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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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오스트리아가 '음악의 나라'라고만 생각했을까? 10년 전,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저 여행 코스의 일부로 지나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떠나서 오스트리아에 방문한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던 건 오스트리아의 유명 음악가 모차르트의 흔적도 아닌, 그의 얼굴이 그려진 빨간색 포장지로 감싸진 달콤한 초콜릿뿐이었다. 갓 중학생이 된 내게 초콜릿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었을까. 그나마 오스트리아를 '음악의 나라'로 기억하게 된 이유는 방문 직전에 본 '모차르트'에 관한 영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림트≫를 읽은 이 이후부터 내게 오스트리아는 '황금빛 그림의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라는 기획의도를 가진 클래식 클라우드의 세 번째 거장은, 우리에게 <키스>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클림트다. 저자 전원경은 오스트리아의 도시 빈을 클림트의 삶의 무대로 그려낸다. 그래서 클림트를 통해서 빈에 대해 알아가는 것인지, 빈을 통해 클림트를 알아가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도시 빈과 클림트를 마치 하나처럼 엮어 설명하는 것이 눈에 띄는 책이다.

  "어떤 화가에 대한 책을 쓰고 싶으세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기획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클림트!" (생략) 정말로 많고 많은 화가들 중에서 나는 왜 클림트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는 기획 의도를 들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한 세기 전의 빈과 클림트의 그림들이었다. '빈'과 '클림트'라는 두 개의 퍼즐이 맞춰지자 오래전에 본 흑백영화처럼 무수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줄지어 그려졌다. (p.11)

 

 

클림트는 평생 사랑과 예술을 갈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예술도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끝내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쭉 빈에서만 살았던 화가였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하지만 묘하게 시대착오적이고 허세에 빠져 있던 도시 빈의 모순을 클림트는 그의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황금을 녹여 얇게 바르는 기법을 이용한 황금빛의 그림들은 도시 빈이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표작들인 <키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등은 매우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들에 대한 영감을 고대와 중세 초기의 예술에서 많이 보이던 양식에서 얻은 것을 감안한다면 클림트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화가인 동시에 가장 고답적인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장식으로 사람의 몸을 휘감고, 사람의 몸을 지극히 평면적인 방식으로, 반면 장식은 화려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 클림트의 황금시대는 이렇게 고답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p.146)

  ≪클림트≫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그에 대해 아주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의 삶과 철학 등을 알고 나니 그의 황금빛은 사치나 화려함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깊은 따뜻함이 배어 나오는 색이었던 것이다, 클림트의 황금색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림트의 대표작들은 모두 성실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던 클림트의 손에서 만들어졌음을, 그동안 나는 황금색에 눈이 멀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키스>는 단순히 그 화려함으로, 또 클림트의 황금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젊음을 지나 완연한 생의 후반기로 들어선 클림트의 심정을 모두 토로한 작품이다. 아마 클림트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이 그림이 바로 자신의 '절정'이며 자신은 이를 능가하는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화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이제 자신의 앞에는 긴 쇠락을 향해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p.164)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오스트리아에 한번 더 방문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클림트의 자취들을 따라 도시 빈을 알아가고, 더 나아가 그가 사랑했던 잘츠부르크의 아터 호수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그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록 책에서도 언급된 대로, 그의 대표작 중 몇몇은 보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도시 빈 곳곳에 놓인 그의 흔적들을 찾아다녀 보고 싶어졌다. 아마 다시 오스트리아를 다녀오게 된다면, 오스트리아는 내게 모차르트가 그려진 포장지로 싸인 달콤한 초콜릿의 나라가 아니라 따스한 황금빛의 나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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