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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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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단 한번. 생일은 그 의미만으로도 특별함을 갖는다. 케이크를 둘러싸고 앉아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소중한 사람들과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 언제부터였을까? 내게 생일이 여느 평범한 일상처럼 흘러가게 된 것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인데. 지나가버린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무 살 생일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이 새로 나왔다. 《노르웨이의 숲》 이후에 수많은 그의 작품 중에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던 나는 주저 없이 《버스데이 걸》을 선택했다.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끌었고 《버스데이 걸》이라는 독특하고도 신비함을 자아내는 제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카트 멘시크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구성된 《버스데이 걸》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삽화들이 마치 팝아트를 연상시키면서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든다.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p.34)
스무 살 생일이 된 그녀는 여느 때와 평범하게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일을 바꿔주기로 한 친구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녀는 생일 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도 싸운 그녀는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을 보낸다. 비가 오고 손님이 오지 않는 지루한 레스토랑. 특별할 거라 기대했던 그녀의 스무 살 생일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는 항상 저녁 8시마다 같은 빌딩 604호에 살고 있는 사장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매니저는 항상 일정한 시간, 똑같은 메뉴를 들고 사장이 머무는 방으로 음식을 배달했는데, 그날 밤 갑작스러운 복통에 그녀에게 그 일을 맡긴다. 사장의 방으로 간 그녀는 잠깐 대화를 하자는 사장의 말에 그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고, 자신이 생일이란 사실을 이야기한다. 사장은 그녀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빈다.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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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날들과는 달리 눈이 번쩍 뜨인다든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든지, 또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고 믿게 한다든지. '일 년에 단 한번'뿐이라는 그 사실에서 오는 특별함은 왠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우울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그날엔 내가 바라는 것들이 모두 이뤄질 것만 같다. '나의 날'이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내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날.
그래서 그날 밤, 그녀는 스무 번째 생일의 소원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p.57)
《버스데이 걸》을 읽으면서 나의 스무 번째 생일에 대해 떠올렸다. 그날 나는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무언가 특별한 날이었는데도 여느 때와 똑같았던 하루를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이 축하해 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소원을 빌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그 소원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