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챕터
위니 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한길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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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모든 사람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기를 쓰고 과거에 있었던 어두운 챕터들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러나 그 챕터들이 모두 모이면 책이 되고, 도서관 하나를 가득 메운다. 제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모든 사람은 여전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어떤 곳을 잊으려 애쓴다. (p.532) 

   책을 읽으면서 이토록 화가 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잠시 화를 식히기 위해 한 템포 쉬고 읽은 책은 ≪다크 챕터≫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토록 화가 난 이유는 ≪다크 챕터≫ 속 이야기가 단순한 픽션이 아니란 사실 때문이었다. ≪다크 챕터≫는 책의 저자 위니 리가 2008년 벨파스트 힐즈를 하이킹하던 중, 15세 범인에 의해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고백하는 자전적인 성격의 장편소설이다. 성폭행 당하기 이전의 생활부터 성폭행 당시의 상황, 그리고 성폭행 이후 열린 재판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묘사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자세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다크 챕터≫ 속 비비안의 감정에 쉽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비비안은 어려서부터 여행에 대한 꿈을 꾼다. 혼자 아일랜드 오솔길을 따라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걷는 상상에 빠져 있던 소녀는 어느새 자라 하버드대에 입학하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1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받은 비비안은 가이드북에 소개된 벨파스트 외곽에 있는 하이킹 코스에 가보기로 마음먹는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벨파스트 힐즈의 공원에서 그녀는 하얀색 점퍼를 입은 15세 소년을 마주치게 된다. 소년으로 인해 자신의 하이킹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던 비비안은 소년에게서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은 눈빛이 달라져 비비안에게 달려든다.

  강간을 당한 여자들이 있다. 뉴스에 나오는 여자들, 친구의 친구의 친구 같은, 이름 없는 존재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니다. 이런 일은 그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나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강간을 당한 사람이다.
  (p.168)

-

  작가 위니 리는 비비안을 통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다크 챕터≫에 모두 쏟아낸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가 느낀 감정의 반의반이라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녀가 차마 글로 담아내지 못했던 감정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비비안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내게,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가해자 조니의 감정 상태이다. ≪다크 챕터≫는 피해자의 시선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을 동시에 전달하여,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니에게도 불행한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로 인해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덧붙여준다. 실제로 범죄자들 중에서는 불행한 어린 시절로 인해 그것이 잘못된 성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조니도 폭력의 피해자였고, 결국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았음을 이야기한다. 작가 위니 리는 그렇게 가해자의 상처까지 끌어안으면서 우리 사회에서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한편, ≪다크 챕터≫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적 피해와 약한 사법 체계에 대한 문제도 두드러진다. 아마 가장 화났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비비안이 성폭행을 당한 이후에 경찰은 사건 조사를 위해 그녀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마치 감정 없는 인형처럼 대해진다. 또, 혹시라도 모를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약을 처방받기 위한 과정을 비비안 혼자서 처리해야 된다. 피해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해서 꾸어야 된다.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는 피해자에게 그 상처를 소독한답시고 소독약을 들이붓는 행위는 너무나도 쓰라리고 아프다.

  망설임. 어젯밤 그녀가 결국 사건을 설명했을 때 스테판이 보였던 태도처럼. 이제 모든 사람이 그녀를 대할 때 망설이는 것만 같다. 경찰만 빼고. 최소한 경찰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 것 같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p.250)

  그 순간 그녀는 이 모든 사법체계가 얼마나 우스운지 생각한다. 혼자 걷다가 그에게 그런 행위를 당한 건 그녀다. 그런데 거의 일 년을 기다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법정 안에 앉아서 수치스러운 진실을 털어놓고, 자신에게 추악한 유혹녀 이미지를 덧씌우는 추잡하기 짝이 없는 변호사들 앞에 섰다가 이번에는 저 아이가 나에 대한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꾸며내는 걸 들어줘야 하다니.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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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성폭행은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바꿔 놓고, 그녀들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회의 그 무엇도 그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사건 조사를 위해 감정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경찰의 조사과정은 수치심과 공포심으로 가득하다는 말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한 심리 치료는 오히려 더 큰 아픔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는 말도 자주 들려온다. 그런 사회 속에서 작가 위니 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꺼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혼자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에 빠진 여성들에게 결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해주기 위해서.

