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수 있는 배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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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다 제각각이잖아. 여기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지. (p. 42)

  《편의점 인간》으로 사회의 문제를 꼭 집어낸 무라타 사야카의 신작 《멀리 갈 수 있는 배》의 첫 장을 넘겼을 때, 이 작품이 결코 쉽게 읽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다루고 있었기에 이 거대하고도 묵직한 주제에 대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라타 사야카는 세 여성을 통해 이 거대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다.
  섹슈얼리티는 성행위에 대한 인간의 성적 욕망과 성적 행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제도와 규범들을 뜻한다. 무라타 사야카는 리호, 치카코, 그리고 츠바키라는 세 여성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적 욕망, 그리고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제도와 규범들을 풀어낸다. 어쩌면 나와 당신이 당연하게 여겼을 '여성'이라는 성별이 사회제도에 의해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서 무라타 사야카는 세 여성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잠시 넋을 놓고 거울을 쳐다보고 있던 리호는 왠지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생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가 피부 위에서 뒤섞여 있는 지금 이 상태라면 2차 성징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체 발달에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다시 한번 2차 성징을 찾아서 좋아하는 성별을 골라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 26)

  열아홉의 리호는 남자들과 잘 어울릴 정도로 털털하고 시원한 성격을 가진 여성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들과의 섹스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리호는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소녀처럼 자신의 2차 성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여성을 좋아하는지 혹은 남자를 좋아하는지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남장을 시도하고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은밀하면서 동시에 개방적인 장소인 독서실을 선택한다. 무라타 사야카는 리호를 통해 사회제도와 규범이 정한 '성별'에 대한 문제를 짚어낸다. 남성과 여성, 이분적인 개념에 집착하며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리호는 독서실에서 서른한 살의 치카코와 츠바키를 만나게 된다.
  치카코는 인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서 우주의 영원성에 집착하며 육체적인 관계에 대해서 그저 모든 것을 냉철하게 바라본다. 치카코는 스킨십을 비롯한 육체적 접촉은 그저 물질의 접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이 되는 순간으로 느끼길 바란다. 한편, 츠바키는 한밤중에도 선크림을 바를 정도로 자신의 여성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여성에 대한 오랜 사회적 관념들에 사로잡혀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저 독서실에서, 배에서, 어딘가 멀리 자유로운 곳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나에게는 노아의 방주였거든요. (p.168)

  독서실에서 저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이 성취하는 바를 원하기 위해 독서실로 모여들었다. 리호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성별'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치카코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감정 교류를 느끼고 싶었으며, 츠바키는 오랜 사회적 관념에 자신을 가두면서도 리호의 제안에 흔들린다. 각자만의 세계 속 노아의 방주를 탄 그녀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항해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만약 치카코 씨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저와 헤어지려고 하는 거라면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곳과 억지로 융합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요. 제가 살고 있는 세계도 조금은 특별할지 모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고 각자의 호흡을 유지하면서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거죠. (p. 238)

  무라타 사야카는 이 세 여성으로 하여금 짚어낸 섹슈얼리티에 관한 고민들을 츠바키가 관심을 보였던 이세자키라는 남성의 대사를 통해서 감싸 안는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호흡을 유지한 채 함께 있는 것 그 자체로, 무라타 사야카는 《멀리 갈 수 있는 배》 속 세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도 그 수많은 고민들을 감싸 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우리는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 어쩌면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우리 사회의 수많은 리호, 치카코, 그리고 츠바키들이 그들만의 방주를 더 멀리 항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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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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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과학과 의학의 진보로 이제 인간은 질병에서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과거에 비해 늘어난 수명으로 '백세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의 수명을 100세라고 가정한다면 50세는 딱 절반의 나이다. 그동안 살아온 치열한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내기 위한 준비 단계인 그런 나이. 공자가 50세에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여 '지천명'이라고 불리는 이 지혜의 나이를, 중년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중년, 잠시 멈춤》은 저자 마리나 벤저민이 '폐경'이라는 신체적 변화를 겪고 난 후 자신의 심리를 써 내려간 책이다. 젊음이 떠난 후 남아 있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의 나이 '50'이 자신을 위한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중년에 접어든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걱정들을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만의 담담하면서 시원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길을 가다 시들기 직전의 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꽃잎의 바깥쪽 가장자리는 이미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고, 꽃의 형태를 잡아주는 꽃받침은 힘없이 시들어가고, 꽃잎은 떨어지기 직전이지만, 그래도 사실 그 꽃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답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을 사이에 두고, 활짝 피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한 동시에 막 스러지기 시작한 모습도 갖고 있기 때문에. (p. 28)

