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식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마뱀붙이에 자신을 투영하던 다섯 살짜리 소년은 어떻게 자랐을까? 악몽 같은 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괜찮아》이후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 2부작 《나쁜 소식》이 출간되었다. 영국 드라마 <패트릭 멜로즈>의 첫 에피소드의 시작이자 더 이상 다섯 살 꼬마가 아닌 성인이 된 패트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쁜 소식》은 패트릭의 아버지 데이비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데이비드의 유해를 가지러 가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 패트릭의 24시간을 그린 《나쁜 소식》은 유년시절의 고통과 상처로 인해 얼룩진 삶을 묘사한다.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방관 속에서 자란 패트릭은 불온한 정신으로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12년간의 마약 생활을 단 250여 페이지 정도로 압축하며 그 무엇보다도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그만의 위트 있는 문장은 그 어떤 때보다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게 나쁜 소식이라고? 정신이라면, 거리에 나가 춤추지 않을 정신, 너무 표나게 웃지 않을 정신이 필요하겠지. 먼지가 엉겨 붙은 아파트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바깥에는 에니스모어 가든의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부셨다. (p. 15)

  아버지 데이비드의 부고 소식을 들은 패트릭은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을 가학적으로 대하던 아버지의 죽음은 자신에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고. 자신의 일생을 억누르고 있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패트릭은 무언가 홀가분한 느낌을 받는다. 《괜찮아》에서 아버지를 너무도 무서워했던 다섯 살 꼬마는 어느새 청년이 되어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반가워한다. 

  이제 그 결정적인 순간이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순간. 주적의 시신, 패트릭을 창조한 자의 잔해, 죽은 아버지의 시신. 말하지 않은, 또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그 모든 것의 엄청난 무게.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는데, 그것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 아버지를 대신하는 말도 해야 한다는 압박, 세상에 균열을 내고, 아버지의 몸을 조각 그림 맞추기로 만들지 모를 그 자기 분할의 행위. 이제 그 결정적 순간이다. (p. 35)




  청년이 된 패트릭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마약에 대한 사랑이야. (p. 65)"라고 할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의미로 굉장히 컸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은 청년이 된 패트릭을 끝없이 괴롭히며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패트릭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수많은 목소리들에게 시달리고, 약을 주입하기 전까지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반복한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패트릭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심리 상태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일정하지도 않은 흐름으로 진행되는 목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패트릭이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더하여 여러 차례의 마약 주입으로 황홀경에 빠진 채 24시간을 약을 찾아다니는 패트릭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패트릭은 항상 오염되지 않은 고독한 생활을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하면 이번엔 거기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p. 29)

  모든 생각의 흔적들은 패트릭을 멍들게 하고 외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도 편안하게 마음 놓을 곳이 없는 패트릭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 누가 그에게 마약 중독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가 마약을 도피처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아주 옹호하지는 못해도, 그가 마약을 도피처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가학적인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길러진 다섯 살 꼬마 아이는 결국 마약 중독자로 자라버렸다. 어린 시절의 불우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우아한 플레이보이 패트릭 멜로즈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국어시간, 갖가지 색 볼펜을 들고 선생님의 해설을 곧이곧대로 따라 적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거니까 꼭 알아둬! 별 백 개야, 백 개!" 문학 교과서 속 작품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대비책으로 내 머릿속에 담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재미없는 작품들을 계속 읽어서 무엇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수험능력 시험의 국어시간이 끝나고, 문학 교과서 속 작품들은 하나둘씩 잊혀 갔다.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라는 책을 만나기 전까지 고전 문학을 다시 떠올릴 일은 없었다. 제목부터 '이토록 친절한'이라니. 더구나 수험 생활 동안 만났던 국어, 문학 교과서에서는 잘 볼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그림들이 담겨 있었다.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그림과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진《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중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을 집어 들었다. 책을 펼쳐 목차를 보니 시험에 가장 잘 나오던 작품들은 물론이고, 알아두면 고득점에 도움이 되는 고전 문학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물론,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의 취지는 고득점을 위한 문학 작품 '암기'가 아니라 '이해'의 접근이다.

