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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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것 같으면서도, 타인이 느끼는 고통의 반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지도 않고 입을 연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이 타인에게 어떤 비수로 꽂아질지도 모른 채.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고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나는 그동안 타인의 고통에 쉽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척을 해왔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라는 말로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묻어버렸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의 고통을 짓밟았고 그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지 알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성폭행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어째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속했을까? 이 소설은 쉽게 내뱉는 질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p.34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열세살 소녀 팡쓰치의 낙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장한 어른들에 의해서 짓밟힌다.

  류이팅과 팡쓰치는 집을 떠나 타이베이의 같은 학교로 진학할만큼 절친한 사이다. 입학한 첫 해 쓰치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팅은 그런 쓰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날, 경찰서에서 쓰치가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팅은 경찰서로 달려간다. 쓰치는 곧 가오슝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이팅은 쓰치에 대한 걱정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이팅은 쓰치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자신들의 선생님이었던 리궈화 선생이 5년동안 쓰치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고, 이팅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아듣겠니? 날 원망하지 마. 넌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아름다움이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거야. 넌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모든 사람의 것일 수 없으니 내가 가질 수밖에. 넌 내거야. 넌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널 좋아해. (p.90)

  아직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팡쓰치는 리궈화 선생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뤄졌던 그 폭력이 사랑 그 자체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자신도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긴다. 어린 팡쓰치가 이런 태도를 지닐 수 밖에 없던 이유에는, 팡쓰치를 알고 있는 어른들 중 그 누구도 팡쓰치가 기댈 곳 하나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팡쓰치뿐만 아니다. 리궈화 선생에 의해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을 겪은 쿠키, 궈샤오치도 팡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쿠키는 남자친구에게, 궈샤오치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돌아오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처벌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질책이었다.
  작가 린이한은 이 소녀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어낸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 먼저인 사회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이 세 소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 데는 그들이 스스로를 파먹도록 만들고 있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건 리궈화 선생만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지위를 보고 오히려 피해자를 질책했던 궈샤오치의 부모님과 그저 방관했던 아파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p.267)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무자비한 폭력은 팡쓰치와 닮은 쉬이원에게서도 일어난다. 첸이웨이와 결혼한 쉬이원은 팡쓰치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그의 폭력 속에서 점차 약해진다. 첸이웨이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그녀에게 가해지는 손찌검으로, 그녀는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워한다.

  첸이웨이가 이원의 마음속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작은 짐승을 기르고 있고, 그 짐승이 이원의 마음을 휘젓고 다니며 모든 감각의 울타리를 향해 수시로 달려들고 있었다는 걸 이팅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건 고통의 몽타주였다.(p.33)

  팡쓰치의 말대로 세상에는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사랑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사랑한다는 우리들의 착각 속에서 오히려 타인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계속 곱씹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진 폭력들을 타인의 문제들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세상 그 어떤 팡쓰치든 소비되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그녀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소설로 보여지는 건 원치 않아요. 매일 여덟 시간씩 글을 썼어요. 쓰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언제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죠. 다 쓰고 난 뒤에 보니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쓴, 이 가장 무서운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이에요. (p.338 '작가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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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5가지 방법 - 정답 없는 문제조차 정답을 제시해야 하는 당신을 위한
조셉 L. 바다라코 지음, 최지영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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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 과정에 놓인다. 오늘의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것부터 새로운 직장으로의 이직 여부 등에 대한, 어쩌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까지. 그리고 종종 사회에 놓인 위치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확장되기 마련이다.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 오기를 희망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는 선택의 길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5가지 방법》에서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되는 우리에게 좋은 결과 도출을 위한 5가지 단계의 프로세스를 제시한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저자 조셉 바다라코는 흑과 백의 사이, 그러니까 우리가 명쾌하게 답을 얻을 수 없는 그 혼란한 상태를 '회색'이라고 표현한다. 회색 지대에서 우리는 5가지의 질문을 통해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영을 관리하는 리더 입장에서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질문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 삶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회색 지대는 조직 관리자에게 업무상 최대의 난제이다. 사실 회색 지대는 업무를 넘어서 인생에서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다루는 일은 업무 능력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을 시험하는 일이다. (p.11)

  살면서 회색 지대를 피하기란 어렵다. 회색 지대에서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위험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회색 지대 문제를 잘 해결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과 타인에 크게 기여하고 자신의 커리어와 자아의식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p.15) 그래서 저자 조셉 바다리코는 이 회색 지대에서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 5가지로 '최종 결과는 무엇인가?', '나의 핵심 의무는 무엇 인가?', '현실 세계에서 실효성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내가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를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5가지의 질문을 인본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며, 그 해결책을 철학자 밀과 칸트, 정치적 사상가 마키아벨리 등의 사상에서 찾아낸다. 이 5가지 질문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정립하여 저자 조셉 바다리코는 우리가 그 프로세스 과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못하게 하면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그럼에도 유독 눈길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나의 핵심 의무는 무엇인가?', '현실 세계에서 실효성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은 리더의 위치에는 놓여 있지 않은 현재의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는 나의 기준에 맞춰 제멋대로 의사결정을 한다. 쉽게 예를 들자면, 친구와 약속을 정하는 과정을 들 수 있겠다. 주로 친구에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기는 하지만, 간혹 나의 스케쥴에만 꽂힌 채 친구에게 일정을 강요하는 행동을 보이곤 한다. 곤란해하는 친구의 감정 상태는 헤아리지도 못한 채, 나의 감정만을 내세우는데 그 결정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은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두번째 질문은 그 과정을 반복하는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질문이 가지는 의미는 이것이니까.

