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펭귄클래식 142
제인 오스틴 지음, 김순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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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와 결혼에 관해 대표적인 고전 작가를 뽑으라 하면, 단연 제인 오스틴을 뽑을 것이다. 그녀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통해 연애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제인 오스틴은 연애와 결혼의 과정에 인물들을 하나씩 세워 놓고 인물들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토해내도록 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의 매력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누구보다 솔직한 감정 표현은 제인 오스틴 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은 《오만과 편견》보다 먼저 집필된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에 비해서는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이 탄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 소설이 《오만과 편견》의 밑거름이 된 것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성과 감성》에서는 '돈'과 '집안'의 결합을 위한 결혼들이 이루어지는 영국 상류층 사회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그 사이에서 아첨과 오만, 변덕과 지조 등의 감정은 제인 오스틴만의 색깔로 덧입혀져 위트 있는 문체로 표현된다.




  그리고 엘리너 언니는 노어랜드와 에드워드 씨를 떠나올 때 저만큼도 울지 않았다고요. 지금까지도 그 침착함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언니도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할 때가 있기는 한 걸까요? 사람들과 교제를 피하고 싶다든지,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이나 혹은 불만을 느낄 때가 있을까요? (p. 56)

  《이성과 감성》은 대시우드 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헨리 대시우드에게는 아들 하나, 그리고 지금의 부인 사이에서 얻은 딸 셋이 있다. 노어랜드 영지를 보살펴 주었던 헨리는 자신이 재산을 상속받아 세 딸에게 나눠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헨리가 죽으며 아들 존에게 세 딸과 아내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겼지만, 존의 아내의 반대로 그들에게는 재산을 조금만 떼어주게 된다. 

  대시우드가의 자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들은 단연 첫째 딸 엘리너와 둘째 딸 메리앤이다. 첫째 엘리너는 깊은 이해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애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어 강렬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 반해 메리앤은 너무 지나친 열성을 가지고 있어 슬픔이나 기쁨을 쉽게 절제하지 못하지만 아량이 넓고 상냥해 모든 인물들이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성과 감성》의 이성은 엘리너를, 감성은 메리앤을 가리킨다.




  이런저런 점에서 성격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실제보다 훨씬 더 쾌활하다거나 진지하다거나, 아니면 똑똑하다거나 멍청하다거나 하면서 제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는 거죠. 그런 착각이 왜,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말이에요. 스스로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할 틈도 없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는 거지요. (p. 123)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두 자매는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형태로 반응한다. 엘리너는 에드워드에게 오래된 약혼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최대한 그 감정을 절제한다. 오히려 에드워드의 약혼녀가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것까지 들어주기도 한다. 너무도 담담한 엘리너의 태도와는 달리, 메리앤은 사랑의 열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사랑인 윌러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들은 메리앤은 그 충격을 그대로 흡수한다. 슬픔을 그대로 표현하고, 더 나아가 외출을 삼가는 등 그녀 자신을 누구보다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어간다. 너무나도 다른 두 자매 사이에서 제인 오스틴은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잘 표현해낸다.

  이 두 자매를 중심으로 제인 오스틴은 여러 인물들을 연결 짓는다. 현대 소설의 복합적인 인물들과는 다르게 이 인물들은 평면적이어서 그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제닝스 부인은 오지랖이 넓어 주변 인물들의 일에 먼저 나서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성품이 가진 인물이고, 레이디 미들턴은 오만적인 태도를 보여 에드워드의 약혼녀인 루시의 아첨을 굉장히 호감적으로 받아들인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입을 잘 열지 않는 에드워드나 진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브랜드 대령 등 《이성과 감성》의 인물들은 제인 오스틴의 손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사실 사람이 하나의 성향으로 치우치기란 그리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그들의 성향도 하나로 규정짓기란 매우 어려운 이야기인데, 제인 오스틴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는 두 자매를 통해 이성과 감성, 두 성향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간다. 

  하지만 내가 그분만 사랑했던 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편안함도 소중했기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이젠 거기에 대해서 별 감정 없이 생각하고 말할 수도 있고. 나 때문에 네가 힘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말했듯이 난 이제 별로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내겐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이 많아. (p. 324)

  엘리너는 자신이 절제해왔던 속마음과 감정들을 동생 메리앤에게 털어놓는다. 지나친 열성으로 슬픔과 기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메리앤은 사랑의 아픔을 극복해가면서 "감정을 절제하고 성격도 고칠 거야. 이제 내 감정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야.(p. 427)"두 자매는 그렇게 한층 더 성숙해져가며 진정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이성과 감성》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이성적인 사람인가, 감성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엘리너와 메리앤의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가정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이성과 감성, 이분법적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는 그 사이에 머물러 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고 다시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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