  고대 가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공무도하가와 정읍사를 시작으로, 대표적인 향가 제망매가를 비롯해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동동까지 저자 하태준은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였습니다'라는 문체를 사용하여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이 전혀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함께 실린 그림들은 문학 작품의 장면, 느낌 등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굳이 글을 읽고 암기하려고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서정적인 장면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는 단순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학 작품을 정확히 짚고 갈 수 있도록 전문을 싣고, 그에 따른 추가 설명을 덧붙인다. 기존의 문학 교과서는 현대적 풀이로 전문을 실어 학생들이 본문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것에 비해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는 풀이와 함께 원문을 실어 고전 문학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오랜만에 읽는 고전 문학으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전 문학에 대한 풀이 중에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접하게 되어 새롭기도 했다. '저 꾀꼬리도 정다운데'로 시작하는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에 대한 이야기는 어렸을 적 읽었던 고구려사 만화책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기에 더욱 신기했다.
  가마를 타고 본토로 돌아가던 치희는 이 책에서 배를 타고 본토로 돌아가게 되었고, "저와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화희를 내치세요."라고 이야기하던 치희는 배에 올라 멀어지는 유리왕에게 절을 한다. 결과적으로 유리왕은 치희를 그리워하며 <황조가>를 짓게 되지만 같은 문학 작품에 얽힌 이야기에 다른 시각적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도저히 고전 문학은 이해할 수 없어요.", "고전 문학을 암기로만 접근해야 되나요?"라고 말하는 중·고등학생들이 한 번쯤은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아마 나도 그때 고득점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그림과 이야기로 쉽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고전 문학 작품의 묘미를 더욱 잘 느끼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코노히 1 - 시무룩 고양이
큐라이스 지음, 손나영 옮김 / 재미주의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인생은 언제나 흐림 뒤 맑음!


  일본 트위터리안들을 열광하게 만든 매력 있는 뚱냥이, 《네코노히》가 한국에 상륙했다. SNS 페이스북에서 귀여운 고양이짤로 유명했던 네코노히! 이미 단행본 출간 전에 여러 국내 대형 커뮤니티에서 짤방으로 돌며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만화다. 네코노히의 전매특허인 시무룩한 표정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귀엽게 느껴진다.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트위터를 하지 않아도(사실 트위터 계정이 없어서 네코노히에 관한 소식은 쉽게 접하지 못했었다.) 《네코노히》의 매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네 컷 만화'인 《네코노히》는 독특하게도 짹짹이로 불리는 '트위터'에서 연재된 만화이다. 기존 일본 만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로 트위터에서 입소문을 타고 업계로 진출했다고 한다. 단행본에는 큐라이스 트위터에서는 볼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큐라이스 트위터에서 뚱냥이 네코노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면…단행본으로 더 심화된 덕질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능 이미 빠져부렀어~)







  《네코노히》의 매력을 간단히 자랑하자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는 소소한 실패 사례와 전매특허 시무룩한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네코노히의 소소한 실패들을 보면서 남 일 같지 않았는데,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일들은 재치 있게 그려내어 '야아아아옹~', '와오옹!'같이 고양이 울음소리 외에 (네코노히는 매력 터지는 뚱냥이니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지만) 별다른 대사가 없어도 쉽게 공감이 된다. 거듭되는 실패 중에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Success!' 외치기를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그만 실패하고 맛있는 계란밥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





  단행본을 읽다 보면 계란밥과 소바를 먹고, 뷔페와 레스토랑을 가고, 피트니스를 가는 등 네코노히는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 아닐까 싶겠지만, 네코노히는 엄연히 고양이다!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한 푹신한 마약 방석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잠을 쿨쿨 자고 친구와 건배한 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기보다는 할짝할짝 핥아먹는 등 여러 면에서 고양이의 특징이 살짝살짝 보인다. 애묘인들에게는 덧없이 힐링할 수 있는 만화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만화다. 만약 당신이 인싸(?)가 되고 싶다면, 지금 바로 서점에서 《네코노히》를 만나보길 바란다.