  마리나 벤저민은 준비할 새도 없이 자신에게 찾아온 '폐경'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남들처럼 불안정한 생리 주기를 시작으로 하여 어느 순간 찾아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마리나는 뜻밖의 수술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폐경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혼란스러웠던 그녀는 이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따금 드는 우울감에 살짝 괴롭기도 하지만 호르몬 치료를 통해 극복해낸다.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달라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이 물리적 치료에 언제까지나 기대지 않기로 작심한다.

  《중년, 잠시 멈춤》은 젊음과 늙음, 딱 그 가운데 선 여성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마리나는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젊음과 늙음, 그러니까 그녀의 딸과 엄마의 삶을 바라본다. "모든 엄마는 딸들이 성인 연성에 가까워질수록, 자기 자신은 (성인 여성의 세계와) 멀어지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p.143)"라고 비유하며 사춘기의 딸과 중년의 자신이 신체적 변화를 넘어서서 어떤 심리적 변화를 느끼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라 둔해지고 약해진 엄마의 노년을 바라보면서 마리나는 어떻게 중년을 보낼지 다짐한다. "쉰을 코앞에 둔 나는 그렇듯 자유로운 탐험이 발견을 이끌고, 그런 발견을 통해 소유하게 되리라는 걸 확신한다.(p. 181)"라며.

  우리 몸은 나이의 무게를 견딘다. 그래서 우리 몸은 중년기에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다. 감지하기 어렵지만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는 것, 눈에 띄지 않게 신경세포의 발화 빈도가 줄거나 발화력이 약해지는 것, 피로감이 높아지는 것, 점차 행동이 굼떠지는 것 등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들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재조정할 뿐 아니라 우리 생각의 형태 또한 변화시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 242)

  《중년, 잠시 멈춤》을 읽으면서 중년의 나이에 놓인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깊게 내색은 하지 않으셨겠지만, 속으로 굉장한 고민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마리나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중년은 어떨까란 생각도 들었다.
"누구도 자신의 삶 전체를 뒤돌아 볼 수는 없다. 단지 부분부분만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참고하거나 가설 혹은 까다로운 질문을 바탕으로 우리 삶 전체를 상상해본다.(p. 82)" 언젠가 다가올 시기겠지만, 나는 이렇게 무덤덤하면서 시원하게 그 시기를 보낼 수 있을까. 그 시기가 오면, 나도 한 번쯤은 이렇게 삶의 부분부분 돌아보고 잠시 멈춰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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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이 - 아홉가지 무민 골짜기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6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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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용품이나 디자인 소품에서 자주 만났던 무민의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거짓 처음이었다. 코인지 입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뭉툭하고 동글한 얼굴에, 하마를 닮은 듯한 귀여운 생물체 무민은 토베 얀손의 연작 소설 주인공이다. 무민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캐릭터로 처음 만나게 되며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매력에 빠져 무민이 그려져 있다면 살까, 말까 고민하다 이렇게 소설로 만나게 되니 너무도 반가웠다. 사실 무민을 제외하고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 하얀 하마처럼 생긴 종족 전체를 무민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다른 캐릭터들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에 무민 골짜기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무민처럼 소설이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캐릭터들은 널리 사랑받아 왔다. 무민처럼 비슷하게 곰돌이 푸도 디즈니 사의 캐릭터로 재탄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곰돌이 푸 영화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아해왔다. 무민도 그와 비슷하게 소설 속 캐릭터치고는 굉장히 친숙한 것이 큰 매력이다.
  토베 얀손은 매우 독특한 스타일로 '무민'의 이야기를 구축해나간다. 이렇게 사랑받는 캐릭터들의 원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대부분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곰돌이 푸의 경우에도 숲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곰돌이 푸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드물다. 《보이지 않는 아이》는 무민이 주인공이거나 혹은 주인공이 아닌 단편 소설 아홉 편이 엮인 소설집으로, 무민이 등장하지 않아도 토베 얀손은 특정 캐릭터들을 모두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적어내려간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아이》의 무민 골짜기 주민들은 모두 다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나도 어엿한 이름이 있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다 의미가 있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티ㅡ티ㅡ우우인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티ㅡ티ㅡ우우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고 생각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어? (p. 26)


