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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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옛 연인과 재회한 삼순에게 진헌은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묻는다. 삼순은 그 질문에 "결국은 다 자기 식대로 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갖다 붙이고……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죽었다 깨도 모르는 거죠."라고 답한다. 굳이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어도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는 그렇게 행동할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라며 지레짐작한다. 이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심각하게는 상대방과의 관계도 틀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제90회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원작인 ≪셰이프 오브 워터≫은 인간과 괴생명체의 사랑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손으로 움켜쥐어도 금세 빠져나가는 물에겐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긴 타원형의 컵에 담길 때나 네모난 그릇에 담길 때나 물은 자신을 담아주는 그 사물에 의해서 형태가 정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 사물로부터 벗어나면 다시 형태 없이 흩어진다.

 

그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란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는 항상 화려한 구두를 신고 미 항공 우주 연구소 비밀 실험실로 향한다. 청소부인 그녀는 동료 젤다와 함께 실험실을 청소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실험실 F-1 구역에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청소를 하러 들어간 엘라이자는 동료 젤다가 당황하는 사이 괴생명체를 보게 된다. 그날부터 엘라이자는 삶은 달걀을 괴생명체에게 전해주며 말을 하지 못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실험실의 보안 담당인 스트릭랜드는 한국 전쟁부터 아마존 탐험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이유 모를 혼란스러움을 겪게 된다.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를 본 스트릭랜드는 조용하고 고요한 그녀에게 묘한 이끌림의 감정을 느낀다.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달걀을 가져갈 때의 그 황홀한 감촉. 한 번은 대담하게도 그녀가 손에 달걀을 올리지 않았는데도 그는 달걀을 잡는 척하며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순간 둘은 현재도 과거도 아니고 인간도 짐승도 아닌, 여자와 남자였다. (p.158)

 

 

 

 

 

 

≪셰이프 오브 워터≫은 엘라이자와 그녀의 친구들을 통해 사회에서 아슬하게 서 있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흑인인 젤다, 동성애자 자일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엘라이자는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돈을 모아 세탁소를 차리고 싶어 하는 젤다는 오랜 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승진하지 못한다. 자일스는 자주 가는 파이 가게의 브래드(또는 존)에게 동성애임을 밝혔지만, 돌아오는 욕설로 상처를 받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해 수화로만 대화할 수 있는 엘라이자는 화려한 줄리아의 구두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엘라이자를 관리하는 플레밍은 항상 화려한 신발을 신고 오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타인들이 그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이 처음으로 힘을 과시한 방법은 무엇이던가? 바로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었다. 정글 신도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었다. 그들은 그가 명하는 대로 될 것이다. 초록색은 청록색이 되고 아가미 신은 보물이 되며 레이니 스트릭랜드는 무의미한 존재가 된다. (p.239)

  하지만 스트릭랜드가 보여주는 사랑의 형태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호이트 장군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익숙해진 그는 자신의 아래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자신의 가정도 통제하던 그는 F-1 실험실의 보안 담당이 된 후, F-1 실험실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통제하고자 한다. 괴생명체는 물론이고 박사 호프스테들러, 그리고 청소부 엘라이자까지. 특히 한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던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에게서 느껴지는 고요함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모든 것이 조용히 자신의 아래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스트릭랜드는 타인을 자신이 정해 놓은 통제성이 강한 규칙에 의해서 형태를 정해 놓으려 한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전기봉과 16개의 감시카메라는 그가 정해놓은 사랑의 형태를 그대로 표현해준다.
    그래서 엘라이자와 아가미 신 괴생명체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엘라이자는 아가미와 비늘을 가지고 있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괴생명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험을 알리는 경계선을 그대로 넘어가면서 그에게 더욱 다가가고자 한다. 괴생명체는 양서류의 모습을 지닌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엘라이자에게 서서히 손을 내민다.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가르쳐 주는 수화를 통해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그 어떤 형태로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어떤 틀을 끼우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은 오롯이 푸른빛으로 가득 찬다. 물에도, 사랑에도 정해진 형태는 없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 푸르게 빛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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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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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찾아왔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 거리를 가득 메우고 벌거벗은 나뭇가지들 위로 파릇파릇한 새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이 잎들이 자라나 장맛비에 하나, 둘 톡톡 젖어 들어갈 때, 거리 곳곳을 메울 풀 내음에 아마 나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가장 많이 떠오를 것 같다. 여름의 무더위만큼 열정 깊은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열정의 여름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를 쓴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데뷔작이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서도 삶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오래된 고택에 대해 말하던 마쓰이에 마사시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친다.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p.106)