  여러분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금방 회복하기는 어렵지만, 훗날 언젠가 여러분의 삶은 더 나아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피해자의 경험을 제대로 다루는 소설을 쓰려 했습니다. 과거가 존재했고, 반드시 미래가 존재하는 우리 이웃의 삶을 그려내려 했습니다. 성폭행으로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저도 해냈고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도 해냈습니다. (p.13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中)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녀들의 모습은 멋지고 아름답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남아 있을 그녀들에 대한 2차적 피해가 우려되기도 한다. SNS를 통한 그녀들에 대한 비난적인 댓글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결코 그것이 그들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이다. 타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함께 용기 내고, 함께 바꿔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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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 위기의 남자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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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는 옳은 길을 찾기 위해 틀린 길을 헤매고 다녀야 하기도 하는 거야. (p.349) 

  드롭(Drop).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열다섯 번째의 이야기인 ≪드롭: 위기의 남자≫는 퇴직을 신청한 보슈에게 퇴직 유예 제도(Deferred Retirement Option Plan)가 내려진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미제 사건 전담반에서 1년간 일하던 보슈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회의감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고민으로 퇴직을 신청한다. 상부에서는 여전히 보슈의 검거 실력을 믿고 있었기에 그에게 퇴직 유예를 내린다. 때마침 보슈는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맡게 된다.
  22년 전 해변가에서 19세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사건에서 발견된 DNA를 분석한 결과, 사건 당시 용의자의 나이가 8세로 밝혀진다. 8살 남자아이가 19살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보슈는 그 사건에 대해 재조사하기로 한다. 보슈가 그 사건에 집중하려던 찰나, 시의원 어빈 어빙의 아들인 조지 어빙이 호텔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국 출신이었던 어빙은 보슈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사인을 밝혀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보슈는 탐탁지 않음에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두 사건의 비밀이 파헤쳐 질수록 보슈는 자신이 하고 있는 형사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살인사건 파일을 만들어야겠어." 보슈가 말했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일들 중 하나였다. (p.163)

 

 

 

 

  클레이, 악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 생각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나는 건지, 아니면 살다 보니 악해지는 건지 얘기했던 거? 행동은 악할 수 있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인간은 악하지 않다고 했던 거? (p.128)

  ≪드롭: 위기의 남자≫에서는 범죄자들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악'하다고 이야기한다. 범죄자들의 범죄 동기는 다양한 원인에 따라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악'한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작가 마이클 코넬리는 아동 성범죄자 클레이턴 펠과 교도소에 수감 중인 닥터 스톤의 아들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세상에 악이 존재하면 어디서부터 오는지 생각하도록 한다.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요. 당신은 거의 날마다 악과 대면하잖아요. 그 악은 어디에서 오는 거죠? 사람들은 어떡하다 악해지는 거죠? 악이 공기 중에 퍼져 있나요? 감기에 걸리듯 악에 걸리는 건가요? (p.230)

  나는 악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해. 클레이턴 펠이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고. 하지만 펠처럼 악을 실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똑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그러니까 환경 말고 다른 것도 있는 거야. 등식의 반대편. 사람들은 잠재된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나고 특정한 환경하에서만 그 무언가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아닐까? (p.232)

