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짓,말 - 결코 시시하지 않은
유세윤 지음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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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fake). '거짓, 속임수'라는 뜻의 이 단어와 함께 쓰이면 본래의 뜻에서 허구와 현실을 수시로 넘나든다. 문제는 그런 성격을 지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단어의 앞에 붙어 이것이 거짓인지, 현실인지 구분 못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거짓인 부분은 재미로 덮어진다는 것. '페이크 다큐(다큐멘터리)'라는 방송 장르가 그 부류에선 가장 친근하다.
  그리고 어쩌면, 페이크 다큐만큼 친근해질 장르가 나타났다. 페이크 에세이(fake essay).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에, 거짓이 붙는다면? 허구와 현실을 수시로 넘나드는 진솔한 이야기라는 새로운 장르에 손을 뻗은 그는, 다름 아닌 개그맨이라는 말보단 코미디언으로, 코미디언이라는 말보단 희극인으로, 희극인이라는 말보단 아티스트, 아티스트라는 말보단 종합 예술인으로 불리고 싶은 유세윤이었다.

  재미있게도 4월 1일 만우절에 출간된 유세윤의 페이크 에세이 《겉, 짓, 말》은 유세윤이 직접 겪고 느낀 기괴한 순간들에 대해서 담아내고 있다. 유세윤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름 뒤에 숨겨진 비밀들(겉), 일부러도, 모르고도 아니었던 그의 수많은 행동들(짓),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들(말)로 구성된 《겉, 짓, 말》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로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리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구분 짓는 건 독자의 몫이다.

  나는 사는 게 참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게 행복했고, 그것에 설레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는 누워서 눈을 감고 미래 혹은 무언가를 상상하며 잠이 들곤 했는데, 그 '상상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하루 종일 자는 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깨끗이 씻고 난 뒤 개운한 몸으로 포근한 이불 위에 누워 상상하는 즐거움이란! (p.67)

  한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Jtbc 예능 <아는 형님>을 좋아해 꼬박꼬박 챙겨 보던 중 '아형 뮤비(뮤직비디오) 대전' 특집 편을 보게 되었다. 강호동의 뮤비 감독으로 출연한 유세윤은 100만 원이라는 저예산 뮤비를 찍을 수 있다며 확신했고, 다들 좋은 퀄리티가 나올까 의심했다.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지미집 대신 셀카봉 여러 개를 엮어 사용하고, 카메라 무빙을 위해 장난감 기차를 이용하는 등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는 저예산 뮤비 촬영이었다. 그러나 결과물은 달랐다. 굉장히 화려한 영상미는 물론,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믿을 정도로 선명한 화질과 흔들림 적은 영상은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나는 유세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이전에도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디어들을 들고 나왔으니.

 

 

 

  《겉, 짓, 말》에서도 유세윤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이디어와 재치가 녹아져 있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모든 이야기들에 유쾌함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유독 그가 광고 회사를 설립한 이유, 행복에 대한 기준에 대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때는 미래로 가는 <백 투 더 퓨처 2>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과거로 가는 내용의 <백 투 더 퓨처 1>이 제일 좋아졌다. 나는 과거로 가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내 인생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과거의 나를 보며 지금의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는 정말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때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나를 더 알고 싶었다. (p.130)

 바다에서 많이 안절부절 하던데 그럴 필요 없어요. 파도를 잡아서 라이딩 하는 것만이 서핑이 아니에요. 
 바다에 들어가서 파도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그 모든 게 서핑인
거예요.(p.139)

  간혹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거나 '나는 지금 행복한 걸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행복하다는 기준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러나 유세윤은 그 행복의 기준을 딱 정하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들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순간으로 만들고, 그 기분 좋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코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 순간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되기보다는 가볍게 기분 좋은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에 대해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되는 것. 그것이 유세윤 페이크 에세이 ≪겉, 짓, 말≫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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