  대학을 막 졸업한 사카니시 도오루는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간다.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지난 3년간, 신입 직원을 뽑지 않았지만 사카니시는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설계한 휠체어가 있는 집에 대한 설계도를 보낸다. 무라이 선생과 면접을 본 사카니시는 다른 경력자들을 제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여름마다 도쿄를 떠나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에서 일을 진행한다. 여름 별장에 처음 간 사카니시는 곳곳에 무라이 선생의 손길이 깃든 공간에서 누구보다 건축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에 만족한다.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무더운 여름날의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간단하고 간결하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건축에서 사소한 장치를 생각할 때도 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그 장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거야. 취급 설명서 따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우위라고. (p.114)

  그동안 건축의 영역은 크게 외관과 내부 공간의 틀을 만들어 내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실내 건축 분야라고 해도 내부 구조에 맞게 아름다운 정도로만 디자인하는 것이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가구의 손잡이, 일어서고 앉을 수 있는 의자 사이의 여유 공간 등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 무라이 선생의 손끝에서 생명이 깃들기 시작한다. 무라이 선생은 그 어떤 부분보다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인 것을 중요하게 여겨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움직이며 말 그대로 '생활'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데에 집중한다. 공간을 메우는 가구들의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누구보다 사용자에게 맞춰 있는 무라이 선생의 건축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선생님의 국립현대도서관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대로 흘러, 지나간 세월은 이 모형에 사소한 숨결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플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선생님 플랜에 생명이 불어 넣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p.415)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들이 쏟은 더운 열정에 비해 국립현대도서관 경합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경합 준비의 끝자락에 무라이 선생이 쓰러지고,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들은 하나둘씩 치열하고 뜨거웠던 여름의 가루이자와 별장을 떠난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던 무라이 선생의 건축은 사카니시의 마음속에서 생명을 얻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생명이 깃든 곳을 만들고자 했던 무라이 선생의 건축은 타인의 마음에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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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짓,말 - 결코 시시하지 않은
유세윤 지음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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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fake). '거짓, 속임수'라는 뜻의 이 단어와 함께 쓰이면 본래의 뜻에서 허구와 현실을 수시로 넘나든다. 문제는 그런 성격을 지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단어의 앞에 붙어 이것이 거짓인지, 현실인지 구분 못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거짓인 부분은 재미로 덮어진다는 것. '페이크 다큐(다큐멘터리)'라는 방송 장르가 그 부류에선 가장 친근하다.
  그리고 어쩌면, 페이크 다큐만큼 친근해질 장르가 나타났다. 페이크 에세이(fake essay).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에, 거짓이 붙는다면? 허구와 현실을 수시로 넘나드는 진솔한 이야기라는 새로운 장르에 손을 뻗은 그는, 다름 아닌 개그맨이라는 말보단 코미디언으로, 코미디언이라는 말보단 희극인으로, 희극인이라는 말보단 아티스트, 아티스트라는 말보단 종합 예술인으로 불리고 싶은 유세윤이었다.

  재미있게도 4월 1일 만우절에 출간된 유세윤의 페이크 에세이 《겉, 짓, 말》은 유세윤이 직접 겪고 느낀 기괴한 순간들에 대해서 담아내고 있다. 유세윤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름 뒤에 숨겨진 비밀들(겉), 일부러도, 모르고도 아니었던 그의 수많은 행동들(짓),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들(말)로 구성된 《겉, 짓, 말》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로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리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구분 짓는 건 독자의 몫이다.

  나는 사는 게 참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게 행복했고, 그것에 설레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는 누워서 눈을 감고 미래 혹은 무언가를 상상하며 잠이 들곤 했는데, 그 '상상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하루 종일 자는 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깨끗이 씻고 난 뒤 개운한 몸으로 포근한 이불 위에 누워 상상하는 즐거움이란! (p.67)

  한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Jtbc 예능 <아는 형님>을 좋아해 꼬박꼬박 챙겨 보던 중 '아형 뮤비(뮤직비디오) 대전' 특집 편을 보게 되었다. 강호동의 뮤비 감독으로 출연한 유세윤은 100만 원이라는 저예산 뮤비를 찍을 수 있다며 확신했고, 다들 좋은 퀄리티가 나올까 의심했다.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지미집 대신 셀카봉 여러 개를 엮어 사용하고, 카메라 무빙을 위해 장난감 기차를 이용하는 등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는 저예산 뮤비 촬영이었다. 그러나 결과물은 달랐다. 굉장히 화려한 영상미는 물론,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믿을 정도로 선명한 화질과 흔들림 적은 영상은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나는 유세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이전에도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디어들을 들고 나왔으니.

