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 크기의 생물학
모토카와 타츠오 지음, 이상대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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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나는 우리 집 개의 가슴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의 호흡보다 짧은 간격으로 숨이 들락날락하고 빠른 속도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작은 체구의 개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나와 함께 지낸 시간으로는 9년이, 그리고 개의 시간으로는 벌써 60세로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동안 이 작은 생명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저 나와 같은 시간에 살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동물학에서는 시간이 결코 유일하고 절대 불변인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동물에는 동물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가는 각자의 시계가 있고, 우리의 시계로 다른 동물의 시간을 단순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p.171)

  그동안 인간들은 '인간'의 크기에서 생각해왔다. 인간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구의 모든 것들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지구는 인간의 시간에 의해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그 패러다임에 대한 편견을 깨도록 한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고, 저마다 다른 크기와 형태를 지닌 채 살아간다.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진화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들이 그런 크기와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이론이었는데,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색다른 방법으로 왜 동물들이 다른 크기와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왜곡된 잣대를 들고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시간이란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이어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시계는 어떤 경우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무심코 믿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크기의 생물학은 그런 상식을 뒤엎는다. (p.24)

  개들은 대개 15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쥐는 2~3년 정도를, 코끼리는 100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오래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의 물리적 잣대에 의한 측정이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에서는 심장 박동수를 생각한다면,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심장 박동수, 호흡 시간, 혈액이 체내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등 생체적인 시간을 계산해보면 모든 생물이 크기에 상관없이 각자의 일생을 다하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개가 나와 보낸 시간이 짧다고 해서 지독히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개는 자신만의 시간을 따라 그만큼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의 디자인을 발견해야 비로소 그 동물을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은 그 동물이 근거하고 있는 논리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은 결코 동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p.267)

  동물의 시간을 생각하기 전에 앞서 저자 모토카와 다쓰오는 생존을 위한 동물의 크기와 형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물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한 특화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들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연구해왔다. 그들이 가진 생존 방식에서 착안하여 많은 발명품을 만들기도 해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바퀴나 프로펠러를 직접적으로 가진 동물은 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조금은 귀여운 이 상상에 대해 각각 생물들이 살아가는 행동권에 대해서 설명한다. 각 생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행동권에 맞는 디자인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상위 포식자들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은 작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인간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인간의 행동권은 그리 크지 않은 범위였다. 그러나 얻은 지식의 양이 커지자 인간들의 행동권도 자연스럽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쉽게 다닐 수 있고 날개 달린 비행기를 타고 지구 어디든지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생물의 영역까지 행동권을 넓힘으로써 인간은 자신들이 상위에 있다고, 스스로 자만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항상 좋은 것은 없다. 모든 생물의 크기, 모양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만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다. 모든 생물이 저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간은 너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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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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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의 기억 속에 외할머니께서는 생활 속 지혜가 많으신 분이었다. 지금은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먼저 쳐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는 할머니께 가장 먼저 여쭈었다. 할머니는 깨끗하게 청소하는 법이나 작은 텃밭을 잘 가꾸는 등의 작다고 하면 작을 수 있지만 알찬 지혜들을 보여주셨다. 지금으로 이야기하자면, 생활의 꿀팁 정도? 할머니의  하루하루가 쌓여 만든 그 지혜들을 미처 다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두 늙은 여자≫는 알래스카 인디언들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두 늙은 여자다. 부족에서 젊은이들의 보살핌을 받던 그들은 어느 날, 부족장의 결정에 의해 버려지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허망하게 앉아 있던 그들에게 남은 것은 늙은 육신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세월이 축적해 준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늙음의 미학'에 대해 그려낸다.

  알래스카 극지방 유목민들은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해의 추위는 모든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도록 만들었고, 먹을 것을 찾지 못한 알래스카 극지방 유목민들은 생존하기 위한 결심을 한다. 부족의 가장 늙은 연장자 두 여인을 버리기로 한 것. 가장 나이가 많은 칙디야크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사는 그렇게 설원 한가운데에 버려진다. 칙디야크는 자신을 버리기로 한 부족원들에 대해 어떤 의견을 펼치지도 않는 딸과 손주에게 실망한 채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것은 칙디야크 혼자 버려졌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사가 함께 있었으니.
  두 여인은 추위의 고통 속에서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느니, 그 고통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늙은 것이 우리의 한계를 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두 늙은 여인.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불평을 해대지. 우리는 먹을 게 없다고. 젊었을 때가 좋았다고 떠들어댔어. 사실은 더 나을 것도 없었는데 말이야. 우리는 우리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젊은 사람들에게 인식시켰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우리가 더이상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기는 거야. (p.44)

