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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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앞에 앉아 있던 어린 '나'는 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공간을 이동한 여고생이 강아지 귀를 가진 요괴와 함께 깨져버린 구슬 조각을 모으러 다니는 이야기. 90년대에 애니메이션 채널을 꽤나 봤다던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애니메이션, <이누야샤>는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뜻도 모를 '바람의 상처!'를 외치고 다닐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 이누야샤의 바람의 상처 한 번이면 웬만한 요괴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니, '강한 게 최고야!'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를 홀리기에는 그만한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그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만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항설백물어》는 충분히 이누야샤와 가영(카고메)의 모험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가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항설백물어》는 그것보다 시간이 더 지난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에도를 떠나 백 가지 괴담을 모으러 다니는 이야기 수집가 모모스케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한 무리를 만나게 된다. 《항설백물어》는 모모스케가 이 무리를 만나고 난 이후의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인형사 오긴, 그리고 신탁자 지헤이와 함께 모모스케는 기묘한 소문에 얽힌 사건들을 해결한다.

  지헤이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어느 시절이라도 괴담은 있는 법이지요. 이것만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저는 괴담이야말로 이야기의 왕도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아, 저기 그런 까닭에 저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주술, 미신, 괴이쩍은 소문,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지요. (p. 96)

  비가 내리는 밤이면, 어느 지역의 계곡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팥을 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 있는 절에는 스님으로 둔갑해 오십 년을 살아온 여우가 있기도 하고,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싸우다 머리가 잘려도 생을 건너가며 계속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인간으로 변신해 살아가다 개에게 물려 죽은 너구리가 있기도 하고, 주인에게 잡아먹히고 나서 매일같이 집을 찾아오는 말의 영혼, 억울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버드나무의 저주, 그리고 옛날 황후의 시신을 버린 곳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여인들의 썩은 송장까지 매혹적이고 기묘한 7가지의 이야기들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누야샤와 가영(카고메)가 구슬 조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나 요괴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오히려 이누야샤와 가영이의 구슬 조각을 뺏으려 한다. 그것처럼 《항설백물어》에도 괴소문에 가려진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모모스케와 일행들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동생과 처, 자식까지 죽이는 인간의 욕심을 저자 교고쿠 나쓰히코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악취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p. 502)

  인간의 추악한 본성 앞에 서게 된 이누야샤와 가영이는 바람의 상처를, 모모쓰케와 일행은 "어행봉위!"를 외치며 요령을 짤랑 흔든다. 세상의 모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욕망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괴소문은 우리 모두가 사악한 마음에 빠져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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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힘 - 평범한 순간을 결정적 기회로 바꾸는 경험 설계의 기술
칩 히스.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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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예, 아니오로 단정 지어 이야기할 수 있고 혹은 누군가는 "글쎄요."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내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질문을 받은 순간까지의 내 기억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당신은 행복한가요?"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약 어제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떠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원을 다녀오고 산더미처럼 쌓인 일에 치여 허덕이고 있다면 나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 말이다. 분명 나는 "아니요,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라는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오늘 내가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듣게 되었고 어제의 내가 평생 기억에 남을 신나는 밤을 보냈다면 "네, 매일 이렇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에 도취된 나는 아마 그 순간을 중심으로 내 인생을 이야기할 것이다.



순간은 중요하다.





  어떤 순간은 다른 순간보다 힘이 세다. 유독 나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 칭찬받았을 때, 나의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았을 때 등등. 그리고 이 순간들의 공통점은 나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매일 이런 순간들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이런 순간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스틱>, <스위치>의 저자 히스 형제는 《순간의 힘》을 통해 거대한 변화의 방아쇠가 되는 결정적 순간은 얼마든지 기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매 순간으로 구성되고, 결정적 순간은 그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아 기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삶에 더욱 많은 결정적 순간을 만들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p. 16)