 

 

 

  《겉, 짓, 말》에서도 유세윤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이디어와 재치가 녹아져 있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모든 이야기들에 유쾌함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유독 그가 광고 회사를 설립한 이유, 행복에 대한 기준에 대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때는 미래로 가는 <백 투 더 퓨처 2>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과거로 가는 내용의 <백 투 더 퓨처 1>이 제일 좋아졌다. 나는 과거로 가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내 인생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과거의 나를 보며 지금의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는 정말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때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나를 더 알고 싶었다. (p.130)

 바다에서 많이 안절부절 하던데 그럴 필요 없어요. 파도를 잡아서 라이딩 하는 것만이 서핑이 아니에요. 
 바다에 들어가서 파도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그 모든 게 서핑인
거예요.(p.139)

  간혹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거나 '나는 지금 행복한 걸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행복하다는 기준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러나 유세윤은 그 행복의 기준을 딱 정하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들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순간으로 만들고, 그 기분 좋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코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 순간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되기보다는 가볍게 기분 좋은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에 대해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되는 것. 그것이 유세윤 페이크 에세이 ≪겉, 짓, 말≫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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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쏜살 문고
이지원 지음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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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참 많다. 애써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어느 정도 힘써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이해하지 않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넓다고 하면 넓을 수도 있는 이 세상에, 좁다고 하면 좁을 수도 있는 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너무 많다. 그때마다 나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이해 못할 것이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이처럼 재치 있는 제목의 산문집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는 세상의 불편한 것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꼬집어 주는 명쾌한 책이다. 저자 이지원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는 불편한 것 투성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자 이지원은 그것에 대해 불평한다. 처음 그 불평을 읽을 때 '이렇게 비꼬아서 생각하면, 세상 살아가기는 참 힘들겠다'라고 생각이 들며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읽다 보니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할 말들까지 불평하는 그의 태도가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졌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갖은 의문을 풀어 줄 답은 책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무심히 묻고, 서툴게 대답하다 보면 연결된 매듭이 풀리듯 해답이 하나둘 떠오른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 이루고자 하는 목표, 지키고 싶은 자존심, 내 편과 경쟁자,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느끼는 순간순간……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각자 알아서 규정해야 할 가치가 모두에게 숙제처럼 주어진다. 사색의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런 추상적 가치를 당돌히 규정할 수 있을 떼, 우리는 이 세상을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p.122)

 

 

 

 

 

  돌아서면 잊을 허깨비 정보를 탐독하며, 다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은 질투심에 정신 못 차리고 있지는 않는지. 불안에 등 떠밀려 이것저것 따라 해 봤자 생각만큼 신나지 않을걸. 다른 사람의 성공담에 의지해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지는 잡지식에 휘둘려서는 내 삶을 살 수 없다. 회식 건배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인터넷에서 건배사를 검색할 일이 아니라, 햇빛 좋은 날 회사 한구석에서 차 한잔 마시며 내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말을 차분히 고민해보면 어떻겠는가. (p.62) 

  과자 봉지 뜯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이윤만을 추구하며 상업적인 상품들만 내놓는 기업, 동네 빵집은 안중에도 없게 만드는 파리바게트와 같은 대기업들에 얽매이는 사람들의 태도, '돈 없다, 시간 없다'라며 입으로 불평하면서도 자신의 힐링을 위한답시고 주말마다 차를 끌고 꽉 막힌 도로로 나가거나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을 외치며 온갖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는 뉴타운 사람들에 대해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 시선들을 결코 '불평'으로만 느껴서는 안된다. 저자 이지원의 불평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불평들은 사회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뉴타운 주민은 오늘도 크고 작은 희망을 걸고 물건을 사 모은다. 버려진 소파, 장롱, 탁자를 볼 때마다 홀로 쓸쓸하다. 20평형 월셋집에 천연 면피 북유럽 가죽 소파 풀 세트를 들여놓고, 그 위에 드러누워 치킨을 먹으면서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보겠다는 어느 뉴타운 주민의 가열한 야망이 곰팡내 나는 스펀지와 함께 차갑게 식어 버렸음이 애석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저 물체에 몸을 기대고 위로를 구하지 않았던가. (p.73)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의 불편한 시선들에 다 공감이 되면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불평이 있었다. 교수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학'의 부조리에 대한 것들. 대학에 가면 더 넓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신입생 때 만 해도 대학에 다니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일지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만난 것은 대한민국의 사교육이 낳은 폐해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4학년이 된 지금, 나는 대학이 오히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못 만나게 만드는 장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A를 받는 학생의 수는 정원의 30%로 정해져 있는 괴상한 학점 부여 시스템은 어느 순간 모든 학생들을 학점에만 매달리게 만들었다. 쓰지도 않는 교재를 구입하게 만들어 놓고는, 수업은 교수님의 개인 PPT로 진행하면서 과제와 시험은 수업 내용을 달달 암기한 사람만이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이상한 수업 방식을 따라가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고 나는 어느새 4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뭐, 하고 싶은 일들도 찾지 못했다. 학생을 상대로 '돈'을 원했던 또 하나의 기업인 대학은 졸업장을 발부해주는 기관처럼 느껴질 뿐이다.

