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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 ㅣ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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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붙이에 자신을 투영하던 다섯 살짜리 소년은 어떻게 자랐을까? 악몽 같은 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괜찮아》이후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 2부작 《나쁜 소식》이 출간되었다. 영국 드라마 <패트릭 멜로즈>의 첫 에피소드의 시작이자 더 이상 다섯 살 꼬마가 아닌 성인이 된 패트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쁜 소식》은 패트릭의 아버지 데이비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데이비드의 유해를 가지러 가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 패트릭의 24시간을 그린 《나쁜 소식》은 유년시절의 고통과 상처로 인해 얼룩진 삶을 묘사한다.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방관 속에서 자란 패트릭은 불온한 정신으로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12년간의 마약 생활을 단 250여 페이지 정도로 압축하며 그 무엇보다도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그만의 위트 있는 문장은 그 어떤 때보다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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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쁜 소식이라고? 정신이라면, 거리에 나가 춤추지 않을 정신, 너무 표나게 웃지 않을 정신이 필요하겠지. 먼지가 엉겨 붙은 아파트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바깥에는 에니스모어 가든의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부셨다. (p. 15)
아버지 데이비드의 부고 소식을 들은 패트릭은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을 가학적으로 대하던 아버지의 죽음은 자신에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고. 자신의 일생을 억누르고 있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패트릭은 무언가 홀가분한 느낌을 받는다. 《괜찮아》에서 아버지를 너무도 무서워했던 다섯 살 꼬마는 어느새 청년이 되어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반가워한다.
이제 그 결정적인 순간이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순간. 주적의 시신, 패트릭을 창조한 자의 잔해, 죽은 아버지의 시신. 말하지 않은, 또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그 모든 것의 엄청난 무게.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는데, 그것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 아버지를 대신하는 말도 해야 한다는 압박, 세상에 균열을 내고, 아버지의 몸을 조각 그림 맞추기로 만들지 모를 그 자기 분할의 행위. 이제 그 결정적 순간이다.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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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된 패트릭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마약에 대한 사랑이야. (p. 65)"라고 할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의미로 굉장히 컸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은 청년이 된 패트릭을 끝없이 괴롭히며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패트릭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수많은 목소리들에게 시달리고, 약을 주입하기 전까지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반복한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패트릭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심리 상태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일정하지도 않은 흐름으로 진행되는 목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패트릭이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더하여 여러 차례의 마약 주입으로 황홀경에 빠진 채 24시간을 약을 찾아다니는 패트릭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패트릭은 항상 오염되지 않은 고독한 생활을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하면 이번엔 거기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p. 29)
모든 생각의 흔적들은 패트릭을 멍들게 하고 외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도 편안하게 마음 놓을 곳이 없는 패트릭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 누가 그에게 마약 중독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가 마약을 도피처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아주 옹호하지는 못해도, 그가 마약을 도피처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가학적인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길러진 다섯 살 꼬마 아이는 결국 마약 중독자로 자라버렸다. 어린 시절의 불우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우아한 플레이보이 패트릭 멜로즈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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