  자신의 이해관계, 경험, 판단, 세상을 보는 관정에 매몰되지 말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반드시 자기 본위의 감옥에서 탈출하라. 자신이 직접 당하는 당사자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지, 그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할지를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열심히 상상해보라. (p.99)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선하기만을 고집하는 자는 선하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때로 나는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혹은 하고싶은대로 하려는 경향도 있고.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나를 가둬두는 울타리가 되었고, 더 나아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잠식시키는 이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그대로 에워 쌌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행운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

   생각에 빠져 주저 앉아 있을 시간은 끝났다.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5가지 방법》을 읽었으니, 이제 나의 회색 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일만 남았다. 흑과 백으로 명쾌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그 시기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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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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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이별 그날 밤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그때의 모든 감정은 씻어 내려갔지만, 첫 이별을 마주했던 그날 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여느 때와 똑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그렇게 이별을 고할 줄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을 듣는 순간 관계의 을로 전락한 나에게 상대방은 기다리라고 했다. 정리가 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상대방은 함께 시작한 연애를 혼자 정리하고 끝내버렸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매일 밤 울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다시 되짚어보기도 했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그러다 제풀에 지쳤고 상대방은 이미 끝낸 정리를 나는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했다.

  ​나의 첫 이별은 그렇게 왔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하나도 그렇지 못했다. 너무도 괘씸한 마음에 다시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울분에 매일 밤을 울었다. 각각의 이별의 이유는 다르다. 그러나 이별은 모두 슬프다.
  ​ SNS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상담자 디제이 아오이는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를 통해 이별을 앞둔, 또는 이별하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별'에 대해 조언해준다. ​이별 후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밀려오는 이별 후유증의 응어리진 감정에 대한 해소 등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가 아닌 '난 이렇게 쿨해질 수 있어'라고.

 

 

 

  헤어진다는 건 잔혹한 일이에요. 사귈 때는 서로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별에는 필요 없거든요. 어느 한쪽이 "더 이상 안 되겠어"라고 말하면 그냥 거기서 끝인 겁니다.(p.119)

​  사랑하는 이유가 다르듯이 이별하는 이유도 제각각 다르다. 상대방의 식어버린 마음에 의해서, 두 사람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또는 상대방의 불륜으로 인해서. 그 외에도 다양한 이별의 이유에 대해 디제이 아오이는 몇 가지 예시를 제시한다. 모두가 그런 이유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별한 사람들 사이의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교류는 통하기 마련이다.

​  한 번의 연애가 끝나면 당당히 홀로 일어서야만 합니다. 연애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거든요.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법이에요.(p.179)

​  "헤어지자."
  이별 앞에 이 한마디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구분 짓는다.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그 한마디를 듣는 사람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항상 헤어짐을 통보받는 쪽도 여성, 그 슬픔에 잠겨 있는 것도 여성이라는 생각은 너무 고정적인 패러다임이 아닐까. 이별의 이유가 다양하듯이, 그 이별을 통보받는 사람의 성별도 고착화되어 있지는 않을 텐데. 여성이라고 해서 더 슬픈 것도, 남성이라고 해서 덜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디제이 아오이가 예시로 드는 사례들(고민 상담 내용)의 대부분의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이 살짝 아쉽기는 했다.

 

 

 

 

   ​디제이 아오이는 이별 후 최종 목표로 '홀로서기'를 제안한다. 사랑했던 두 사람이 각자의 길로 들어서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곧게 일어설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발견한 나의 매력적인 모습이 점점 좋아진다면 애인이 없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혼자일 때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때입니다. (p.197)

​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첫 이별 그날 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곱씹었던 그 행동은 상대방을 통해 본 나의 모습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반성의 시간으로 나는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메꾸고, 또다시 찾아올 새로운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만든다. 이별 후 빛나는 나의 모습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날 다음의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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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묘약 - 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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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여유를 잃은 채 살아간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걷다 보면,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느림의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가장 알맞지 않을까 싶다.
  ​《여름의 묘약》은 저자 김화영이 여행한 1969~2012년의 프로방스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보랏빛의 라벤더가 고원을 뒤덮고 있고, 여름 뙤약볕 아래 꿀같은 낮잠을 즐기고,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와인 한 잔을 즐기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프로방스의 여름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저자 김화영은 프로방스 여행 과정을 그대로 나열하는데,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는 그와 함께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그를 따라서 분수대가 인상적인 광장에서부터 한적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알베르 카뮈의 집까지 프로방스가 주는 그 여유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여름의 건조하고 부드러운 공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온 천지에 가득한 라벤더, 타임, 로즈메리 향기,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 창공을 향해 화살표처럼 솟아오르는 시프레나무의 고장 프로방스. (p.172)

