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중·고를 다니면서 사회 과목의 첫 수업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국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은 연령에 따라 달랐지만 이 사실 하나만은 공통적으로 배웠다. '국가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한다.' 2014년 4월 16일. 바닷속으로 사람들을 태운 거대한 배 한 척이 가라앉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언론에서는 '전원 구조 성공'이라는 기사를 보도했고 사고 장면을 보고 있던 국민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은 언론의 보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3년이 지나서야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배가 육지로 돌아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에 분노를 느낀 김대현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가상의 국가를 세운다. 아니, '국가'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내기로 한다.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부터 2038년 미래 국가 아로니아공화국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적 상상력이 담긴 소설이다. 김대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국가의 의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p. 151)

 북위 29도 51분 15초, 동경 126도 56분 27초를 중심으로 23.48제곱 킬로미터. 게양된 '블루토피아' 국기가 휘날리는 아로니아공화국의 대통령 김강현은 일흔 살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제3대 아로니아공화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전야, 김강현은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글을 쓴다. 무엇보다 소중한 아지트 동구 만화방의 부서진 컬러텔레비전을 바꾸기 위해 또래의 삥을 뜯다 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맞았던 어린 시절부터 한국식 암기 교육의 폐해의 수혜자였던 젊은 시절을 보낸 강현을 통해 김대현 작가는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분을 되돌아본다.
 1970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을 시작으로 1980년 민주화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1990년대 한국 IMF 외환 위기 등 김대현 작가는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굵직하게 뽑아내어 그려낸다. 이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현 작가 특유의 위트 있고 도발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씹어버린다. 강현의 입을 빌린 그는 대한민국의 지난 발자취들을 조금은 까칠하게 털어낸다. 그 밖에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암기식 교육의 폐해, 검찰 사건 조작 및 은폐 등)과 중국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조목조목 털어낸다.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은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p. 261)






 사람이 있는 곳에 국가가 있다. 국가의 기본은 영토에 살면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 생각만으로 아로니아공화국은 지금의 JDZ(한일공동개발구역)의 수중 암초 위에 세워진다. 김대현 작가는 아로니아공화국의 건국 과정을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그가 정말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이 '한일공동개발구역 JDZ'를 찾아보고 2028년 6월 22일 이후 벌어질 일들을 오래도록 이야기하면 좋겠다. (p. 415 '작가의 말' 중에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자유, 행복을 위해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국민 스스로도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는지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질문한다. 독도 문제로 일본과 분쟁 중인 우리는 2028년 6월 22일 이후 한일공동개발구역을 두고 또 분쟁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지난 과거를 후회하고 통탄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자세하게 '한일공동개발구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이런 게 있다 수준으로 넘어갔으니 말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의 의무가 중요하듯이 국민의 의무도 중요하다. 비록 태어나면서 국가를 직접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이 국가가 재밌고 신나는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가장 간단한 투표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다.) 국가를 만들자는 발칙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 국가와 국민이 함께 바뀌어야 즐겁고 신나는 나라가 만들어질지도!

  국가가 뭐냐고 물으셨죠? 아로니아가 뭐냐고 물으셨죠? 국가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시민들이 만들고 세우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입니다. 아마도 지금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믿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겠죠. 그래서 저절로 모였고 이렇게 열심히 듣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친구…… 여러분이 말하는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는 여러분이 원하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친구일 겁니다. 여러분의 아로니아……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오로지 이것뿐입니다. (p. 2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