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평점 :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챙겨 먹었다. 잠도 깨지 않은 채, 입 안 가득 밥을 욱여넣었다. 밥알을 하나하나 씹으면서 잠을 깨웠다. 늦잠을 자더라도, 하루의 원동력은 '밥심'이라는 엄마의 철학 때문에 적은 양이라도 먹고 등교를 했다. 내가 아침밥을 잘 먹지 않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자취를 시작하고서부터였다.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 1시간 더 자는 것이 중요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아침을 거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오는 날이면, 편의점에 들러 인스턴트를 사 먹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밥부터 부실했던 자취생의 밥상에서 '건강함'은 늘 빠져 있었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재료들을 골라와 하나하나 손질하시고 따뜻한 흰쌀밥과 함께 밥상에 올려주신 다양한 맛의 반찬들. ≪문성희의 밥과 숨≫은 그만큼 따뜻한 책이다. 자연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을 담은 첫 에세이로, 그녀가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사연,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의 회복을 위한 방황과 탐구, 그동안 그녀만의 법칙으로 체득한 소박한 밥상이 주는 삶의 숨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에게 세상은 나와 딸이 살아가는 바다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 넓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었다. 한 생을 살아내는 것은 사람됨의 의무이며, 이 의무를 잘 이행하려면 먹고 숨 쉬는 일을 잘해야 했다. 나는 이 일들을 열심히 해왔다. 한생을 살면서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다.(p.188)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저자 문성희는 자신이 살아가는 것을 위한 증거로 '먹기'와 '숨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숨을 쉬는 것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숨결을 헤아리는 동안 오로지 나를 위한 밥 한 끼를 마련한다. 그래서 저자 문성희가 택한 방식은 다름 아닌 '생식'이다.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내어 햇볕에 말린 후 고운 가루를 내어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 또, 몸이 좋은 방식으로 가기 위해 고기와 생선을 끊고, 파와 마늘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보여준다. 정성 가득한 그녀의 한 끼는 그녀의 몸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어 그녀를 깨운다.
그동안 나의 식습관은 어땠을까? 세 끼를 차려 먹으려고 했지만 아침밥을 건너뛰는 식습관이 자리 잡혀 하루에 두 끼 정도를 먹고 있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선택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나는 더욱 자극적인 맛을 찾고 있었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식습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몸을 위한 음식이 아닌 혀를 위한 음식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몸을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 문성희의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 이야기들로 깨달았다.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며,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다. 그 단순한 행위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p.56)
매일매일 숨을 쉬고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 한 끼를 먹는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이보다 간단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태도. 오늘도 밥 잘 먹고 숨 잘 쉬는 나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라면, 충분히 내가 살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찰나를 지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갖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나의 느낌과 생각은 나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p.154)
저자 문성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녀가 만든 밥상이 궁금해졌다. 물론 책의 2부에서는 저자 문성희와 그녀의 딸 김 솔이 들려주는 요리 레시피가 나오긴 하지만 내가 그들의 정성을 따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연의 숨결을 담기 위해 노력한 저자 문성희의 건강한 밥상. 그녀의 손길이 닿은 요리 공간에 방문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요리 공간에 들어서는 것부터 건강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