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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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사색에 빠진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를 곱씹어 보기도 하고, 주변을 느리게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에 다시 걷는 데에 집중한다. '지금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항상 그러지는 않지만 때때로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번 사로잡히면 그날은 왠지 모르게 타인의 눈이나 표정에 집중하게 된다. 심지어 스쳐 지나가는, 어쩌면 한 번 보고 말게 될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을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그것에 얽매여 부자연스러운 '나'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웃긴 것은, 그 순간에도 나는 '이 모습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라며 또다시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의 저자 홍승희는 그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남들은 이해 못하겠지만'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그녀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실행한다. 불우한 가정 환경, 몇 번의 자살시도로 찾아온 우울증으로 인해 글들은 한없이 어둡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그녀는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한다.

  삐뚤빼뚤한 나무는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한다. 열매나 잎사귀가 영원히 열리지 않아도 까마귀가 앉았다 갈 수 있는 나뭇가지인데. 그림까지도, 삐뚤빼뚤한 고유의 선마저도 병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이 될 수 없을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자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말하는 이 세상처럼 상담사는 나의 볼품없고 깡마른 나뭇가지를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패배가 뭐 어때서. 성공이라는 진통제로 오늘을 죽은 것으로 남기는 것보다 오늘 자기 의지로 죽는 패배자가 낫지 않나요. (p.112)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를 읽다 보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잣대가 있음을 실감한다. 어떤 동물이든 간에 인간들에 의해서 고통받는 것이 싫어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규정짓는 관계에 얽매이기 싫어 비독점 다자연애를 하게 되었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몸 위에 자유롭게 타투를 새기는 등 저자 홍승희의 이야기는 그 많은 잣대들이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의 이야기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그녀를 자신의 잣대에 맞춰 아니꼽게 바라보는 타인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을 바탕으로 툭툭 한 마디씩 내뱉는다.

  출생률, 사망률을 관리하는 국가 아래서 몸은 이래저래 감시받고 관리된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하고, 표준의 외투를 입고 있어야 한다. 몸무게를 늘리거나 빼고, 통증을 피하거나 숨기면서, 사람들의 고유한 피부색과 밀도만큼이나 다양한 몸들은 사라진다. (p.212)

  그래서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중 외국 친구에게 읽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정성스레 편지를 써주었다는 <당신은 모른다>는 굉장히 와닿는다. 타인과 내가 서로 무지해 그 무엇도 나눌 수 없는 사이라면. 타인이 강요하는 잣대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해 그 무엇도 상처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정직한 무지가 서로를 가깝게 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언어가 아니라 더 많은 무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무지. 나는 나를 모르듯 당신을 모른다. 삶이 뭔지 세상이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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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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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사진 한 장으로 과거의 전생과 연결된다는 이야기,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오므라이스를 먹는 손님의 이야기,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는 캔 통조림에 관한 이야기 등등. 내게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쩌면 이 세상 어디에서 일어날 법한 그런 이야기들을 그려내어 굉장히 매력적인 드라마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은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와 어느 정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신기한 일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별 볼 일 없는 소소한 쪽의 체험만을 다룰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꾼 신기한 일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가는 지면의 대부분을 다 써버릴 것 같으니까."라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연 여행자', '하나레이 해변',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 , '시나가와 원숭이'라는 제목의 총 다섯 편의 이야기들을 선보인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시지로서 스르륵 떠오르는 거예요. (P.42)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카페에서 만난 여자로 인해 문득 누나가 떠올라 연락하니 누나와 그 여자의 상황이 다르지 않았던 남자의 이야기(우연 여행자),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서핑을 하다 상어에게 다리를 잃고 사망한 청년의 어머니의 이야기(하나레이 해변), 24층과 26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남편을 찾는 아내의 이야기(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 일생 동안 만날 수 있는 운명의 여자는 세명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라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말해주는 남자의 이야기(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여인의 이야기(시나가와 원숭이)까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지에 대해 곱씹어 본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는 법이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써 내려간 이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픽션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내 이름만 찾으면 그걸로 됐어요. 나는 거기에 담겨진 것들과 함께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거에요. 그게 내 이름이고 내 인생이니까요. (p.211)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중 가장 눈길이 갔던 이야기는 '시나가와 원숭이'였다. 미즈키가 이름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 건 결혼 후 '안도 미즈키'라는 이름을 얻고 일 년이 지나서부터였다. 주소나 전화번호를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가장 흔히 쓰는 이름을 잊어버리다니. 그녀는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이름이 적힌 은팔찌도 착용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아다녀도 좋은 방법 하나 찾지 못하던 중, 구청에서 '마음의 고민 상담실'에 등록한다. 
  사실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나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도,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에서도 이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이름으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 삶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시 이름을 찾은 미즈키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생각한다. 그저 글자로 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그것이 좋은 부분이든 나쁜 부분이든 간에.

