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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우연히 시집이나 산문집을 읽다 보면, 마음에 툭하고 내려앉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들을 여러 번 곱씹다 보면, 문장들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나와 당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단어들일 뿐이다. 일상어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울림은 달라진다. 전혀 접점이 없는 두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시각을 보이는 것은 일상에서는 평범한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울림을 더 크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림태주 시인의 세 번째 산문집 ≪관계의 물리학≫은 바로 그런 문장들이 담긴 책이다. 살아보니 삶의 전부가 관계임을 깨달은 림태주 시인은 '물리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관계의 비밀스러운 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감성적인 '관계'와 이성적인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그 조화 속에서 ≪관계의 물리학≫은 독자들의 마음에 툭하고 문장을 내려놓는다.
오늘 지구와 달 사이에 일어난 인력과 공전,
지난 월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태어난 강아지와 고양이들,
당신과 나 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사건과 감정들.
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틈새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크기와 깊이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을 이만큼의 크기와, 이만큼의 깊이로 좋아한다고 해도 타인도 같은 크기와 깊이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크기와 깊이 사이에서 오는 차이는 우리에게 '관계가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그래서 ≪관계의 물리학≫에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우주의 법칙에 따르자면, 진정한 관계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미는 힘으로 서로의 확장을 돕는 일이다. 팽창의 본성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거리를 내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관계는 팽창한다'는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멀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깊어질수록 관계가 드넓어진다는 의미다. (p.38)
림태주 시인은 자신의 관계를 바탕으로 '관계학개론'을 펼친다.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렀다는 저자의 고백은 굉장히 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당신'과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읽는 독자들을 그 관계 속으로 집어삼킨다. 마치 우주가 서서히 팽창해 서로 합쳐지듯이 그의 문장이 팽창하고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팽창하여 하나가 된다.
당신과 나 사이에 최적의 거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당신과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서로에게 천국을 보여줄지 지옥을 보여줄지는 당신과 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p.35)
물론 서로가 팽창하여 하나가 되어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나와 당신의 틈새에는 적당한 거리도 필요하다는 것을, ≪관계의 물리학≫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관계에도 물리학의 이론들처럼 딱 정해진 법칙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 정해진 법칙들을 지키지 못해 흐트러진 관계들도 많았다. 때로는 내가 당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당신이 불쾌함을 느꼈고, 때로는 당신이 나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와 내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사이에 햇볕과 별빛과 빗방울과 분분한 벚꽃이 날렸다. 현란한 탱고 같았다. 음악이 내 몸에 닿자 내 뼈와 혈관과 심장이 녹아내려 당신에게 흘러갔다. 가을 부근에서 뉴턴의 사과가 낙하했고 세상의 중심을 향해 굴러갔다. 지구에 붉은 그리움 하나가 출현했고 그 운명을 향해 우주가 비상 출격했다. 당신이 흔들렸다. (p.24)
앞으로 내가 지켜야 할 혹은 새롭게 만날 당신과 나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어야 할까, 나와 당신의 틈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