  《순간의 힘》은 같지 않은 모든 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바꿀 어떤 순간을 계획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즉, 우리는 삶의 변화를 위해 '경험 설계'를 할 수 있다. 히스 형제는 잊고 싶은 순간, 트라우마보다는 긍정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절정'의 순간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4가지 요소로 고양, 통찰, 긍지, 그리고 교감을 선택한다. 고양의 순간은 우리를 평범한 일상 위로 고조시킨다. 통찰의 순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리고 긍지의 순간은 우리가 지닌 최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p. 160) 마지막 인간관계를 강화하는 교감의 순간까지. 히스 형제는 자신들이 조사하고 연구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이 4가지 요소들이 경험 설계 과정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당신이 평범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꺼내고 싶어 하느냐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면 그것은 특별한 순간이다. 우리의 본능은 특별한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이것이 바로 고양의 순간이다. (p. 79)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순간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믿고 있었다. 유독 기억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게 되는 순간이 가지는 큰 힘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써 놓은 '순간을 즐겁고 소중하게'라는 문구처럼 나는 매 순간을 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순간의 힘》은 바로 그 순간을 힘 있게 만들 방법들을 제시해주었고, 이제 나는 그 순간들을 창조하기 위한 설계 작업에 돌입하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나의 인생을 극적으로 만들어 줄 결정적 순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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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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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나는 평일이면 인디애나폴리스 북쪽에 위치한 화이트 리버 고등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 학교에서 나보다 훨씬 거대하며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특정한 시간, 다시 말해 오후 12시 37분부터 1시 14분까지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만약 그 힘이 내게 다른 시간에 점심을 먹도록 정했거나, 나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내 운명을 서술하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그 9월 어느 날에 다른 대화 주제를 골랐다면 난 다른 결말을, 적어도 다른 중반부를 맞이했으리라. 하지만 삶이란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p. 9)

  영화 <안녕, 헤이즐> 원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작가 존 그린이 돌아왔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를 통해 눈부신 첫사랑과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보여준 존 그린은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의 에이자를 통해 다시금 그 감동을 느끼게 한다. 신체적 아픔 때문에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보던 헤이즐과 비슷하게 에이자는 정신적 아픔 때문에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본다. "내가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한 소녀가 자신을 찾아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나선형으로 휘몰아치는 생각의 늪에 끊임없이 빠지면서도 소녀가 찾는 건, 그 생각의 끝에 머물러 있을 '진짜 자신'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의 삶의 주인공이라고 인식할 때까지는 그 생각의 끝을 결코 보지 못한다.





 "'네 이름은 알파벳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른단다. 왜냐하면 넌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으니까.' (p. 43)"라며 아빠는 에이자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줬던 아빠의 죽음 이후 에이자는 자신이 거대한 미생물 집합체라 여기며, 클로스토리움 디피실레나 캄필로박터균 등에 쉽게 감염될 것이라는 불안함과 강박증세를 안고 살아간다. 이 불안함과 강박증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선형 생각으로 표현된다. 내면의 목소리는 에이자를 계속해서 압박하며 조여들어간다. 그녀가 자유로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넌 절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는 생각했다.
  넌 네 생각을 선택할 수 없어, 나는 생각했다.
  넌 죽어가고 있고 네 안의 벌레들이 네 살까지 먹어치울 거야, 나는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p. 105)

  작가 존 그린은 한없이 불안한 이 증세를 가진 10대 소녀의 심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서 헤이즐이 어거스터스를 만나기 전과 후의 심리에 변화가 생긴 것처럼 에이자도 데이비스를 만나고 심리 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에이자는 친구 데이지와 함께 데이비스의 아빠 러셀 피킷이 실종되었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렸다는 사실의 그를 쫓기로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에이자가 데이지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러셀 피킷을 뒤쫓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데이비스를 다시 만난 에이자는 그와의 대화를 즐겁게 여긴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자신보다 더 지독하게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네가 첫사랑을 기억하는 이유는 네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이 세상에서는 오로지 사랑만이 가치 있음을, 사랑을 통해 그리고 사랑 때문에 네가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첫사랑이 보여 주고 증명했기 때문이지. (p. 311)

  데이비스, 데이지, 그리고 엄마. 에이자는 그동안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으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순간에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나선은 안쪽으로 따라가면 한없이 작아지지만, 바깥쪽으로 따라가면 한없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310)" 에이자는 작아지는 나선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 끝에 있을 '거북이', 그러니까 '진짜 자신'을 보기 위해. 그리고 데이비스를 통해 그것을 마주하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오던 에이자는 넓어지는 나선 속에서 자신의 곁에 계속 있어주었던 데이지, 엄마를 보게 된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소녀는 안정적이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간다. 
  에이자만이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생각의 소용돌이를 걷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저 미생물 집합체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충분하게 빛나는 사람이란 것을. 존 그린은 사랑을 그렇게 빗대었다. 내가 이 세상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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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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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고를 다니면서 사회 과목의 첫 수업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국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은 연령에 따라 달랐지만 이 사실 하나만은 공통적으로 배웠다. '국가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한다.' 2014년 4월 16일. 바닷속으로 사람들을 태운 거대한 배 한 척이 가라앉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언론에서는 '전원 구조 성공'이라는 기사를 보도했고 사고 장면을 보고 있던 국민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은 언론의 보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3년이 지나서야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배가 육지로 돌아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에 분노를 느낀 김대현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가상의 국가를 세운다. 아니, '국가'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내기로 한다.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부터 2038년 미래 국가 아로니아공화국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적 상상력이 담긴 소설이다. 김대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국가의 의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p. 151)