  그녀는 앞으로 다시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 그녀의 이름이고 그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p.214)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인 ≪버스데이 걸≫을 읽었을 때도 그 짧은 단편 속에서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가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쉽고 빠르게 읽혔지만, 그 속에 함축되었던 것들을 정확히 콕 집어 설명하기는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도쿄기담집≫ 역시 쉽고 빠르게 읽혔다. 그 어디에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하루키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읽고 있다. 그래도 ≪버스데이 걸≫보다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요지를 찾는 데에 조금 더 편안한 책이었다. 
  다섯 편의 기묘한 이야기들이 주는 왠지 모를 따뜻함과 뭉클함은, 하루키 문학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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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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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자극적인 소재보다 잔잔한 여운이 남는 드라마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내 일상 같은 드라마들을. 재벌 2세들처럼 화려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눈길이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의 '청춘'들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에게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주인공 윤지호는 딱 그런 인물이었다. "꿈을 먹고살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제부터 내 인생은 깜깜한 터널을 혼자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깜깜할 줄은 몰랐다." 꿈을 꾸는 일이 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그 길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서 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은 더 힘들다. 힘들게 만드는 게 만약 나라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그 머리에 그 옷을 입고 그 표정을 하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유정아의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저자 유정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특별한 사람, 멋진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되길 강요 당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억압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내가 시시할 정도로 흔한 사람이라는 걸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애써 무엇이 되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고, 굳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제야,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p.112)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는 '꿈, 목표'라는 단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하면 선생님, 소방관, 경찰관 등의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가 답으로 돌아왔다. 모든 아이들이 명문고, 명문대를 목표로 잡았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포기하면 '실패자, 낙오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가끔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더 강압적으로 다가왔다. 청춘이라면 도전, 열정이라는 단어와 연결 지어졌고 당연히 그 끝엔 꿈, 목표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꿈'이란 이 길만큼은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무게에 짓눌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조차도 무섭고 두려워졌다.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순간부터 나는 '젊은이스럽기'를 그만두었다. 의지든 패기든 발랄함이든, 딱 내가 버겁지 않을 만큼만 내놓기로 했다. 타고난 게으름이나 소심함 같은 것들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젊음은 누군가에게 보답해야 하는 선물이 아니라 삶의 한 구간일 뿐이니까. 모든 나이가 그렇듯.(p.106)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읽으면서 스스로 '꿈'이라고 어깨를 누르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꿈을 꾸며 자라왔는데 어느새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남들 정도만 해보자.'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었다. 터널 끝엔 행복이 있겠지라며, 막연한 희망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걸어온 터널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은데, 뒤돌아 다시 나갈 용기가 없다. 저자 유정아는 스스로를 시시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녀가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숨을 쉬기 위해 멈출 용기가 필요하니까.

  지금은 딱 하나의 목표만 남겨 두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사실 그 좋은 사람의 기준도 주관적인 것이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나태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p.180)

  오늘도 꿈 앞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윤지호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는 수많은 윤지호 중 하나인 나에게 먼저 묻고 싶다. 행복을 위한 꿈을 좇다 어느새 행복하지 않은 나를 만나지는 않았느냐고. 스스로 깜깜한 터널 속으로 밀어 넣고 있지는 않느냐고. 가끔은 내려놓는 것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라 힘들 테지만 그렇게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잠시 잊고 살았다. 이번 생도, 이 순간도, 단  한 번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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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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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시집이나 산문집을 읽다 보면, 마음에 툭하고 내려앉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들을 여러 번 곱씹다 보면, 문장들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나와 당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단어들일 뿐이다. 일상어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울림은 달라진다. 전혀 접점이 없는 두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시각을 보이는 것은 일상에서는 평범한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울림을 더 크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림태주 시인의 세 번째 산문집 ≪관계의 물리학≫은 바로 그런 문장들이 담긴 책이다. 살아보니 삶의 전부가 관계임을 깨달은 림태주 시인은 '물리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관계의 비밀스러운 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감성적인 '관계'와 이성적인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그 조화 속에서 ≪관계의 물리학≫은 독자들의 마음에 툭하고 문장을 내려놓는다.

 

오늘 지구와 달 사이에 일어난 인력과 공전,
지난 월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태어난 강아지와 고양이들,
당신과 나 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사건과 감정들.
 
