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힘 - 평범한 순간을 결정적 기회로 바꾸는 경험 설계의 기술
칩 히스.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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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예, 아니오로 단정 지어 이야기할 수 있고 혹은 누군가는 "글쎄요."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내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질문을 받은 순간까지의 내 기억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당신은 행복한가요?"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약 어제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떠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원을 다녀오고 산더미처럼 쌓인 일에 치여 허덕이고 있다면 나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 말이다. 분명 나는 "아니요,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라는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오늘 내가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듣게 되었고 어제의 내가 평생 기억에 남을 신나는 밤을 보냈다면 "네, 매일 이렇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에 도취된 나는 아마 그 순간을 중심으로 내 인생을 이야기할 것이다.



순간은 중요하다.





  어떤 순간은 다른 순간보다 힘이 세다. 유독 나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 칭찬받았을 때, 나의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았을 때 등등. 그리고 이 순간들의 공통점은 나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매일 이런 순간들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이런 순간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스틱>, <스위치>의 저자 히스 형제는 《순간의 힘》을 통해 거대한 변화의 방아쇠가 되는 결정적 순간은 얼마든지 기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매 순간으로 구성되고, 결정적 순간은 그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아 기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삶에 더욱 많은 결정적 순간을 만들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p. 16)

  《순간의 힘》은 같지 않은 모든 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바꿀 어떤 순간을 계획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즉, 우리는 삶의 변화를 위해 '경험 설계'를 할 수 있다. 히스 형제는 잊고 싶은 순간, 트라우마보다는 긍정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절정'의 순간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4가지 요소로 고양, 통찰, 긍지, 그리고 교감을 선택한다. 고양의 순간은 우리를 평범한 일상 위로 고조시킨다. 통찰의 순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리고 긍지의 순간은 우리가 지닌 최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p. 160) 마지막 인간관계를 강화하는 교감의 순간까지. 히스 형제는 자신들이 조사하고 연구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이 4가지 요소들이 경험 설계 과정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당신이 평범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꺼내고 싶어 하느냐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면 그것은 특별한 순간이다. 우리의 본능은 특별한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이것이 바로 고양의 순간이다. (p. 79)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순간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믿고 있었다. 유독 기억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게 되는 순간이 가지는 큰 힘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써 놓은 '순간을 즐겁고 소중하게'라는 문구처럼 나는 매 순간을 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순간의 힘》은 바로 그 순간을 힘 있게 만들 방법들을 제시해주었고, 이제 나는 그 순간들을 창조하기 위한 설계 작업에 돌입하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나의 인생을 극적으로 만들어 줄 결정적 순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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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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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나는 평일이면 인디애나폴리스 북쪽에 위치한 화이트 리버 고등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 학교에서 나보다 훨씬 거대하며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특정한 시간, 다시 말해 오후 12시 37분부터 1시 14분까지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만약 그 힘이 내게 다른 시간에 점심을 먹도록 정했거나, 나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내 운명을 서술하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그 9월 어느 날에 다른 대화 주제를 골랐다면 난 다른 결말을, 적어도 다른 중반부를 맞이했으리라. 하지만 삶이란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p. 9)

  영화 <안녕, 헤이즐> 원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작가 존 그린이 돌아왔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를 통해 눈부신 첫사랑과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보여준 존 그린은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의 에이자를 통해 다시금 그 감동을 느끼게 한다. 신체적 아픔 때문에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보던 헤이즐과 비슷하게 에이자는 정신적 아픔 때문에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본다. "내가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한 소녀가 자신을 찾아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나선형으로 휘몰아치는 생각의 늪에 끊임없이 빠지면서도 소녀가 찾는 건, 그 생각의 끝에 머물러 있을 '진짜 자신'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의 삶의 주인공이라고 인식할 때까지는 그 생각의 끝을 결코 보지 못한다.





