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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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옛 연인과 재회한 삼순에게 진헌은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묻는다. 삼순은 그 질문에 "결국은 다 자기 식대로 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갖다 붙이고……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죽었다 깨도 모르는 거죠."라고 답한다. 굳이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어도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는 그렇게 행동할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라며 지레짐작한다. 이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심각하게는 상대방과의 관계도 틀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제90회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원작인 ≪셰이프 오브 워터≫은 인간과 괴생명체의 사랑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손으로 움켜쥐어도 금세 빠져나가는 물에겐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긴 타원형의 컵에 담길 때나 네모난 그릇에 담길 때나 물은 자신을 담아주는 그 사물에 의해서 형태가 정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 사물로부터 벗어나면 다시 형태 없이 흩어진다.

 

그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란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는 항상 화려한 구두를 신고 미 항공 우주 연구소 비밀 실험실로 향한다. 청소부인 그녀는 동료 젤다와 함께 실험실을 청소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실험실 F-1 구역에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청소를 하러 들어간 엘라이자는 동료 젤다가 당황하는 사이 괴생명체를 보게 된다. 그날부터 엘라이자는 삶은 달걀을 괴생명체에게 전해주며 말을 하지 못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실험실의 보안 담당인 스트릭랜드는 한국 전쟁부터 아마존 탐험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이유 모를 혼란스러움을 겪게 된다.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를 본 스트릭랜드는 조용하고 고요한 그녀에게 묘한 이끌림의 감정을 느낀다.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달걀을 가져갈 때의 그 황홀한 감촉. 한 번은 대담하게도 그녀가 손에 달걀을 올리지 않았는데도 그는 달걀을 잡는 척하며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순간 둘은 현재도 과거도 아니고 인간도 짐승도 아닌, 여자와 남자였다. (p.158)

 

 

 

 

 

 

≪셰이프 오브 워터≫은 엘라이자와 그녀의 친구들을 통해 사회에서 아슬하게 서 있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흑인인 젤다, 동성애자 자일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엘라이자는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돈을 모아 세탁소를 차리고 싶어 하는 젤다는 오랜 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승진하지 못한다. 자일스는 자주 가는 파이 가게의 브래드(또는 존)에게 동성애임을 밝혔지만, 돌아오는 욕설로 상처를 받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해 수화로만 대화할 수 있는 엘라이자는 화려한 줄리아의 구두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엘라이자를 관리하는 플레밍은 항상 화려한 신발을 신고 오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타인들이 그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이 처음으로 힘을 과시한 방법은 무엇이던가? 바로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었다. 정글 신도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었다. 그들은 그가 명하는 대로 될 것이다. 초록색은 청록색이 되고 아가미 신은 보물이 되며 레이니 스트릭랜드는 무의미한 존재가 된다. (p.239)

  하지만 스트릭랜드가 보여주는 사랑의 형태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호이트 장군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익숙해진 그는 자신의 아래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자신의 가정도 통제하던 그는 F-1 실험실의 보안 담당이 된 후, F-1 실험실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통제하고자 한다. 괴생명체는 물론이고 박사 호프스테들러, 그리고 청소부 엘라이자까지. 특히 한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던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에게서 느껴지는 고요함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모든 것이 조용히 자신의 아래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스트릭랜드는 타인을 자신이 정해 놓은 통제성이 강한 규칙에 의해서 형태를 정해 놓으려 한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전기봉과 16개의 감시카메라는 그가 정해놓은 사랑의 형태를 그대로 표현해준다.
    그래서 엘라이자와 아가미 신 괴생명체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엘라이자는 아가미와 비늘을 가지고 있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괴생명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험을 알리는 경계선을 그대로 넘어가면서 그에게 더욱 다가가고자 한다. 괴생명체는 양서류의 모습을 지닌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엘라이자에게 서서히 손을 내민다.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가르쳐 주는 수화를 통해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그 어떤 형태로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어떤 틀을 끼우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은 오롯이 푸른빛으로 가득 찬다. 물에도, 사랑에도 정해진 형태는 없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 푸르게 빛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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