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과학과 의학의 진보로 이제 인간은 질병에서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과거에 비해 늘어난 수명으로 '백세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의 수명을 100세라고 가정한다면 50세는 딱 절반의 나이다. 그동안 살아온 치열한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내기 위한 준비 단계인 그런 나이. 공자가 50세에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여 '지천명'이라고 불리는 이 지혜의 나이를, 중년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중년, 잠시 멈춤》은 저자 마리나 벤저민이 '폐경'이라는 신체적 변화를 겪고 난 후 자신의 심리를 써 내려간 책이다. 젊음이 떠난 후 남아 있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의 나이 '50'이 자신을 위한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중년에 접어든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걱정들을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만의 담담하면서 시원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길을 가다 시들기 직전의 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꽃잎의 바깥쪽 가장자리는 이미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고, 꽃의 형태를 잡아주는 꽃받침은 힘없이 시들어가고, 꽃잎은 떨어지기 직전이지만, 그래도 사실 그 꽃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답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을 사이에 두고, 활짝 피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한 동시에 막 스러지기 시작한 모습도 갖고 있기 때문에. (p. 28)

  마리나 벤저민은 준비할 새도 없이 자신에게 찾아온 '폐경'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남들처럼 불안정한 생리 주기를 시작으로 하여 어느 순간 찾아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마리나는 뜻밖의 수술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폐경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혼란스러웠던 그녀는 이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따금 드는 우울감에 살짝 괴롭기도 하지만 호르몬 치료를 통해 극복해낸다.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달라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이 물리적 치료에 언제까지나 기대지 않기로 작심한다.

  《중년, 잠시 멈춤》은 젊음과 늙음, 딱 그 가운데 선 여성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마리나는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젊음과 늙음, 그러니까 그녀의 딸과 엄마의 삶을 바라본다. "모든 엄마는 딸들이 성인 연성에 가까워질수록, 자기 자신은 (성인 여성의 세계와) 멀어지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p.143)"라고 비유하며 사춘기의 딸과 중년의 자신이 신체적 변화를 넘어서서 어떤 심리적 변화를 느끼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라 둔해지고 약해진 엄마의 노년을 바라보면서 마리나는 어떻게 중년을 보낼지 다짐한다. "쉰을 코앞에 둔 나는 그렇듯 자유로운 탐험이 발견을 이끌고, 그런 발견을 통해 소유하게 되리라는 걸 확신한다.(p. 181)"라며.

  우리 몸은 나이의 무게를 견딘다. 그래서 우리 몸은 중년기에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다. 감지하기 어렵지만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는 것, 눈에 띄지 않게 신경세포의 발화 빈도가 줄거나 발화력이 약해지는 것, 피로감이 높아지는 것, 점차 행동이 굼떠지는 것 등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들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재조정할 뿐 아니라 우리 생각의 형태 또한 변화시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 242)

  《중년, 잠시 멈춤》을 읽으면서 중년의 나이에 놓인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깊게 내색은 하지 않으셨겠지만, 속으로 굉장한 고민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마리나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중년은 어떨까란 생각도 들었다.
"누구도 자신의 삶 전체를 뒤돌아 볼 수는 없다. 단지 부분부분만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참고하거나 가설 혹은 까다로운 질문을 바탕으로 우리 삶 전체를 상상해본다.(p. 82)" 언젠가 다가올 시기겠지만, 나는 이렇게 무덤덤하면서 시원하게 그 시기를 보낼 수 있을까. 그 시기가 오면, 나도 한 번쯤은 이렇게 삶의 부분부분 돌아보고 잠시 멈춰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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