노히노히 노히노히 네코노히~

네코네코 네코네코 네코노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 긋기의 기술 -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거리 두기
와키 교코 지음, 오민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 놓이게 될까?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자녀이기도 하며, 누군가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이것 외에도 많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당신과 나,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모든 관계 속에서 나와 당신이 평등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좋겠지만, 사실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감당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힘들고 지쳐간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것조차도 때로는 관계 속에서 나의 숨을 옥죄어 온다. 때로는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치이고 아파해야만 할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모두 알다시피 사람이 달라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다"란 말이 있을까요?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란 생각도 들지만, 막상 혼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게 또 우리 인간들이죠. 저 역시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마음'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주 긴 시간 동안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p. 7)

  《선 긋기의 기술》의 저자 와키 교코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관계'에 대한 경험들을 털어놓으며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마음고생을 하면서까지 이어나가야 하는 관계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민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나 중심 선택은 쉽게 말해 '마음에 있는 스위치'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일치할 때, 마음에서 나온 에너지가 전류처럼 머리로 흘러가고, 이 전류를 받은 머리가 나를 행복으로 이끌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야만 내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p. 33)

  저자 와키 교코는 관계의 중심 속에서 그 무엇보다도 '나'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사람이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와키 교코가 말하는 나 중심 선택은 나만의 가치관으로 관계 속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 보호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해지지?", "그 방법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보장할까?"라는 단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다 보면, 관계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때로 우리는 머리가 시키는 일과 마음이 시키는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 흔히 머리는 특정 상황에 맞는 행동을 제시하면서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반면에, 마음은 좋고 싫음을 느낀다. 우리가 관계에서 쉽게 지치는 이유는 마음과 생각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은 싫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배려해야 된다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논리적인 결론을 주로 따르는데, 이런 상황들이 관계에 지치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어떻게 됐으면 좋겠어?", "어떤 게 내 마음이 편해지는 길이야?"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우리의 감정 상태는 환경이나 상황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조금만 바꾸어도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기지개만 켰는데도 불안이 조금 줄어들었던 것처럼,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아로마 향초를 켜놓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 역시 스스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제어하는 행동입니다. (p. 182)

  《선 긋기의 기술》은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과 연인과의 관계, 친구 관계를 시작으로 직장 내 인간관계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제시하고 '나' 중심 선택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다.





  '혹시 이건가?' 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움직여보는 편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정말 이거 맞아?" 하고 자신을 다그치는 행동은, 어떤 음식을 보며 '맛있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맛있다고 확신해?" 하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어차피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인데 말이죠. (p. 187)

  저자 와키 교코는 '나'와의 관계가 기반이 되어 타인과의 관계도 탄탄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인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전에 나에게 스스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도록 만든다. 《선 긋기의 기술》을 읽으면서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다그지치는 않았나 싶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나의 약점들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나 자신을 심하게 몰아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들은 MBC 라디오 <음악의 숲, 정승환입니다>의 오프닝에서는 이런 멘트가 흘러나왔다. "약점은 내가 아닌 상대의 판단일 때가 많죠. 정말 좋은 관계라면요, 부족한 만큼 서로가 서로의 틈을 채워가면서 성장하지 않을까요?" 정말 좋은 관계라면, 나 자신을 지키면서 서로의 부족한 틈을 채워주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게도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간다면,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지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성과 감성 펭귄클래식 142
제인 오스틴 지음, 김순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연애와 결혼에 관해 대표적인 고전 작가를 뽑으라 하면, 단연 제인 오스틴을 뽑을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통해 연애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제인 오스틴은 연애와 결혼의 과정에 인물들을 하나씩 세워 놓고 인물들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토해내도록 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의 매력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누구보다 솔직한 감정 표현은 제인 오스틴 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은 《오만과 편견》보다 먼저 집필된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에 비해서는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이 탄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 소설이 《오만과 편견》의 밑거름이 된 것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성과 감성》에서는 '돈'과 '집안'의 결합을 위한 결혼들이 이루어지는 영국 상류층 사회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그 사이에서 아첨과 오만, 변덕과 지조 등의 감정은 제인 오스틴만의 색깔로 덧입혀져 위트 있는 문체로 표현된다.




