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빵 1
보담 글.그림 / 재미주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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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마음이 쌓여가는 곳,
어서 오세요, 옥탑빵입니다.


아직은 밤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새벽.
모두의 아침이 그렇듯 저도 일어나기가 쉽지 않네요.
이른 새벽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
.
라디오를 켜고 빵 만들 준비를 하면 비로소 저의 하루가 시작돼요.
옥상 가득 고소한 향기가 퍼지네요.

  늘 바쁘게 움직이는 아침 일상. 그에 비해 아직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오후에는 아침에 비해 느린 속도로 걸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다 문득 '여기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멈추고는 하죠. 가게 안을 느리게 관찰하며 지나가면서 아침에는 왜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아, 이렇게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었나 하며 조금 걱정도 되고요. 벌써부터 이런 고민을 하다니, 지친 하루의 마지막은 왠지 모를 우울함이 찾아오네요.
  이런 우울함에는 달달한 것만큼 좋은 약이 없죠. 하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초콜릿이나 사탕같이 바로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보다는 은은한 단맛들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부드러운 빵과 어우러져 은은한 달콤함을 입안 가득 넣어주는 생크림 케이크나 혀에 닿는 순간 달콤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저는 연유 시럽이 뿌려진 빵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위로가 되는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옥탑빵》을 읽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옥탑빵」에도 저처럼 아직도 어려운 게 많은, 성장의 길목에 서 있는 2,30대가 나와요. 처음 해보는 도전에 고군분투하고, 오랜 연애 끝에 이별을 겪고, 사랑과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그런 인물들이 나오죠. 「옥탑빵」에 나오는 지영과 은혜, 혜수 등 주인공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새로운 일에 부딪히고 실망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작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에서 설명하듯이 《옥탑빵》에는 아직도 어려운 게 많은 2,30대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툴고 못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인 이번 생을 완벽하게 살기 위해 항상 고군분투하고 있죠. 쉽게 쓰지 못하는 돈도 턱턱 쓰면 좋겠고, 하는 일마다 경력자처럼 빠르게 해냈으면 좋겠고, 인간관계도 척척 풀어내가길 바라고 있어요. 아, 그렇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저마다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해내기엔 조금은 벅찬 것 같아!'
  보담 작가는 주인공 지영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우리가 벅차다고 느끼는 일들을 모두 잘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죠.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 사회의 잣대에 비추어 개인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며, 회사를 퇴사하고 2층 옥상에 옥탑빵을 만든 지영은 서툴러도 즐겁게 살아갑니다. 물론, 정말 이것이 옳은 길인가 하고 걱정하기는 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밀고 나가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 멋져 보입니다.



저는 남들이 하는 말보다 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기로 했어요.
그래도 힘들어도 웃는 날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옥탑빵》을 읽으면서 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정말로 스스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 맞는지 말이죠. 스스로에 대한 물음에 아직 제대로 된 답은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다 읽다 보면 각자 다른 고민, 걱정에 대한 해결책으로 빵을 처방받는 느낌이 듭니다.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순간의 힘들고 지친 감정들을 정리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다양한 에피소드에 따라 달콤하고 고소한 빵 내음도 느껴지는 것 같고요, 책을 덮을 즈음엔 다음 날엔 스스로에 대한 위로의 의미로 어떤 빵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간절한 소원이건대, 《옥탑빵》과 같은 베이커리 집이 집 근처에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지치고 힘든 오늘 하루를 보낸 당신의 하루에는 어떤 케이크나 빵이 어울릴까요? 모두의 마음이 쌓여가는 곳, 어서 오세요, 옥탑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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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
마쓰오 유미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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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모두 기적을 일으키고 싶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2019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는 《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는 사랑하는 여자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남자의 선택을 그려낸다. 저자 마쓰오 유미는 《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를 통해 운명적 사랑을 노래한다. 타임 패러독스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애절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그려내면서 독자들에게 설렘을 안겨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와 같은 운명적 사랑을 또 다른 타임 패러독스를 이용해 표현한 점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1년이라는 어긋난 시간 속에서 그들은 운명을 바꾸기 위해 어떤 선택을 내릴까?