 북위 29도 51분 15초, 동경 126도 56분 27초를 중심으로 23.48제곱 킬로미터. 게양된 '블루토피아' 국기가 휘날리는 아로니아공화국의 대통령 김강현은 일흔 살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제3대 아로니아공화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전야, 김강현은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글을 쓴다. 무엇보다 소중한 아지트 동구 만화방의 부서진 컬러텔레비전을 바꾸기 위해 또래의 삥을 뜯다 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맞았던 어린 시절부터 한국식 암기 교육의 폐해의 수혜자였던 젊은 시절을 보낸 강현을 통해 김대현 작가는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분을 되돌아본다.
 1970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을 시작으로 1980년 민주화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1990년대 한국 IMF 외환 위기 등 김대현 작가는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굵직하게 뽑아내어 그려낸다. 이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현 작가 특유의 위트 있고 도발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씹어버린다. 강현의 입을 빌린 그는 대한민국의 지난 발자취들을 조금은 까칠하게 털어낸다. 그 밖에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암기식 교육의 폐해, 검찰 사건 조작 및 은폐 등)과 중국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조목조목 털어낸다.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은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p. 261)






 사람이 있는 곳에 국가가 있다. 국가의 기본은 영토에 살면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 생각만으로 아로니아공화국은 지금의 JDZ(한일공동개발구역)의 수중 암초 위에 세워진다. 김대현 작가는 아로니아공화국의 건국 과정을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그가 정말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이 '한일공동개발구역 JDZ'를 찾아보고 2028년 6월 22일 이후 벌어질 일들을 오래도록 이야기하면 좋겠다. (p. 415 '작가의 말' 중에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자유, 행복을 위해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국민 스스로도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는지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질문한다. 독도 문제로 일본과 분쟁 중인 우리는 2028년 6월 22일 이후 한일공동개발구역을 두고 또 분쟁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지난 과거를 후회하고 통탄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자세하게 '한일공동개발구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이런 게 있다 수준으로 넘어갔으니 말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의 의무가 중요하듯이 국민의 의무도 중요하다. 비록 태어나면서 국가를 직접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이 국가가 재밌고 신나는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가장 간단한 투표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다.) 국가를 만들자는 발칙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 국가와 국민이 함께 바뀌어야 즐겁고 신나는 나라가 만들어질지도!

  국가가 뭐냐고 물으셨죠? 아로니아가 뭐냐고 물으셨죠? 국가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시민들이 만들고 세우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입니다. 아마도 지금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믿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겠죠. 그래서 저절로 모였고 이렇게 열심히 듣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친구…… 여러분이 말하는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는 여러분이 원하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친구일 겁니다. 여러분의 아로니아……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오로지 이것뿐입니다. (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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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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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누가 말했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고. 세상에 얼마나 갈 곳이 많은지 KBS1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마다 10년 이상 방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브라운관 속 여행지를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속에 여행 버킷리스트를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디로 떠날지 정했다면, 다음은 여행 방식이다.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유여행과 제시간에 도착만 한다면 버스에 태워 이리저리 데려다주고 밥도 먹여주는 패키지여행 중 어떤 것을 택할지 비용을 고려하며 열심히 고민한다. 사실 두 가지 여행 방식 모두 좋아하는 나로선,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보다 이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진다.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는 만화가 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마스다 미리의 여행 만화 에세이다. "패키지 투어에 나 홀로 참가함"이라는 부제목에 맞게《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는 마흔 살이 됐을 때, 왠지 다급한 마음이 든 마스다 미리가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가한 패키지 투어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약간 불편한 인간관계는 있지만, 투어가 있는 한, 여자 혼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구나 하고 이 브라질에서 자신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p. 113)





  북유럽 오로라 여행을 시작으로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 프랑스 몽셸 미생 여행, 브라질 리우 카니발 여행, 그리고 대만 핑시 풍등제까지 40대의 여행기를 일기 형식의 글과 사진으로 채워간다. 일기 같은 여행기를 읽고 여행 중에 그녀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나도 이곳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 마스다 미리만의 여행 꿀팁들을 보여주는데, 기억하고 있다 훗날 여행할 때 따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으로 좋다.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들지 않아도, 이 한 번은 귀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이국의 욕조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p. 137)




  그녀와 내가 다녀온 여행지가 겹친 건 대만(타이완)뿐이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그 부분이 훨씬 좋았다. 나의 여행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으니. 무엇보다도 고궁 박물원에서 그토록 진귀한 '비취 배추'를 보기 위한 과정을 읽다 보니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기억이 나냐고 카톡도 보냈다.)

자, 다음은 어디로 무엇을 보러 갈까.
나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 (p. 37)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한 번뿐인 인생! 제자리에 머물러 고민하지 말고 떠나보자! (아 참, 그전에 충분한 경비 마련이 우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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