  선천적으로 악하다면, '악'에 관한 유전자는 끊임없이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슈가 생각했듯이, 성범죄자들을 상담해주고 재활을 돕는 닥터 스톤의 유전자가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후천적인 요인으로 범죄자들이 악해진다면, 보슈가 말했듯이 같은 불우한 환경을 보내도 다른 결과를 보이는 케이스들도 있다. 작가 마이클 코넬리는 보슈를 통해 '악'에 대해 설명하면서 형사라는 그의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하도록 만든다. 범인을 검거할 때는 냉철한 보슈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보슈의 모습에서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예요. 이자와 같은 인간들 때문에. 이런 괴물들은 우리가 막아 세울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거든요. 숭고한 일이에요, 우리가 하는 일. 그걸 잊지 마세요. 선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했는지 기억하시라고요. (p.387)

 

 

 

   두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드롭: 위기의 남자≫는 굉장히 빠른 속도감을 가진다. 쉴 새 없이 사건의 실마리들이 제공되고 용의선상에 놓일 법한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슈와 함께 진짜 용의자를 찾아간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반전들로 어지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드롭: 위기의 남자≫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릴감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퇴직 유예가 내려진 보슈가 계속해서 형사 일을 하며 다음 사건도 멋지게 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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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기 1
자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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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4학년. 모두가 꿈꾸는 대학 캠퍼스의 로망은 1학년 때 이미 사라져 버렸다. 네이버 웹툰 <치즈 인 더 트랩> 속 유정 선배는 어디에 있으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다정다감한 칠봉이 같은 동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벚꽃이 흩날리는 캠퍼스의 로망은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슬픈 사실로 대체되고,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교수님만 모르세요!'라며 눈물 젖은 독박의 조별 과제와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라며 넘기는 수많은 시험을 거칠 뿐이었다. 이제는 강의실에 앉아만 있어도 느껴지는 고학번의 아우라(아무도 그 곁으로 다가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ㅠㅠ)를 뿜어내며 우연히 알게 되는 신입생의 나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는 4학년이다.
  처음 ≪대학일기≫를 보았을 때, 누가 내 생활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줄만 알았다. 아니, 이렇게 극 사실주의적인 웹툰을 그려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지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는 늘 ≪대학일기≫ 짤방과 이모티콘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시험기간과 과제 마감일이 다가오면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대학일기≫로 가득했다. 그 정도로 인기 많은 ≪대학일기≫를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사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웹툰 형식으로 연재된다지만, 내 입장에서는 한 컷 한 컷 넘기면서 보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귀찮았다. 한눈에 볼 수 있는 단행본은 그 귀찮음을 날릴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개강 일주일이 지나면, 방학 내내 튼튼했던 몸도 매우 빈약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은 너무나도 고역이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와 지하철을 2시간 동안 타고 통학하는 것은 이 세상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대학일기≫를 그린 자까작가는 매우 재치 있는 표정과 대사로 대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대학일기≫는 대학 생활 외에도 자까 작가가 경험한 플라잉 요가, 탈색, 라섹 후기, 장염으로 인한 입원 등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들도 함께 있기 때문에 대학생이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나도 플라잉 요가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대학일기≫에 그 부분이 연재되어서 너무 재밌게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단행본으로 다시 그 에피소드를 접하니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내 경험하고 너무 비슷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직도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일기≫를 추천하고 싶다. 불행하게도, 너희가 꿈꾸는 유정 선배는 없다고. CC(Campus Couple) 대신에 너희를 기다리는 것은 맥주 500CC 일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이게 다 장난인 줄 알겠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은 변함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과제와 곧 벚꽃과 함께 다가올 슬픈 중간고사를 앞둔 많은 대학생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빛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전국의 모든 대학생들의 대학 라이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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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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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세계 문학 고전으로 잘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당시 부로 축적된 신분 계급사회의 면모와 결혼에 대한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오만과 편견>은 다아시의 오만과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맞물리며 생기는 오해의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로맨스 서사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할리퀸 로맨스의 대모 주드 데브루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로맨스 서사를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로맨스 서사에 공감할 수 있도록 주드 데브루는 현대적인 감성을 첨가하기로 한다. 오만함으로 가득했던 다아시는 매력적인 할리우드 영화배우 테이트로, 신분에 주눅 들지 않고 늘 당당했던 엘리자베스는 솔직하고 당돌한 요리사 케이시로 재탄생한다.