 

 

 

 

 

 

늙어간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작년에 비해 다리가 많이 약해진 것 같고, 한 달 전보다 눈이 더 침침해진 것 같고, 또 어제보다 오늘 기력이 더 쇠해진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 그러다 보니 늙어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젊은 사람에게 기대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할 일은 그저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늙은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들은 어느새 세월의 무게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웠어. 하지만 노년에 들어서자 우리는 삶에서 우리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이상 전처럼 일하기를 그만두었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건강한데도 말이야. (p.44)

 그러나 이 소설에 대한 설명이 '노년의 성장소설'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들이 그 한계를 이겨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도 그들은 노익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설피를 만들고, 짐을 끌고, 사냥을 하면서 그렇게 자신들의 힘만으로 생존해나간다.
  한편, 작가 벨마 월리스는 버려진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점에도 초점을 맞춘다. 하루 일과를 마친 그녀들이 모닥불 앞에 앉아 각자 생각을 하다 입을 떼는 장면들 속에서 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윽고 내 나이가 더 많아져서 여자가 가정을 꾸려야 하는 나이를 지나자, 모두들 나에 대해 수군거렸어. 나는 도대체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 왜냐하면 나는 남자와 함께 살지도 않고 아이도 없었지만, 여전히 내 몫의 일을 해서 식량을 조달하고 있었거든. 남자들보다 더 많은 식량을 구해오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어.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 (p.80) 
  그동안 우리는 여성을 한없이 약한 존재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부족원들 사이에서 약한 존재인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결혼'이라는 굴레 속에 반드시 속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노인과 여성, 사회에서 약자로 그려지는 두 존재를 작가 벨마 월리스는 ≪두 늙은 여자≫를 통해 보여준다. 그들이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님을. 어쩌면 사회가 그들의 대한 한계를 정한 것일 수도 있다고. 
  모든 고난을 겪은 그녀들은 젊은 세대들을 향한 넓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잠시나마 그들의 짧았던 생각들을 덮어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그들은 그렇게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뒤에 있는 사람들까지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늙음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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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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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우리나라의 경제에 비상벨이 울렸다. 금융 자유화와 금융시장 개방 등으로 외국 자본이 빠르게 늘어났던 우리나라는 한순간에 외국 자본이 빠지게 되면서,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IMF 경제 위기'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후유증으로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우수한 기업들이 헐값에 외국 자본가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에 따라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노동자의 해고가 쉬워지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불안정한 고용 현상이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한편, 국민들은 국가의 부채를 갚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IMF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해석하고 어긋난 모자(母子)의 유착관계에 대해 쓴 소설≪케빈에 대하여≫의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맨디블 가족≫을 통해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급성장으로 세계 경제 2위에 오른 중국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은 1위국인 미국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미래 소설들이 SF 장르로, 로봇이나 외계인, 우주여행 등을 배경으로 하여 환상적인 미래를 그려내지만,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조금 다르게 미래적이지만 현실적인 상상을 한다. '세계 경제 순위 2위에 오른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2029년,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의 세계를 그려낸다.

  2029년, 미국의 대표 도시 뉴욕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난다. 미국의 경제 성장이 멈춘 지는 오래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하자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플로렌스와 에스테반, 윌링은 작지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중산층 계급의 사람들이다. 비록 재활용수를 이용해 설거지를 하고, 안개를 걷는 듯한 샤워기로 샤워를 해야 하지만 '사회 복지사'라는 직업이 있는 플로렌스는 가족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플로렌스가 일하는 사회복지시설에는 매일 같이 집을 잃은 가족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돈이 없어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미국의 대통령 알바라도는 국민들에게 중대 발표를 선포한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그들의 동맹국들이 만든 새 화폐인 '방코르'에 대항하여 세계 화폐를 대표했던 달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화폐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방코르의 사용을 금지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하나둘씩 파괴되기 시작하자 많은 부채를 지게 된 미국은 국민들에게 '금 모으기 운동' 동참을 촉구했다. 세계 통화 화폐인 달러의 몰락을 시작으로, 미국은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된다.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잖아. 미래를 위해 저축한 사람들. 미래를 믿은 사람들. 자기 자신을, 그리고 미래에 닥칠 모든 것을 책임질 생각으로 저축을 해둔 사람들이라고. 윌링, 네가 못마땅해하는 비관주의는 그런 배신감에서 나온 거야.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거든. 거대한 몹쓸 장난에 당한 기분이라고. (p.342)