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틈새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크기와 깊이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을 이만큼의 크기와, 이만큼의 깊이로 좋아한다고 해도 타인도 같은 크기와 깊이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크기와 깊이 사이에서 오는 차이는 우리에게 '관계가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그래서 ≪관계의 물리학≫에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우주의 법칙에 따르자면, 진정한 관계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미는 힘으로 서로의 확장을 돕는 일이다. 팽창의 본성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거리를 내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관계는 팽창한다'는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멀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깊어질수록 관계가 드넓어진다는 의미다. (p.38)

  림태주 시인은 자신의 관계를 바탕으로 '관계학개론'을 펼친다.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렀다는 저자의 고백은 굉장히 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당신'과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읽는 독자들을 그 관계 속으로 집어삼킨다. 마치 우주가 서서히 팽창해 서로 합쳐지듯이 그의 문장이 팽창하고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팽창하여 하나가 된다. 

  당신과 나 사이에 최적의 거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당신과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서로에게 천국을 보여줄지 지옥을 보여줄지는 당신과 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p.35)

   물론 서로가 팽창하여 하나가 되어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나와 당신의 틈새에는 적당한 거리도 필요하다는 것을, ≪관계의 물리학≫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관계에도 물리학의 이론들처럼 딱 정해진 법칙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 정해진 법칙들을 지키지 못해 흐트러진 관계들도 많았다. 때로는 내가 당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당신이 불쾌함을 느꼈고, 때로는 당신이 나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와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사이에 햇볕과 별빛과 빗방울과 분분한 벚꽃이 날렸다. 현란한 탱고 같았다. 음악이 내 몸에 닿자 내 뼈와 혈관과 심장이 녹아내려 당신에게 흘러갔다. 가을 부근에서 뉴턴의 사과가 낙하했고 세상의 중심을 향해 굴러갔다. 지구에 붉은 그리움 하나가 출현했고 그 운명을 향해 우주가 비상 출격했다. 당신이 흔들렸다. (p.24)

  앞으로 내가 지켜야 할 혹은 새롭게 만날 당신과 나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어야 할까, 나와 당신의 틈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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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상회 - 거짓말 파는 한국사회를 읽어드립니다
김민섭.김현호.고영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블랙피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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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frame). '액자, '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한 장의 단순한 사진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주로 언론 보도에서 '하나의 고정된 생각이나 관념'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마치 의사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법률용어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언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익숙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 프레임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으니까.

  ≪거짓말 상회≫는 자기계발, 사진, 음식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 사회를 덮어 씌우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대중들은 유독 이 세 가지 주제에 기대었고 그 사이에 한국 사회는 그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흐름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한 관념들에 물들다 못해 푹 젖어버린 사람들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써내지만 그 이야기 중 가운데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마치 음식의 본질을 찾은 것처럼 믿는 사람들을, 책의 저자인 김민섭, 김현호, 고영은 이 질문 하나로 프레임 밖으로 끌어낸다.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청춘'의 프레임
  만나는 사람의 영역이 넓어지고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괴리감에 몹시도 지쳐 있을 때, 내가 꺼내들었던 것은 자기 계발서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0권 중의 절반 이상은 자기 계발서였다. 지금은 그 트렌드가 '힐링 에세이'로 바뀐 것 같은데, 솔직히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다. 자기 계발서를 꺼낼 당시만 해도 그것이 문화의 흐름이었기에 무언가에 홀린 듯 집어 들었다. '청춘', '20대', '미쳐라!', '즐겨라!' 식의 키워드들을 제목으로 달고 있었던 자기 계발서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물론 나도 그중 몇 권을 골라 읽었다. '왜 죄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원하는 해결책은 알려주지 않는 건데? 질문만 던지는 게 전부야?' 그 뒤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지 않았다. 어차피 뻔하디 뻔한 내용일 테니까.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원래 힘들고 아픈거야', '나처럼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으니 힘내' 하는 식이었다. 청년은 그러한 방식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를 계발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으니 사회적 보살핌과 자기 계발이 함께 필요하다면서, 우리 사회는 청년이라는 한 세대의 권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p.28)

  ≪거짓말 상회≫는 사회가 '청춘'에게 씌운 프레임을 들춰낸다. 청춘의 전유물처럼 제시된 꿈, 열정, 도전은 오히려 청춘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사회는 성공과 실패, 단 두 가지 잣대로 청춘들을 분류했고 성공의 기준은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 높은 연봉 등으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청춘들에게 노력을 강요했고 청춘들이 "힘듭니다!"라고 외치니, '노오력, 노오오오력'을  하라고 대답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사회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창의 인재'를 일컫는 청춘이 되었다. '남들이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대입을 목표로 삼았고 입학 후엔 자기소개서 한 줄을 채우고자 일명 '스펙'이라고 불리는 활동들을 했다. 여전히 충분하다는 생각보다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뭐, 위로가 되는 점은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기 계발서에 있는 내용대로 모두가 노력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큰 구덩이에 빠지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싫어한다. 왜 자꾸 나한테만 잘하라고 강요해? (이렇게 불평하면 요즘 청년들은 이게 또 문제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그럼 보여드릴 테니 충분한 기회 좀 주십시오!")

