이 이원의 마음을 휘젓고 다니며 모든 감각의 울타리를 향해 수시로 달려들고 있었다는 걸 이팅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건 고통의 몽타주였다.(p.33)

  팡쓰치의 말대로 세상에는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사랑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사랑한다는 우리들의 착각 속에서 오히려 타인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계속 곱씹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진 폭력들을 타인의 문제들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세상 그 어떤 팡쓰치든 소비되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그녀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소설로 보여지는 건 원치 않아요. 매일 여덟 시간씩 글을 썼어요. 쓰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언제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죠. 다 쓰고 난 뒤에 보니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쓴, 이 가장 무서운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이에요. (p.338 '작가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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