 "'네 이름은 알파벳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른단다. 왜냐하면 넌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으니까.' (p. 43)"라며 아빠는 에이자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줬던 아빠의 죽음 이후 에이자는 자신이 거대한 미생물 집합체라 여기며, 클로스토리움 디피실레나 캄필로박터균 등에 쉽게 감염될 것이라는 불안함과 강박증세를 안고 살아간다. 이 불안함과 강박증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선형 생각으로 표현된다. 내면의 목소리는 에이자를 계속해서 압박하며 조여들어간다. 그녀가 자유로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넌 절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는 생각했다.
  넌 네 생각을 선택할 수 없어, 나는 생각했다.
  넌 죽어가고 있고 네 안의 벌레들이 네 살까지 먹어치울 거야, 나는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p. 105)

  작가 존 그린은 한없이 불안한 이 증세를 가진 10대 소녀의 심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서 헤이즐이 어거스터스를 만나기 전과 후의 심리에 변화가 생긴 것처럼 에이자도 데이비스를 만나고 심리 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에이자는 친구 데이지와 함께 데이비스의 아빠 러셀 피킷이 실종되었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렸다는 사실의 그를 쫓기로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에이자가 데이지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러셀 피킷을 뒤쫓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데이비스를 다시 만난 에이자는 그와의 대화를 즐겁게 여긴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자신보다 더 지독하게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네가 첫사랑을 기억하는 이유는 네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이 세상에서는 오로지 사랑만이 가치 있음을, 사랑을 통해 그리고 사랑 때문에 네가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첫사랑이 보여 주고 증명했기 때문이지. (p. 311)

  데이비스, 데이지, 그리고 엄마. 에이자는 그동안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으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순간에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나선은 안쪽으로 따라가면 한없이 작아지지만, 바깥쪽으로 따라가면 한없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310)" 에이자는 작아지는 나선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 끝에 있을 '거북이', 그러니까 '진짜 자신'을 보기 위해. 그리고 데이비스를 통해 그것을 마주하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오던 에이자는 넓어지는 나선 속에서 자신의 곁에 계속 있어주었던 데이지, 엄마를 보게 된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소녀는 안정적이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간다. 
  에이자만이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생각의 소용돌이를 걷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저 미생물 집합체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충분하게 빛나는 사람이란 것을. 존 그린은 사랑을 그렇게 빗대었다. 내가 이 세상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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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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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고를 다니면서 사회 과목의 첫 수업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국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은 연령에 따라 달랐지만 이 사실 하나만은 공통적으로 배웠다. '국가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한다.' 2014년 4월 16일. 바닷속으로 사람들을 태운 거대한 배 한 척이 가라앉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언론에서는 '전원 구조 성공'이라는 기사를 보도했고 사고 장면을 보고 있던 국민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은 언론의 보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3년이 지나서야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배가 육지로 돌아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에 분노를 느낀 김대현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가상의 국가를 세운다. 아니, '국가'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내기로 한다.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부터 2038년 미래 국가 아로니아공화국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적 상상력이 담긴 소설이다. 김대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국가의 의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p. 151)

 북위 29도 51분 15초, 동경 126도 56분 27초를 중심으로 23.48제곱 킬로미터. 게양된 '블루토피아' 국기가 휘날리는 아로니아공화국의 대통령 김강현은 일흔 살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제3대 아로니아공화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전야, 김강현은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글을 쓴다. 무엇보다 소중한 아지트 동구 만화방의 부서진 컬러텔레비전을 바꾸기 위해 또래의 삥을 뜯다 아버지에게 죽을 만큼 맞았던 어린 시절부터 한국식 암기 교육의 폐해의 수혜자였던 젊은 시절을 보낸 강현을 통해 김대현 작가는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분을 되돌아본다.
 1970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을 시작으로 1980년 민주화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1990년대 한국 IMF 외환 위기 등 김대현 작가는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굵직하게 뽑아내어 그려낸다. 이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현 작가 특유의 위트 있고 도발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씹어버린다. 강현의 입을 빌린 그는 대한민국의 지난 발자취들을 조금은 까칠하게 털어낸다. 그 밖에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암기식 교육의 폐해, 검찰 사건 조작 및 은폐 등)과 중국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조목조목 털어낸다.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은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p. 261)