 

 

 

  사실 나 같은 대학 4학년 나부랭이가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누군가 들어줄까,라는 생각도 종종 해본다. 세상엔 이해하지 못할 일들 투성이인데, 그것들에 대해 내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누군가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더 크게 이야기할 힘을 주기는 할까. 그런 점에서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는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고구마 100개 정도 먹은 답답한 이 세상에 그나마 뻥 뚫릴 만한 시원한 사이다 한 모금 같은 불평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양심이 찔리고…… 그래서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 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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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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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챙겨 먹었다. 잠도 깨지 않은 채, 입 안 가득 밥을 욱여넣었다. 밥알을 하나하나 씹으면서 잠을 깨웠다. 늦잠을 자더라도, 하루의 원동력은 '밥심'이라는 엄마의 철학 때문에 적은 양이라도 먹고 등교를 했다. 내가 아침밥을 잘 먹지 않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자취를 시작하고서부터였다.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 1시간 더 자는 것이 중요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아침을 거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오는 날이면, 편의점에 들러 인스턴트를 사 먹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밥부터 부실했던 자취생의 밥상에서 '건강함'은 늘 빠져 있었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재료들을 골라와 하나하나 손질하시고 따뜻한 흰쌀밥과 함께 밥상에 올려주신 다양한 맛의 반찬들. ≪문성희의 밥과 숨≫은 그만큼 따뜻한 책이다. 자연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을 담은 첫 에세이로, 그녀가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사연,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의 회복을 위한 방황과 탐구, 그동안 그녀만의 법칙으로 체득한 소박한 밥상이 주는 삶의 숨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에게 세상은 나와 딸이 살아가는 바다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 넓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었다. 한 생을 살아내는 것은 사람됨의 의무이며, 이 의무를 잘 이행하려면 먹고 숨 쉬는 일을 잘해야 했다. 나는 이 일들을 열심히 해왔다. 한생을 살면서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다.(p.188)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저자 문성희는 자신이 살아가는 것을 위한 증거로 '먹기'와 '숨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숨을 쉬는 것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숨결을 헤아리는 동안 오로지 나를 위한 밥 한 끼를 마련한다. 그래서 저자 문성희가 택한 방식은 다름 아닌 '생식'이다.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내어 햇볕에 말린 후 고운 가루를 내어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 또, 몸이 좋은 방식으로 가기 위해 고기와 생선을 끊고, 파와 마늘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보여준다. 정성 가득한 그녀의 한 끼는 그녀의 몸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어 그녀를 깨운다.
  그동안 나의 식습관은 어땠을까? 세 끼를 차려 먹으려고 했지만 아침밥을 건너뛰는 식습관이 자리 잡혀 하루에 두 끼 정도를 먹고 있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선택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나는 더욱 자극적인 맛을 찾고 있었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식습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몸을 위한 음식이 아닌 혀를 위한 음식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몸을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 문성희의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 이야기들로 깨달았다.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며,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다. 그 단순한 행위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p.56)

  매일매일 숨을 쉬고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 한 끼를 먹는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이보다 간단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태도. 오늘도 밥 잘 먹고 숨 잘 쉬는 나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라면, 충분히 내가 살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찰나를 지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갖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나의 느낌과 생각은 나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p.154)

 

 

 

 

 

 

  저자 문성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녀가 만든 밥상이 궁금해졌다. 물론 책의 2부에서는 저자 문성희와 그녀의 딸 김 솔이 들려주는 요리 레시피가 나오긴 하지만 내가 그들의 정성을 따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연의 숨결을 담기 위해 노력한 저자 문성희의 건강한 밥상. 그녀의 손길이 닿은 요리 공간에 방문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요리 공간에 들어서는 것부터 건강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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