  그리고 엘리너 언니는 노어랜드와 에드워드 씨를 떠나올 때 저만큼도 울지 않았다고요. 지금까지도 그 침착함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언니도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할 때가 있기는 한 걸까요? 사람들과 교제를 피하고 싶다든지,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이나 혹은 불만을 느낄 때가 있을까요? (p. 56)

  《이성과 감성》은 대시우드 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헨리 대시우드에게는 아들 하나, 그리고 지금의 부인 사이에서 얻은 딸 셋이 있다. 노어랜드 영지를 보살펴 주었던 헨리는 자신이 재산을 상속받아 세 딸에게 나눠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헨리가 죽으며 아들 존에게 세 딸과 아내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겼지만, 존의 아내의 반대로 그들에게는 재산을 조금만 떼어주게 된다. 

  대시우드가의 자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들은 단연 첫째 딸 엘리너와 둘째 딸 메리앤이다. 첫째 엘리너는 깊은 이해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애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어 강렬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 반해 메리앤은 너무 지나친 열성을 가지고 있어 슬픔이나 기쁨을 쉽게 절제하지 못하지만 아량이 넓고 상냥해 모든 인물들이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성과 감성》의 이성은 엘리너를, 감성은 메리앤을 가리킨다.




  이런저런 점에서 성격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실제보다 훨씬 더 쾌활하다거나 진지하다거나, 아니면 똑똑하다거나 멍청하다거나 하면서 제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는 거죠. 그런 착각이 왜,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말이에요. 스스로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할 틈도 없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는 거지요. (p. 123)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두 자매는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형태로 반응한다. 엘리너는 에드워드에게 오래된 약혼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최대한 그 감정을 절제한다. 오히려 에드워드의 약혼녀가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것까지 들어주기도 한다. 너무도 담담한 엘리너의 태도와는 달리, 메리앤은 사랑의 열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사랑인 윌러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들은 메리앤은 그 충격을 그대로 흡수한다. 슬픔을 그대로 표현하고, 더 나아가 외출을 삼가는 등 그녀 자신을 누구보다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어간다. 너무나도 다른 두 자매 사이에서 제인 오스틴은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잘 표현해낸다.

  이 두 자매를 중심으로 제인 오스틴은 여러 인물들을 연결 짓는다. 현대 소설의 복합적인 인물들과는 다르게 이 인물들은 평면적이어서 그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제닝스 부인은 오지랖이 넓어 주변 인물들의 일에 먼저 나서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성품이 가진 인물이고, 레이디 미들턴은 오만적인 태도를 보여 에드워드의 약혼녀인 루시의 아첨을 굉장히 호감적으로 받아들인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입을 잘 열지 않는 에드워드나 진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브랜드 대령 등 《이성과 감성》의 인물들은 제인 오스틴의 손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사실 사람이 하나의 성향으로 치우치기란 그리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그들의 성향도 하나로 규정짓기란 매우 어려운 이야기인데, 제인 오스틴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는 두 자매를 통해 이성과 감성, 두 성향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간다. 

  하지만 내가 그분만 사랑했던 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편안함도 소중했기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이젠 거기에 대해서 별 감정 없이 생각하고 말할 수도 있고. 나 때문에 네가 힘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말했듯이 난 이제 별로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내겐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이 많아. (p. 324)

  엘리너는 자신이 절제해왔던 속마음과 감정들을 동생 메리앤에게 털어놓는다. 지나친 열성으로 슬픔과 기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메리앤은 사랑의 아픔을 극복해가면서 "감정을 절제하고 성격도 고칠 거야. 이제 내 감정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야.(p. 427)"두 자매는 그렇게 한층 더 성숙해져가며 진정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이성과 감성》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이성적인 사람인가, 감성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엘리너와 메리앤의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가정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이성과 감성, 이분법적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는 그 사이에 머물러 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고 다시 생각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