 


《보이지 않는 아이》를 읽다 보면, 무민 외에도 무민 파파, 무민 마마 혹은 무민의 단짝 친구인 스너프킨, 조금은 심술 맞은 미이 등 다양한 인물들 하나하나에 자연스럽게 애정이 간다. 사실 무민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를 자주 보아서 그런지 굉장히 겨울 분위기에 맞게 잔잔하고 조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 꽤나 있었다. 무민 골짜기에서는 토베 얀손의 상상 속에서 마치 환상의 나라처럼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주인공들을 각자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구축해 나간다. 
 
  내가 널 돌봐 주고 사랑해 줄게. 밤에 내 베개에서 자도 돼. 네가 더 커서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랑 바다에서 헤엄칠 수도 있어. (p. 84)

  무민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무민 연작 소설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귀여운 매력에 덧붙여 굉장히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매력까지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아이》의 마지막 이야기 '전나무'를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앞으로 다가올 겨울과 크리스마스가 매우 기대된다. 올겨울은 무민과 함께 보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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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
존 벨레어스 지음, 공민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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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거리 곳곳에 '할로윈' 분위기가 조성된다. 연예인들의 할로윈 코스튬에 관한 기사도 여느 때보다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지 항상 이 시기 즈음이 되면 판타지 장르의 영화들을 찾아보곤 한다. 애니메이션 <유령신부>, <몬스터 호텔>이나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등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가 조금은 어우러진 그런 영화들 말이다. 갑작스럽게 바빠진 일정 탓에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할로윈에 맞춰 흥미진진한 영화 하나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잭 블랙과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가 그 주인공이었고, 나는 영화보단 원작 소설을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딕 소설의 양식을 고스란히 따른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는 부모님을 여읜 루이스가 유일한 혈육인 조너선 삼촌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몬스터 하우스>를 연상하게 만드는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 속 조너선 삼촌의 집은 여느 평범한 집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루이스는 어딘가 미스터리한 이 집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던 중, 매일 밤마다 무언가를 찾아 집 안 복도를 돌아다니는 조너선 삼촌을 마주하게 된다. 조너선 삼촌은 루이스에게 자신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고백하며 이 미스터리한 집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사실 자신과 이웃집에 살고 있는 플로렌스는 마법사이며, 과거 이 집의 주인이 집 어딘가에 마법 시계를 숨겨 놓았다고.

  대부분의 마법은 평범한 사물 위에 생겨난단다. 사물을 놓고 거기에 주문을 걸거든. 내가 아는 어떤 마녀는 적을 없애려고 그 사람의 사진을 배수로에 넣었어. 사진 속 얼굴이 물에 다 씻겨 내려가면 남자가 죽게 될 거라 생각했지. 평범한 방법이야. 그러니 아니란다, 루이스. 이 시계는 저기 있는 할아버지만큼 실재하는 거야. 그저 마법에 걸린 것이 다를 뿐이지. 하지만 무슨 용도로 마법을 걸어 두었는지는 삼촌도 아직 몰라. (p. 54)

  존 벨레어스는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에 마법과 공포라는 소재를 넣어 읽는 내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조너선 삼촌과 플로렌스 부인이 어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루이스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집 안 전체에 울리는 알 수 없는 마법 시계 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조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한편,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는 조너선 삼촌과 살게 된 루이스가 낯선 곳에서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그려내기도 한다. 조너선 삼촌과 플로렌스 부인이 마법사라는 사실에 적응하는 과정과 더불어 루이스가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함께 풀어낸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친구'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존 벨레어스는 루이스를 통해서  보여준다.