 개인에게 가혹한 '잘'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도 그래서 "그쪽은 '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사실 개인들은 일을 좀 못해도 괜찮다. 더구나 '잘'은 사회가 정해 둔 기준일 뿐이다. 우리는 일을 충분히 잘해 왔고 또 잘하고 있다. (p.74)

 

 

 

 

'진짜'의 프레임
  가끔 프로그램의 장면 일부가 캡처된 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어 연예인들을 구설수에 오르도록 만드는 경우를 본다. 정지된 한 장면으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시작하고 곧 상황은 심해지면서 '원래 그런다더라','성격 안 좋기로 소문이 났다'라는 일명 '카더라 통신'들이 전파된다. 종종 정지된 장면이 아닌 앞뒤 맥락이 담긴 영상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갈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정지된 사진 하나의 영향력은 크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 영향력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믿도록 말이다.

  사진은 대중을 향해 발신하는 정치적 메시지이자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미디어이며, 통치자들은 대개 어떤 이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보여 주려 노력한다. (p.114)

  ≪거짓말 상회≫는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진의 교묘한 프레임을 들춰낸다. 대통령들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진들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색, 신념 등에 따라서 사진을 해석한다. 사진들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간혹 그것이 '실제'인지에 대해 간과하게 된다. 카메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실제 있었던 일을 담아낸다는 우리의 착각은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진짜' 프레임이 씌워진 사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완벽한 구도와 절묘한 표정의 하모니!)
  '진짜' 프레임을 쓰고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들과 '진짜' 프레임을 쓰고도 가짜처럼 보이는 진짜들 사이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수잔 콜린스의 책 헝거게임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모킹제이>에서 가혹한 현실에 혼란스러운 피타는 캣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난 이제 뭐가 진짜고 뭐가 만들어 낸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Real or Not real?"

  그렇다면 과연 사진의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사진은 대상의 일상과 인격을 그대로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인가? (p.96)

 

 

 

'냉면'의 프레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우리나라 예술단은 북한을 방문해 공연을 했다. 당시 가수 백지영의 인터뷰가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 그가 "사실 공연이 중요한 것이지만, 저는 공연만큼 (냉면을)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화제가 된 것은 '평양냉면'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본 국민들은 "통일이 된다면, 평양에 가서 원조 평양냉면을 먹어보겠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단순한 이 냉면에도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니!

  '냉면 곧 여름 별미' 하는 감각은 냉면이 요식업에 들어오면서 이미 발생했다. 여름을 농촌보다 더 타는 도시 거주자에게 여름 별미 냉면이란 자연스러운 감각이었다. (p.252)

  마지막으로 ≪거짓말 상회≫는 냉면, 오뎅(어묵), 맥적 등을 예시로 들며 음식에 씌워진 프레임을 들춰낸다. 음식에 씌워진 프레임은 우리가 그 음식을 즐기는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된다. '여름엔 냉면이지!'처럼 '비 오는 날엔 파전', '파전엔 막걸리', '김장하는 날엔 수육'이라면서 우리는 음식들을 한 프레임 속에 가둬버린다. 인터넷에선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음식의 유래, 조리법 등을 나열하면서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에서 오는 차이도 우열을 가리려고 아등바등한다. 
  지난 연휴,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었다. 한창 낮일 때, 급격히 올라가는 기온에 나도 모르게 '더울 땐 냉면이지!'라고 이야기하며 냉면을 먹었다. 그것도 '원조' 할머니네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기 전에 '원조','전통', 'TV 출연', '맛집'이라는 프레임에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프레임에 갇혀 음식의 대한 예의를 보이지 못했다! 뭐라 해도 '맛'이 최우선이야!

  지난 경험과 고착된 감각의 거짓말이 낳은 "맛없다"를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벗어남은 더 넓은 세계로 창을 내는 아주 구체적인 행위이다. 미각에 깃든 거짓말 하나를 그 뿌리까지 반성하다 보면, 내가 맞을 세계를 더욱 넓힐 수가 있다. 내가 나아갈 세계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p.198)

 

 

  아직도 우리가 들춰내야 할 프레임들은 많다. 책의 저자 김민섭, 김현호, 고영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했던 질문처럼,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그런 질문을 던지도록 만드는 것. '괜찮다'라는 말로 포장하여 진실을 놓치지 말 것. 오랜만에 굉장히 필요한 책을 만난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그것이 인물이든 조직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 개인은 그가 속한 시대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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