 사람이 있는 곳에 국가가 있다. 국가의 기본은 영토에 살면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 생각만으로 아로니아공화국은 지금의 JDZ(한일공동개발구역)의 수중 암초 위에 세워진다. 김대현 작가는 아로니아공화국의 건국 과정을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그가 정말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이 '한일공동개발구역 JDZ'를 찾아보고 2028년 6월 22일 이후 벌어질 일들을 오래도록 이야기하면 좋겠다. (p. 415 '작가의 말' 중에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자유, 행복을 위해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국민 스스로도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는지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질문한다. 독도 문제로 일본과 분쟁 중인 우리는 2028년 6월 22일 이후 한일공동개발구역을 두고 또 분쟁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지난 과거를 후회하고 통탄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자세하게 '한일공동개발구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이런 게 있다 수준으로 넘어갔으니 말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의 의무가 중요하듯이 국민의 의무도 중요하다. 비록 태어나면서 국가를 직접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이 국가가 재밌고 신나는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가장 간단한 투표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다.) 국가를 만들자는 발칙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 국가와 국민이 함께 바뀌어야 즐겁고 신나는 나라가 만들어질지도!

  국가가 뭐냐고 물으셨죠? 아로니아가 뭐냐고 물으셨죠? 국가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시민들이 만들고 세우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입니다. 아마도 지금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믿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겠죠. 그래서 저절로 모였고 이렇게 열심히 듣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친구…… 여러분이 말하는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는 여러분이 원하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친구일 겁니다. 여러분의 아로니아……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오로지 이것뿐입니다. (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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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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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누가 말했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고. 세상에 얼마나 갈 곳이 많은지 KBS1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마다 10년 이상 방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브라운관 속 여행지를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속에 여행 버킷리스트를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디로 떠날지 정했다면, 다음은 여행 방식이다.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유여행과 제시간에 도착만 한다면 버스에 태워 이리저리 데려다주고 밥도 먹여주는 패키지여행 중 어떤 것을 택할지 비용을 고려하며 열심히 고민한다. 사실 두 가지 여행 방식 모두 좋아하는 나로선,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보다 이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진다.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는 만화가 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마스다 미리의 여행 만화 에세이다. "패키지 투어에 나 홀로 참가함"이라는 부제목에 맞게《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는 마흔 살이 됐을 때, 왠지 다급한 마음이 든 마스다 미리가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가한 패키지 투어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약간 불편한 인간관계는 있지만, 투어가 있는 한, 여자 혼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구나 하고 이 브라질에서 자신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p. 113)





  북유럽 오로라 여행을 시작으로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 프랑스 몽셸 미생 여행, 브라질 리우 카니발 여행, 그리고 대만 핑시 풍등제까지 40대의 여행기를 일기 형식의 글과 사진으로 채워간다. 일기 같은 여행기를 읽고 여행 중에 그녀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나도 이곳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 마스다 미리만의 여행 꿀팁들을 보여주는데, 기억하고 있다 훗날 여행할 때 따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으로 좋다.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들지 않아도, 이 한 번은 귀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이국의 욕조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p. 137)




  그녀와 내가 다녀온 여행지가 겹친 건 대만(타이완)뿐이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그 부분이 훨씬 좋았다. 나의 여행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으니. 무엇보다도 고궁 박물원에서 그토록 진귀한 '비취 배추'를 보기 위한 과정을 읽다 보니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기억이 나냐고 카톡도 보냈다.)

