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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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앞에 앉아 있던 어린 '나'는 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공간을 이동한 여고생이 강아지 귀를 가진 요괴와 함께 깨져버린 구슬 조각을 모으러 다니는 이야기. 90년대에 애니메이션 채널을 꽤나 봤다던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애니메이션, <이누야샤>는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뜻도 모를 '바람의 상처!'를 외치고 다닐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 이누야샤의 바람의 상처 한 번이면 웬만한 요괴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니, '강한 게 최고야!'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를 홀리기에는 그만한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그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만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항설백물어》는 충분히 이누야샤와 가영(카고메)의 모험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가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항설백물어》는 그것보다 시간이 더 지난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에도를 떠나 백 가지 괴담을 모으러 다니는 이야기 수집가 모모스케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한 무리를 만나게 된다. 《항설백물어》는 모모스케가 이 무리를 만나고 난 이후의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인형사 오긴, 그리고 신탁자 지헤이와 함께 모모스케는 기묘한 소문에 얽힌 사건들을 해결한다.

  지헤이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어느 시절이라도 괴담은 있는 법이지요. 이것만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저는 괴담이야말로 이야기의 왕도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아, 저기 그런 까닭에 저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주술, 미신, 괴이쩍은 소문,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지요. (p. 96)

  비가 내리는 밤이면, 어느 지역의 계곡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팥을 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 있는 절에는 스님으로 둔갑해 오십 년을 살아온 여우가 있기도 하고,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싸우다 머리가 잘려도 생을 건너가며 계속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인간으로 변신해 살아가다 개에게 물려 죽은 너구리가 있기도 하고, 주인에게 잡아먹히고 나서 매일같이 집을 찾아오는 말의 영혼, 억울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버드나무의 저주, 그리고 옛날 황후의 시신을 버린 곳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여인들의 썩은 송장까지 매혹적이고 기묘한 7가지의 이야기들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누야샤와 가영(카고메)가 구슬 조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나 요괴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오히려 이누야샤와 가영이의 구슬 조각을 뺏으려 한다. 그것처럼 《항설백물어》에도 괴소문에 가려진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모모스케와 일행들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동생과 처, 자식까지 죽이는 인간의 욕심을 저자 교고쿠 나쓰히코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악취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p. 502)

  인간의 추악한 본성 앞에 서게 된 이누야샤와 가영이는 바람의 상처를, 모모쓰케와 일행은 "어행봉위!"를 외치며 요령을 짤랑 흔든다. 세상의 모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욕망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괴소문은 우리 모두가 사악한 마음에 빠져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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