  버지니아 서머힐에 살고 있는 케이시는 어느 날,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샤워를 하는 집주인 테이트의 모습을 보게 된다. 테이트는 휴대폰을 들고 있던 케이시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을 것이라고 오해하며 화를 낸다. 케이시는 사과의 뜻으로 파이를 구워 테이트에게 가져다주지만, 테이트가 친구 잭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고 테이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다. 
  한편, 테이트의 저택을 관리하던 관리인은 집 안에 공작새를 풀어 놓는다. 케이시의 방 안에 커다란 공작새가 들어간 것을 알게 된 테이트는 공작새를 쫓기 위해 케이시 방을 어지럽힌다. 방 안에 들어온 케이시는 테이트가 공작새를 쫓기 위했다는 말을 믿지 않고 그의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첫 만남부터 오해로 가득 찬 그들은 테이트의 친척이자 케이시의 친구 키트가 연출하는 연극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로 다시 만나게 된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연극을 끝마칠 수 있을까?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의 오만함과 자만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기적인 무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이 싫어졌고 이 마음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예요." _p.133

 

 

 

  작가 주드 데브루는 ≪파이와 공작새≫를 통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낸다. 엘리자베스 역의 케이시는 굉장히 솔직하고 당돌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는 유일하게 모두의 선망의 대상인 테이트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전 남자친구로부터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은 아픔이 있었고 이 점은 케이시가 테이트의 직업인 '할리우드 영화배우'에 대한 편견과 함께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만든다.

  뭐라고 말하겠는가. '당신이 앞으로 나한테 할 짓을 뻔히 아니까 내 마음 안 다치게 보호하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미래를 놓고 이야기하게 될 테니까. _p.333

  하지만 할리퀸 로맨스의 주인공 매력남 테이트는 첫눈에 반한 케이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말에 녹아 있는 귀여운 자만심은 상대방의 기분을 종종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테이트는 케이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자신의 여자에겐 한없이 자상한 테이트의 모습은 굉장히 호감으로 다가온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떤 아가씨의 침실에서 미친 새랑 싸우고 난 다음에 파이를 숟갈로 마구 퍼먹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더라고요. 천상의 맛이 이런 걸까 싶었죠. 그런데 그 아주 예쁜 아가씨가 나한테 소리를 지르더군요. 그때 머릿속에 든 생각은 그 아가씨 뺨이 어쩜 저렇게 분홍빛일까, 그리고 온몸 어디 한 군데 탐스럽지 않은 데가 없구나, 하는 것뿐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을 바꾸고 파이를 숟갈로 퍼먹게 됐죠. 그러면 그때의 좋았던 추억이 떠오르거든요." _p.294

  이 매력적인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이어주기 위해 특별한 역할을 하는 베넷 부인의 올리비아는 작가 주드 데브루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재해석 한 인물 중에서 가장 손꼽힌다. <오만과 편견> 속에서 베넷 부인은 굉장히 세속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배우자인 베넷이 죽기 전에 네 딸을 시집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주드 데브루는 베넷 부인 역의 올리비아를 테이트와 케이시를 위한 멘터 역할로 세우고, 케이시가 테이트에 대한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케이시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리나요? 그러면 안 돼요. 본인의 직감을 믿어요. 정말로 뭘 원하고 있는지 생각해야죠." _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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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인상에 느껴졌던 오만함과 그로 인한 편견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의 장애물이 되었다면, 케이시의 파이와 저택의 공작새는 케이시와 테이트의 사랑을 연결해주고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색다르게 느껴보고 싶다면, 주드 데브루의 ≪파이와 공작새≫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21세기 감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캐릭터는 당신에게 또다시 설레는 로맨스의 길로 이끌어 줄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파이와 공작새≫에 거론된 콜린 퍼스, 테일러 스위프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실명을 찾아내며 현대적인 감성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다.

