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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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 나는 방 안 물건이 가득 찼음에도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이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볼까 하다 다음 날 나는 양재 꽃 시장으로 향했다.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찬 하우스에 들어선 나는 초보자들도 쉽게 키울 수 있다는 다육식물이 담겨 있는 화분 3개를 구입했다. 내 손바닥보다 더 작은 다육이들이었는데도, 집 안이 가득 차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창틀에 놓아 충분하게 햇빛을 보게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물도 꾸준히 줬다. 그중 유독 하나가 굉장히 잘 자랐는데, 매일같이 키가 크는 다육이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랑은 다육이에게 독이 되었나 보다. 무럭무럭 자라던 다육이는 조금씩 시들어가기 시작했고, 어느 날 보니 화분에서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왔다. 내 삶에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생각보다 식물이 주던 즐거움이 컸던 것이었다.

  정원 일은 내게는 고요한 명상, 고요함 속에 머무는 일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향기를 풍기게 해주었다. 정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땅에 대해, 그 현혹하는 아름다움에 점점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_p.8

  ≪땅의 예찬≫의 저자 한병철은 직접 정원을 가꾸면서 느낀 큰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흙길을 걷는 시간보다 아스팔트를 걷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마치 낭만이 실조된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점점 더 현실감을 잃어간다. 그래서 한병철 작가는 '정원'에서 잃어버린 낭만을 다시 찾고자 한다. 조율되지 않은 정원은, 낭만이 가득하다.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 가을 크로커스와 봄 크로커스는 모습은 비슷해도 시간감각이 전혀 다르다. 모든 식물이 매우 뚜렷한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오늘날 어딘지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부족한 인간보다 심지어 더욱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놀랍다. _p. 23

 

 

  한병철 작가는 ≪땅의 예찬≫을 통해 정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정원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꽃이 활짝 만개한 봄의 정원을 많이 떠올리겠지만, 한병철 작가는 정반대의 겨울의 정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고요하게 잠든 겨울의 정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의외로 겨울의 정원은 향기로 가득하다. 추위를 견뎌내고 피는 꽃들의 향기와 또, 주변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의 향기의 조화가 어우러진 겨울의 정원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멋있게 느껴진다. 새벽이 있기에 아침이 오는 것처럼, 겨울의 정원이 있기에 봄의 정원이 있다. 겨울은 새롭게 찾아 올 봄을 기대하도록 만들어 주면서, 그 자체로 우리에게 낭만을 가져다준다.

  한편, ≪땅의 예찬≫을 읽으면서 꽃들의 이름이 다양하단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세상에 다양한 꽃의 이름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한병철 작가가 언급해줌으로써 알게 되는 꽃의 이름들이 더 많았다. 그런 꽃들의 이름을 한병철 작가는 굉장히 사랑스럽게 불러준다. 그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치 내가 그 꽃을 직접 본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꽃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낭만 가득한 정원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름다운 꽃 이름에서 나는 그 어떤 명령이나 권력 요구가 아니라 사랑과 애착을 듣는다. 이름을 주는 디오티마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꽃들에게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준다. 꽃 이름은 사랑의 말이다. _p.84

  3월의 끝이 보이는데도, 여전히 추위는 가실지 모르는 것 같다. 꽃샘추위임에도 불구하고 ≪땅의 예찬≫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봄'을 더 빨리 접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정원 사랑이 느껴지고, 그 따뜻함으로 인해 나의 마음에도 봄이 온 듯한 느낌이다. 곧 우리의 거리는 낭만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낭만을 하루빨리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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