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 크기의 생물학
모토카와 타츠오 지음, 이상대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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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나는 우리 집 개의 가슴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의 호흡보다 짧은 간격으로 숨이 들락날락하고 빠른 속도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작은 체구의 개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나와 함께 지낸 시간으로는 9년이, 그리고 개의 시간으로는 벌써 60세로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동안 이 작은 생명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저 나와 같은 시간에 살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동물학에서는 시간이 결코 유일하고 절대 불변인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동물에는 동물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가는 각자의 시계가 있고, 우리의 시계로 다른 동물의 시간을 단순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p.171)

  그동안 인간들은 '인간'의 크기에서 생각해왔다. 인간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구의 모든 것들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지구는 인간의 시간에 의해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그 패러다임에 대한 편견을 깨도록 한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고, 저마다 다른 크기와 형태를 지닌 채 살아간다.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진화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들이 그런 크기와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이론이었는데,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색다른 방법으로 왜 동물들이 다른 크기와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왜곡된 잣대를 들고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시간이란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이어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시계는 어떤 경우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무심코 믿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크기의 생물학은 그런 상식을 뒤엎는다. (p.24)

  개들은 대개 15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쥐는 2~3년 정도를, 코끼리는 100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오래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의 물리적 잣대에 의한 측정이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에서는 심장 박동수를 생각한다면,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심장 박동수, 호흡 시간, 혈액이 체내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등 생체적인 시간을 계산해보면 모든 생물이 크기에 상관없이 각자의 일생을 다하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개가 나와 보낸 시간이 짧다고 해서 지독히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개는 자신만의 시간을 따라 그만큼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의 디자인을 발견해야 비로소 그 동물을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은 그 동물이 근거하고 있는 논리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은 결코 동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p.267)

  동물의 시간을 생각하기 전에 앞서 저자 모토카와 다쓰오는 생존을 위한 동물의 크기와 형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물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한 특화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들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연구해왔다. 그들이 가진 생존 방식에서 착안하여 많은 발명품을 만들기도 해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바퀴나 프로펠러를 직접적으로 가진 동물은 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조금은 귀여운 이 상상에 대해 각각 생물들이 살아가는 행동권에 대해서 설명한다. 각 생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행동권에 맞는 디자인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상위 포식자들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은 작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인간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인간의 행동권은 그리 크지 않은 범위였다. 그러나 얻은 지식의 양이 커지자 인간들의 행동권도 자연스럽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쉽게 다닐 수 있고 날개 달린 비행기를 타고 지구 어디든지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생물의 영역까지 행동권을 넓힘으로써 인간은 자신들이 상위에 있다고, 스스로 자만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항상 좋은 것은 없다. 모든 생물의 크기, 모양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만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다. 모든 생물이 저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간은 너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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