​  《여름의 묘약》에서는 프로방스의 정취도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한 많은 문학가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도 있다. 저자 김화영은 40년 동안 많은 불문학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해왔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불문학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의 모습은 《여름의 묘약》에서 그대로 보이는데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부터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작가들에 대해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알베르 카뮈이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알베르 카뮈론을 전공한 저자 김화영은 프로방스를 여행하던 도중에 알베르 카뮈의 집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카뮈의 딸인 카트린 카뮈와 대화하고 알베르 카뮈의 손길이 닿았던 그곳을 고스란히 느낀다.
  문학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반 고흐가 살아있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길 바랐다. 그가 죽고 난 뒤, '반 고흐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문화센터'를 차리고 반 고흐가 없는 부르주아적 '문화'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배척했던 고흐 덕에 관광수입도 올리고…… 환한 대낮의 삶이 가끔 악몽 같아 보일 때가 있다. (p.120)

  느긋하게 여행을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름의 묘약≫을 통해 본 보랏빛의 프로방스는 아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문학 기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면 모든 것을 잊고 햇빛 드는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하며 독서하는 것도 모두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프로방스'를 조심스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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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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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종종 영화를 본다. 유독 일본 영화를 많이 보는데, 일본 영화가 가지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다. 장면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청량감이나 인물 관계에서 오는 풋풋함들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그 감성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많은 일본 영화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영화 중 하나는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배경 연출이나 분위기 등의 조화가 좋아 영화를 보고 난 뒤 절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였는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손예진, 소지섭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로 다시 보지는 못했고 영화의 원작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읽게 되었다.
​  동명의 원작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영화와 같은 감성을 담고 있었다. 다쿠미는 순수했고, '그런 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던 유지는 엉뚱하면서 귀여운 매력을 보여준다. 두 사람을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기억을 잃어버린 미오가 두 사람에게 다시 빠진 것처럼.



비와 함께 찾아와서 당신과 유지가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
나는 여름이 오기 전에 다시 돌아가기로 할래.
왜냐면, 나는 더운 건 영 질색이거든.


​  다쿠미와 유지는 미오를 떠나보내고 단둘이 살아간다. 두 사람은 미오는 죽은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 별로 떠났다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비가 오는 일요일, 여느 때처럼 숲속의 술 공장을 찾은 다쿠미와 유지는 기억을 잃고 앉아있는 미오를 발견한다. 다쿠미와 유지는 미오를 데리고 집에 돌아간다. 다쿠미는 미오에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도록 도와주고, 미오는 짧은 시간 동안 편안해진 다쿠미와 유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에게 허락된 비의 계절은 서서히 끝나가게 된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을 두고 많이 어긋나버린 음정을 그녀가 하나씩 하나씩 조율해나가고 있었다. 기억도, 심지어 목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녀 쪽이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 그녀는 엄청나게 특별한 존재이리라. (p.142)

​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적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큰 공백은, 그 기적으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채운다. 미오가 죽고 1년 동안 다쿠미와 유지는 엉성한 생활을 한다. 다쿠미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 매일 저녁 카레라이스를 먹고, 밀린 빨래로 인해 스파게티 소스가 묻은 옷을 며칠씩 입고 다닌다. 무엇보다도 미오에 대한 그리움은 다쿠미와 유지, 두 사람의 큰 공백을 남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는 '아카이브 별'을 만들고 그곳에 살고 있을 미오를 그리워한다. 그러다 두 사람에게 일어난 기적은 공백을 크게 메워준다. 미오와의 재회로 인해 두 사람은 잃어버린 활기를 다시 찾는다.
​  그 활기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쿠미와 미오의 사랑이다. 두 사람은 굉장히 느린 속도의 사랑을 보여준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모습과는 달리, 서로에게 잔잔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들의 사랑은 순수하게 느껴진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언제 다시 만나도 그 마음 그대로를 간직한다. 그래서 더욱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보인다. 운명적인 두 사람의 사랑을 보다 보면, 연애 초기의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이 몽글몽글하게 피어난다.

  3년 동안 해마다 반이 바뀌었어도 우리는 항상 같은 반 같은 조, 나는 너의 오른편 옆자리거나 왼편 옆자리, 혹은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반경 1미터의 조그만 원 속에 함께 들어가 보내고 있었다. (p.104)

  다쿠미와 미오, 유지가 다시 만난 비의 계절이 곧 다가온다.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아마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다시 생각날 것 같다. 느리지만 순수한 다쿠미, '그런 거야?'를 입에 달고 사는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유지, 그리고 그 둘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미오. 세 사람의 비의 계절은 시원하면서도 따스하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또다시.
그때도 나를 당신 옆자리에 있게 해줘.
정말 마음이 편안하거든, 당신 옆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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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사람 2019-01-0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영화를 너무 감명깊게 봐서 스마트폰에 담아 놓고 시간 될 때 마다 봅니다.
다케우치 유우코도 너무 이쁘게 나옵니다.
이 책도 영화가 좋아서 보게 되었는 데 이런 도서후기를 보니 반갑네요.
도서후기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