자, 다음은 어디로 무엇을 보러 갈까.
나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 (p. 37)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한 번뿐인 인생! 제자리에 머물러 고민하지 말고 떠나보자! (아 참, 그전에 충분한 경비 마련이 우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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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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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했다면 이 몸의 손을 잡아라.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엄청난 힘을 가진 영웅이 나타난다. 최첨단 슈트를 입은 아이언맨, 거미줄을 쏠 수 있는 스파이더맨, 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슈퍼맨 등등.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곁에 나타나는 일명 '히어로'들은 사람들에게 늘 환영받는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들을 사용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준다.

  아이언맨처럼 최첨단 슈트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가지지도 못했다. 귀여운 너구리 가면과 벌레 먹은 구멍이 뚫린 고등학교 검은 망토, 지팡이 그리고 두 발. 거미줄과 초인적인 힘은 물론, 날지도 못하는 영웅이 교토에 나타났다. "곤경에 처했다면 이 몸의 손을 잡아라."라는 특유의 대사로 등장하는, 이름하여 '폼포코 가면'!



  폼포코 가면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작가로 알려진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이 몸은 하치베묘진(너구리 신)의 사자이다."라고 스스로 말하던 괴인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친절한 작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늘 바쁘게 교토를 돌아다니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던 폼포코 가면은 이제 자신을 이을 2대 폼포코 가면을 선정하기로 한다.
  교토 교외에 있는 모 화학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청년 고와다는 폼포코 가면에게 2대 폼포코 가면으로 선정된다. 내면의 게으름뱅이를 존중하는 고와다는 자신을 따라다니며 폼포코 가면이 되기를 권하는 폼포코 가면이 귀찮기만 하다. 사실 그는 골수 게으름뱅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말마다 기숙사에 틀어박혀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아내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만들면서 그저 쉬고 싶어 하는 직장인에 불과하다.

  "누가 좋아서 정의의 사도 따위를. 나는 굳건하게 내 휴일을 지켜낼 거예요. 게으름 피울 수 있다면 뭐든 할 겁니다." (p. 50)

  모리미 도미히코는 필자로서 작품에 개입한다. '모험'에 대한 자신만의 소신을 밝히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을 마치 독자와 함께 관찰하는 느낌으로 묘사한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서술 방식은 독자들이 작품 밖에 위치하도록 만듦으로써 소설 전개 과정을 꽤나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전하도록 만든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웅의 정점에 도달한 폼포코 가면은 이내 영웅이라면 한 번쯤은 겪게 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폼포코 가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를 조여들어오는 탐정 우라모토와 조수 다마가와의 수사망에 더불어 그를 뒤쫓는 피라미드 단계의 거대한 조직들까지. 주변에 적들이 생겼음에도 폼포코 가면은 자신의 소신을 지켜가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곤경에 처했다면 이 몸의 손을 잡아라."
  폼포코 가면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이 몸의 일이 아니었던가?" (p. 129)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은 총 3가지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고와다가 폼포코 가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제2의 폼포코 가면이 되어 영웅으로 활동할지, 폼포코 가면의 정체는 무엇인지, 또 폼포코 가면을 쫓는 피라미드 단계의 거대 조직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들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부연 설명과 함께 추리하게 된다. 높은 가독성만큼 몇몇의 사건들은 빠르게 진행되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구나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은 교토의 지역 축제인 요이야마가 열리는 토요일 하루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으면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에 독자들도 함께 들뜨며 바빠진다.




 "축제가 끝나면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져. ……하지만 나는 이 허전함이 좋아. 축제 뒤의 허전함이 있기 때문에 축제인 거니까." (p. 415)

  축제가 끝나고 모험 같았던 고와다의 토요일도 끝이 난다.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주말은 어쩌면 축제가 끝난 뒤의 허전한 마음 같은 게 아닐까. 떠들썩하고 바쁘게 살아온 평일을 뒤로한 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소중한 시간. 모두들 내면의 게으름뱅이를 위해 느긋한 토요일 아침에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을 집어 드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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