  그는 케이시의 뺨에 손을 대고는 얼굴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카시아, 나는 당신이 정말 좋아요. 당신이 내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의 모습도 봐 주는 게 좋다고요. 나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내가 어때야 한다는 식으로 날 판단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보여 주는 삶에 대한 열정도 좋아요." _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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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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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 나는 방 안 물건이 가득 찼음에도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이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볼까 하다 다음 날 나는 양재 꽃 시장으로 향했다.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찬 하우스에 들어선 나는 초보자들도 쉽게 키울 수 있다는 다육식물이 담겨 있는 화분 3개를 구입했다. 내 손바닥보다 더 작은 다육이들이었는데도, 집 안이 가득 차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창틀에 놓아 충분하게 햇빛을 보게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물도 꾸준히 줬다. 그중 유독 하나가 굉장히 잘 자랐는데, 매일같이 키가 크는 다육이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랑은 다육이에게 독이 되었나 보다. 무럭무럭 자라던 다육이는 조금씩 시들어가기 시작했고, 어느 날 보니 화분에서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왔다. 내 삶에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생각보다 식물이 주던 즐거움이 컸던 것이었다.

  정원 일은 내게는 고요한 명상, 고요함 속에 머무는 일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향기를 풍기게 해주었다. 정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땅에 대해, 그 현혹하는 아름다움에 점점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_p.8

  ≪땅의 예찬≫의 저자 한병철은 직접 정원을 가꾸면서 느낀 큰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흙길을 걷는 시간보다 아스팔트를 걷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마치 낭만이 실조된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점점 더 현실감을 잃어간다. 그래서 한병철 작가는 '정원'에서 잃어버린 낭만을 다시 찾고자 한다. 조율되지 않은 정원은, 낭만이 가득하다.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 가을 크로커스와 봄 크로커스는 모습은 비슷해도 시간감각이 전혀 다르다. 모든 식물이 매우 뚜렷한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오늘날 어딘지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부족한 인간보다 심지어 더욱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놀랍다. _p. 23

 

 

  한병철 작가는 ≪땅의 예찬≫을 통해 정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정원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꽃이 활짝 만개한 봄의 정원을 많이 떠올리겠지만, 한병철 작가는 정반대의 겨울의 정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고요하게 잠든 겨울의 정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의외로 겨울의 정원은 향기로 가득하다. 추위를 견뎌내고 피는 꽃들의 향기와 또, 주변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의 향기의 조화가 어우러진 겨울의 정원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멋있게 느껴진다. 새벽이 있기에 아침이 오는 것처럼, 겨울의 정원이 있기에 봄의 정원이 있다. 겨울은 새롭게 찾아 올 봄을 기대하도록 만들어 주면서, 그 자체로 우리에게 낭만을 가져다준다.

  한편, ≪땅의 예찬≫을 읽으면서 꽃들의 이름이 다양하단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세상에 다양한 꽃의 이름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한병철 작가가 언급해줌으로써 알게 되는 꽃의 이름들이 더 많았다. 그런 꽃들의 이름을 한병철 작가는 굉장히 사랑스럽게 불러준다. 그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치 내가 그 꽃을 직접 본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꽃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낭만 가득한 정원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름다운 꽃 이름에서 나는 그 어떤 명령이나 권력 요구가 아니라 사랑과 애착을 듣는다. 이름을 주는 디오티마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꽃들에게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준다. 꽃 이름은 사랑의 말이다. _p.84

  3월의 끝이 보이는데도, 여전히 추위는 가실지 모르는 것 같다. 꽃샘추위임에도 불구하고 ≪땅의 예찬≫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봄'을 더 빨리 접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정원 사랑이 느껴지고, 그 따뜻함으로 인해 나의 마음에도 봄이 온 듯한 느낌이다. 곧 우리의 거리는 낭만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낭만을 하루빨리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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