 

 

 

 

 

  세계 통화의 주축이었던 달러의 몰락은 결국 점진적으로 미국의 몰락을 불러온다. 금융 시스템이 마비된 미국은 모든 활동이 멈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모든 경제 활동이 멈춘 미국을 '맨디블 가'를 통해서 보여준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해오며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던 97세 더글라스 맨디블부터 그의 자식들과 손녀 플로렌스, 에이버리, 그리고 플로렌스의 아들 윌링까지 4대에 걸친 미국의 중산층의 생활을 자세하고 낱낱이 드러낸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라는 부제가 적절할 정도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생활은 피폐해져간다. ≪맨디블 가족≫은 마치 1997년 우리나라 IMF 시대의 생활상을 연상시키는 듯해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피폐한 생활일 수도 있다. 2029년의 미래를 가정했지만, 굉장히 현실감 넘치는 전개는 미래에 대한 괜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돈은 감정의 영향을 받아. 모든 값어치는 주관적이야. 따라서 돈은 사람들이 느끼는 딱 그만큼의 가치를 갖지.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은 돈을 믿기 때문이야. 경제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에 가까워. 수백만 시민들이 통화를 믿지 않으면 돈은 그저 색을 입힌 종잇장에 불과해. 마찬가지로 채권자들 역시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 그 돈을 결국 받는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돈을 빌려주지 않겠지. 그러니까 믿음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야. 유일한 문제라고. (p.52)

  ≪맨디블 가족≫은 미국 중산층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사용하는 '돈'에 대한 관념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흔히 돈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오해 중 대표적인 하나는 바로 돈이 눈에 보이는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내 눈앞에 보이는 지폐, 동전이 '돈'의 전부인 것 마냥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폐와 동전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 간의 약속이 만들어 낸 수단에 불과할 뿐, 진짜 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로 잊어버린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강한 믿음을 보여주었던 달러의 몰락은, 단순히 지폐로서의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p.s. 이 부분에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시청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돈의 가치를 윤리의 가치와 맞물려 ≪맨디블 가족≫을 써 내려간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량이 급증하자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게 된다. 그러자 기존에 돈이 없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지 못하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기본이고, 타인의 생필품을 빼앗거나 더 나아가 집을 뺏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돈의 가치가 떨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도덕, 윤리의 가치도 같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하나, 호의를 베푸는 이웃에게조차 총구를 겨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린 모두 정체되어 있잖아. 궤도도 없고. 우리 중 누구도 끝내 자식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을 거야. 우린 같은 순간에 냉동되어 있는 셈이야. 죽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p.470)

  혼란스러운 2029년이 지나 소설의 배경은 2047년으로 전환된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새로운 경제 시장이라는 물이 흐르자 새 물레 방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물레 방아가 멈추는 그날, 사람들의 악몽은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물이 말라 물레 방아가 멈춰도, 새로운 물길이 생긴 곳의 물레 방아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우리들은, 그저 물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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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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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오스트리아가 '음악의 나라'라고만 생각했을까? 10년 전,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저 여행 코스의 일부로 지나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떠나서 오스트리아에 방문한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던 건 오스트리아의 유명 음악가 모차르트의 흔적도 아닌, 그의 얼굴이 그려진 빨간색 포장지로 감싸진 달콤한 초콜릿뿐이었다. 갓 중학생이 된 내게 초콜릿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었을까. 그나마 오스트리아를 '음악의 나라'로 기억하게 된 이유는 방문 직전에 본 '모차르트'에 관한 영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림트≫를 읽은 이 이후부터 내게 오스트리아는 '황금빛 그림의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라는 기획의도를 가진 클래식 클라우드의 세 번째 거장은, 우리에게 <키스>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클림트다. 저자 전원경은 오스트리아의 도시 빈을 클림트의 삶의 무대로 그려낸다. 그래서 클림트를 통해서 빈에 대해 알아가는 것인지, 빈을 통해 클림트를 알아가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도시 빈과 클림트를 마치 하나처럼 엮어 설명하는 것이 눈에 띄는 책이다.

