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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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자극적인 소재보다 잔잔한 여운이 남는 드라마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내 일상 같은 드라마들을. 재벌 2세들처럼 화려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눈길이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의 '청춘'들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에게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주인공 윤지호는 딱 그런 인물이었다. "꿈을 먹고살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제부터 내 인생은 깜깜한 터널을 혼자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깜깜할 줄은 몰랐다." 꿈을 꾸는 일이 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그 길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서 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은 더 힘들다. 힘들게 만드는 게 만약 나라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그 머리에 그 옷을 입고 그 표정을 하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유정아의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저자 유정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특별한 사람, 멋진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되길 강요 당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억압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내가 시시할 정도로 흔한 사람이라는 걸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애써 무엇이 되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고, 굳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제야,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p.112)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는 '꿈, 목표'라는 단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하면 선생님, 소방관, 경찰관 등의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가 답으로 돌아왔다. 모든 아이들이 명문고, 명문대를 목표로 잡았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포기하면 '실패자, 낙오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가끔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더 강압적으로 다가왔다. 청춘이라면 도전, 열정이라는 단어와 연결 지어졌고 당연히 그 끝엔 꿈, 목표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꿈'이란 이 길만큼은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무게에 짓눌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조차도 무섭고 두려워졌다.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순간부터 나는 '젊은이스럽기'를 그만두었다. 의지든 패기든 발랄함이든, 딱 내가 버겁지 않을 만큼만 내놓기로 했다. 타고난 게으름이나 소심함 같은 것들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젊음은 누군가에게 보답해야 하는 선물이 아니라 삶의 한 구간일 뿐이니까. 모든 나이가 그렇듯.(p.106)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읽으면서 스스로 '꿈'이라고 어깨를 누르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꿈을 꾸며 자라왔는데 어느새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남들 정도만 해보자.'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었다. 터널 끝엔 행복이 있겠지라며, 막연한 희망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걸어온 터널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은데, 뒤돌아 다시 나갈 용기가 없다. 저자 유정아는 스스로를 시시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녀가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숨을 쉬기 위해 멈출 용기가 필요하니까.

  지금은 딱 하나의 목표만 남겨 두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사실 그 좋은 사람의 기준도 주관적인 것이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나태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p.180)

  오늘도 꿈 앞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윤지호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는 수많은 윤지호 중 하나인 나에게 먼저 묻고 싶다. 행복을 위한 꿈을 좇다 어느새 행복하지 않은 나를 만나지는 않았느냐고. 스스로 깜깜한 터널 속으로 밀어 넣고 있지는 않느냐고. 가끔은 내려놓는 것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라 힘들 테지만 그렇게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잠시 잊고 살았다. 이번 생도, 이 순간도, 단  한 번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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