  게다가 루이스를 절망에 빠지게 만든 게 하나 더 있었다. 루이스는 타비를 잃었다. 계획을 세우고 몰래 집을 빠져나와 온갖 짓을 다 했지만 친구를 잃었다. 어쩌면 그 일 때문인지도 몰랐다. 죽은 사람을 깨울 수 있다고 말한 건 굉장하지만, 진짜로 살려내는 건 다르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은 마법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p. 132)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를 읽으면서 그리 매끄럽지 못한 전개가 조금은 아쉬웠다. 2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에서 마법과 미스터리한 공포 분위기에 집중하면서 전개되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화려한 CG 기술을 이용하여 이 자연스럽지 않은 전개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차올랐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시작되었지만, 뒤늦게나마 할로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소설과 영화 둘 중 하나를 골라보면 될 것 같다. 개인의 취향에 맞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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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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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시인이 고독을 노래한다. 알렉산더 포프는 "부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채 살게 해주소서"라고 갈망했다. 하지만 고독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일반적으로 더없는 행복과 고통의 차이는 선택된 고독인가, 원치 않는 고독인가의 차이인 듯하다. (p. 209)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SNS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오프라인 외에도 온라인에서까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를 온라인에서 이어나갈 수도 있었고, 온라인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반대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런 관계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피로함을 안겨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요즘같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고독'이 존재하기에는 어려워졌다. 오프라인, 온라인 속에서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기 시작하고, 타인을 상대하다 보니 개인의 시간을 갖는 데에는 제한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제 이 사회에서 홀로 남겨지는 '고독'이란 두렵고 무서운 것이 되어 버렸다.

  '천하무적 젊음'이라는 축복을 누리며, 윙윙 소리를 내는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며. 그러다 어떤 생각이 점점 커지더니 '깨달음'이 되고, '단호한 결심'으로 굳어졌다. 살아온 날들을 통틀어 그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다. 타인과의 만남은 전부 충돌처럼 보였다. 운전하는 동안 어쩌면 자기 안에서 두려움과 전율의 웅성거림을 느꼈을 수도 있다. (p. 120)

  《숲속의 은둔자》는 저자 마이클 핀클이 27년간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한 크리스토퍼 나이트라는 인물에 대한 기사를 접한 뒤, 그를 취재한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이다. '미국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리는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27년간 1000번의 무단 절도를 범하면서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다 2013년 파인 트리 캠프에서 식량을 절도하다 발각되게 된다. 마이클 핀클은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발각되는 현장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그에게 편지를 써 인터뷰를 요청한 것,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마치 소설처럼 서술한다.
  숲속으로 들어간 나이트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두렵고 무서워하는 고독과 고요, 무엇보다도 정적은 나이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는 늦여름 밤의 고요한 호숫가에 조용히 물에 떠 누워 있는 상태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나이트는 홀로 있는 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는 몽상이나 사색에 자주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시작하여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현대인으로서는 몽상과 사색에 빠질 여유가 없다. 혹여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지루함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숲에서 지낸 생활 가운데 가장 그리운 것은 고요와 고독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상태예요. 가장 그리운 건 정적이에요"라고 나이트는 말했다. 숲은 꽁꽁 얼어붙고 동물들은 구덩이 속에 들어간 자연 그대로의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 이르려면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다. (p. 217)

  혼자 있는 시간이 짧은 현대인에 비해서 나이트는 27년의 긴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된다. 마이클 핀클은 《숲속의 은둔자》를 통해 나이트야말로 진정한 은둔자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를 진정한 은둔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은둔자는 '사회에서 벗어나 멀리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나이트가 사회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고향 마을과 멀지 않은 숲속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점, 사람들의 물건을 무단 절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 점, 그리고 숲속에서도 끊임없이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으며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던 점들을 엮어본다면 그를 은둔자라고 지칭하기엔 조금 거리가 멀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구나 나이트가 물건을 훔쳐 가는 바람에 안전의 위협을 받은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이트는 그저 숲속에 사는 이방인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숲속의 은둔자》 속 나이트는 굉장히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인간은 남들 앞에선 언제나 세상에 내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쓴다. 심지어 혼자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연기를 한다. (p. 221)" 숲속의 고요와 고독 사이, 그 정적에서 나이트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했다. 피로한 관계 속에서 지치고 있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 남겨진 시간, 고요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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