  "어떤 화가에 대한 책을 쓰고 싶으세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기획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클림트!" (생략) 정말로 많고 많은 화가들 중에서 나는 왜 클림트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는 기획 의도를 들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한 세기 전의 빈과 클림트의 그림들이었다. '빈'과 '클림트'라는 두 개의 퍼즐이 맞춰지자 오래전에 본 흑백영화처럼 무수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줄지어 그려졌다. (p.11)

 

 

클림트는 평생 사랑과 예술을 갈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예술도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끝내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쭉 빈에서만 살았던 화가였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하지만 묘하게 시대착오적이고 허세에 빠져 있던 도시 빈의 모순을 클림트는 그의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황금을 녹여 얇게 바르는 기법을 이용한 황금빛의 그림들은 도시 빈이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표작들인 <키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등은 매우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들에 대한 영감을 고대와 중세 초기의 예술에서 많이 보이던 양식에서 얻은 것을 감안한다면 클림트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화가인 동시에 가장 고답적인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장식으로 사람의 몸을 휘감고, 사람의 몸을 지극히 평면적인 방식으로, 반면 장식은 화려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 클림트의 황금시대는 이렇게 고답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p.146)

  ≪클림트≫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그에 대해 아주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의 삶과 철학 등을 알고 나니 그의 황금빛은 사치나 화려함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깊은 따뜻함이 배어 나오는 색이었던 것이다, 클림트의 황금색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림트의 대표작들은 모두 성실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던 클림트의 손에서 만들어졌음을, 그동안 나는 황금색에 눈이 멀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키스>는 단순히 그 화려함으로, 또 클림트의 황금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젊음을 지나 완연한 생의 후반기로 들어선 클림트의 심정을 모두 토로한 작품이다. 아마 클림트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이 그림이 바로 자신의 '절정'이며 자신은 이를 능가하는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화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이제 자신의 앞에는 긴 쇠락을 향해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p.164)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오스트리아에 한번 더 방문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클림트의 자취들을 따라 도시 빈을 알아가고, 더 나아가 그가 사랑했던 잘츠부르크의 아터 호수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그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록 책에서도 언급된 대로, 그의 대표작 중 몇몇은 보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도시 빈 곳곳에 놓인 그의 흔적들을 찾아다녀 보고 싶어졌다. 아마 다시 오스트리아를 다녀오게 된다면, 오스트리아는 내게 모차르트가 그려진 포장지로 싸인 달콤한 초콜릿의 나라가 아니라 따스한 황금빛의 나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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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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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단 한번. 생일은 그 의미만으로도 특별함을 갖는다. 케이크를 둘러싸고 앉아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소중한 사람들과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 언제부터였을까? 내게 생일이 여느 평범한 일상처럼 흘러가게 된 것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인데. 지나가버린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무 살 생일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이 새로 나왔다. 《노르웨이의 숲》 이후에 수많은 그의 작품 중에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던 나는 주저 없이 《버스데이 걸》을 선택했다.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고 《버스데이 걸》이라는 독특하고도 신비함을 자아내는 제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카트 멘시크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구성된 《버스데이 걸》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삽화들이 마치 팝아트를 연상시키면서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든다.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p.34)

  스무 살 생일이 된 그녀는 여느 때와 평범하게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일을 바꿔주기로 한 친구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녀는 생일 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도 싸운 그녀는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을 보낸다. 비가 오고 손님이 오지 않는 지루한 레스토랑. 특별할 거라 기대했던 그녀의 스무 살 생일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는 항상 저녁 8시마다 같은 빌딩 604호에 살고 있는 사장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매니저는 항상 일정한 시간, 똑같은 메뉴를 들고 사장이 머무는 방으로 음식을 배달했는데, 그날 밤 갑작스러운 복통에 그녀에게 그 일을 맡긴다. 사장의 방으로 간 그녀는 잠깐 대화를 하자는 사장의 말에 그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고, 자신이 생일이란 사실을 이야기한다. 사장은 그녀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빈다.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생일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날들과는 달리 눈이 번쩍 뜨인다든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든지, 또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고 믿게 한다든지. '일 년에 단 한번'뿐이라는 그 사실에서 오는 특별함은 왠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우울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그날엔 내가 바라는 것들이 모두 이뤄질 것만 같다. '나의 날'이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내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날.
  그래서 그날 밤, 그녀는 스무 번째 생일의 소원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p.57)

  《버스데이 걸》을 읽으면서 나의 스무 번째 생일에 대해 떠올렸다. 그날 나는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무언가 특별한 날이었는데도 여느 때와 똑같았던 하루를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이 축하해 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소원을 빌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그 소원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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