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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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우리나라의 경제에 비상벨이 울렸다. 금융 자유화와 금융시장 개방 등으로 외국 자본이 빠르게 늘어났던 우리나라는 한순간에 외국 자본이 빠지게 되면서,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IMF 경제 위기'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후유증으로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우수한 기업들이 헐값에 외국 자본가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에 따라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노동자의 해고가 쉬워지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불안정한 고용 현상이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한편, 국민들은 국가의 부채를 갚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IMF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해석하고 어긋난 모자(母子)의 유착관계에 대해 쓴 소설≪케빈에 대하여≫의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맨디블 가족≫을 통해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급성장으로 세계 경제 2위에 오른 중국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은 1위국인 미국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미래 소설들이 SF 장르로, 로봇이나 외계인, 우주여행 등을 배경으로 하여 환상적인 미래를 그려내지만,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조금 다르게 미래적이지만 현실적인 상상을 한다. '세계 경제 순위 2위에 오른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2029년,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의 세계를 그려낸다.

  2029년, 미국의 대표 도시 뉴욕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난다. 미국의 경제 성장이 멈춘 지는 오래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하자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플로렌스와 에스테반, 윌링은 작지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중산층 계급의 사람들이다. 비록 재활용수를 이용해 설거지를 하고, 안개를 걷는 듯한 샤워기로 샤워를 해야 하지만 '사회 복지사'라는 직업이 있는 플로렌스는 가족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플로렌스가 일하는 사회복지시설에는 매일 같이 집을 잃은 가족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돈이 없어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미국의 대통령 알바라도는 국민들에게 중대 발표를 선포한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그들의 동맹국들이 만든 새 화폐인 '방코르'에 대항하여 세계 화폐를 대표했던 달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화폐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방코르의 사용을 금지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하나둘씩 파괴되기 시작하자 많은 부채를 지게 된 미국은 국민들에게 '금 모으기 운동' 동참을 촉구했다. 세계 통화 화폐인 달러의 몰락을 시작으로, 미국은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된다.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잖아. 미래를 위해 저축한 사람들. 미래를 믿은 사람들. 자기 자신을, 그리고 미래에 닥칠 모든 것을 책임질 생각으로 저축을 해둔 사람들이라고. 윌링, 네가 못마땅해하는 비관주의는 그런 배신감에서 나온 거야.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거든. 거대한 몹쓸 장난에 당한 기분이라고. (p.342)

 

 

 

 

 

  세계 통화의 주축이었던 달러의 몰락은 결국 점진적으로 미국의 몰락을 불러온다. 금융 시스템이 마비된 미국은 모든 활동이 멈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모든 경제 활동이 멈춘 미국을 '맨디블 가'를 통해서 보여준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해오며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던 97세 더글라스 맨디블부터 그의 자식들과 손녀 플로렌스, 에이버리, 그리고 플로렌스의 아들 윌링까지 4대에 걸친 미국의 중산층의 생활을 자세하고 낱낱이 드러낸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라는 부제가 적절할 정도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생활은 피폐해져간다. ≪맨디블 가족≫은 마치 1997년 우리나라 IMF 시대의 생활상을 연상시키는 듯해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피폐한 생활일 수도 있다. 2029년의 미래를 가정했지만, 굉장히 현실감 넘치는 전개는 미래에 대한 괜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돈은 감정의 영향을 받아. 모든 값어치는 주관적이야. 따라서 돈은 사람들이 느끼는 딱 그만큼의 가치를 갖지.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은 돈을 믿기 때문이야. 경제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에 가까워. 수백만 시민들이 통화를 믿지 않으면 돈은 그저 색을 입힌 종잇장에 불과해. 마찬가지로 채권자들 역시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 그 돈을 결국 받는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돈을 빌려주지 않겠지. 그러니까 믿음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야. 유일한 문제라고. (p.52)

  ≪맨디블 가족≫은 미국 중산층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사용하는 '돈'에 대한 관념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흔히 돈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오해 중 대표적인 하나는 바로 돈이 눈에 보이는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내 눈앞에 보이는 지폐, 동전이 '돈'의 전부인 것 마냥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폐와 동전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 간의 약속이 만들어 낸 수단에 불과할 뿐, 진짜 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로 잊어버린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강한 믿음을 보여주었던 달러의 몰락은, 단순히 지폐로서의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p.s. 이 부분에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시청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돈의 가치를 윤리의 가치와 맞물려 ≪맨디블 가족≫을 써 내려간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량이 급증하자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게 된다. 그러자 기존에 돈이 없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지 못하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기본이고, 타인의 생필품을 빼앗거나 더 나아가 집을 뺏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돈의 가치가 떨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도덕, 윤리의 가치도 같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하나, 호의를 베푸는 이웃에게조차 총구를 겨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린 모두 정체되어 있잖아. 궤도도 없고. 우리 중 누구도 끝내 자식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을 거야. 우린 같은 순간에 냉동되어 있는 셈이야. 죽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p.470)

  혼란스러운 2029년이 지나 소설의 배경은 2047년으로 전환된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새로운 경제 시장이라는 물이 흐르자 새 물레 방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물레 방아가 멈추는 그날, 사람들의 악몽은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물이 말라 물레 방아가 멈춰도, 새로운 물길이 생긴 곳의 물레 방아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우리들은, 그저 물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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