  2005년의 이 에어컨 구멍과 2004년의 그쪽 구멍이 연결되어 있다, 1년이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방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이런 건 저도 처음이지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게 아닐까요? 지구 공전주기는 엄밀히 말해 365일이 아니니까 이듬해 같은 날에는 위치가 다소 어긋나 있게 되겠지요. 그 위치상의 어긋남과 이 빌라의 두 집 사이의 거리가 딱 일치한 거죠. 바로 천문학적인 우연에 의해서. (p. 72)

  우연히 잡화점 쇼윈도 속 갈색 곰인형을 본 시오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그렇게 곰인형을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여행사 직원이었던 시오리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직접 현상을 할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온 곰인형의 제안에 따라 현상 시에 통풍이 잘 되는 곳으로 이사하고자 한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새로 이사하게 된 집에서 벽에 에어컨 호스 때문에 딱 머그컵 한 잔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9월의 어느 날 밤, 사진 현상을 하다 사다리에 올라앉은 시오리는 곰인형 '반호'에게 늘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말을 걸었고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소리가 흘러나온 곳은 다름 아닌 벽에 뚫린 구멍 속. 그리고 그곳에서 '1년 후 오늘'을 살고 있는 이웃집 남자라고 소개하는 남성의 목소리에 시오리는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미래의 히라노는 앞으로 일주일 신문 기사 제목을 맞출 테니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무언가 확인하기 위해 1년 전 바로 '그 자신'을 미행해 달라는 부탁. 과연, 시오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될까?





  지금부터 이야기할 '머그컵 한 잔의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아니다. 일으킨 것은 물론 헝겊인형도 나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날 그 인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 7)

  저자 마쓰오 유미는 시오리와 히라노라는 두 남녀를 통해 기적 같은 사랑을 그려낸다. 시오리는 처음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지만 허스키하면서 나긋하고, 다정다감한 그의 말투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 자신과 같은 현재에 살고 있는 이웃집 남자 히라노. 처음엔 무뚝뚝하고 어딘가 까탈스럽다고 느꼈던 히라노였지만 어느 순간 그의 미숙한 표현 방식마저도 괜찮게 보이기 시작한다. 시오리는 자신을 둘러싼 현재의 히라노와 구멍 너머에 있는 미래의 히라노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민한다.
  《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는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두 남녀를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오리의 시선에서 바라본 두 명의 히라노는 비슷한 듯 정반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에서의 히라노와 시오리의 관계, 미래의 히라노와 시오리의 관계를 통해 서로를 위한 두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내비쳐지면서 완성되는 두 사람의 감정은 읽는 내내 즐겁게 만든다.

  어째서 이렇게 단언할 수 있냐면, 과거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으니까요. 슬픈 일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모두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끊기질 않으니까요.
  사람의 마음만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이 과거를 바꾸지 못하는 게 이상하죠. 하지만 바꾸지 못한 채 슬픈 일을 겪는 사람을 몇 번이나 보았어요.  (p. 286)

  그들에게 머그컵 한 잔의 기적이 주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사이에서 이러난 시간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소설의 결말 부분은 조금은 꼬여 이해하기에 어려웠음에도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분명 영상의 시각적인 효과와 음향 효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을 아름답게 풀어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시간 역설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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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티벳여우 스나오카 씨
큐라이스 지음, 손나영 옮김 / 재미주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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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한 매력의 소유자 네코노히에 이어 큐라이스 작가의 또 다른 캐릭터 《친절한 티벳여우 스나오카 씨》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네코노히의 노랗고 통통한 몸매가 매력 포인트였다면 스나오카 씨의 매력 포인트는 친절하지 않아 보이는 뚱한 표정과는 사뭇 다른 행동들이다. 얼굴은 사나워 보일지 몰라도 친절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스나오카 씨. '츤데레'라는 수식어, 그 자체다! 



   모두가 생각하는 스나오카 씨의 본 모습은 이렇게 사납고 맹렬한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보면 가차없이 무서운 표정을 짓고는 하지만 그 속에는 사실 여린 감수성이 풍부한 스나오카 씨다. 스나오카 씨의 에피소드를 계속 해서 읽다 보면 그의 표정은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페이지를 접는 순간에는 정감이 느껴진다!




  누구보다 여린 감성을 보여주는 스나오카 씨는 의외로 과격한 액션 영화보다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드라마를 더욱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이들보다 타인의 슬픔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능력이 탁월한 스나오카 씨다. 직장에서도 무서운 상사, 동료로 보일지 몰라도 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들을 챙겨주고 다독여주는 스나오카 씨에게 반해 그를 좋아한다. 옥상 위에 서서 사탕을 물고 있는 모습마저도 멋있게 바라보는 직원이 있을 정도!




  사실 스나오카 씨의 매력은 엄청난 '딸 바보'라는 것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스나오카 씨는 딸 스나코를 홀로 키우는 싱글 대디로, 딸을 향한 엄청난 사랑을 보여준다. 마치 늑대의 부성애를 고스란히 보여주 듯, 티벳 여우인 스나오카 씨도 굉장한 부성애를 보여주신다. (스나오카 씨의 외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개인적으로 생각으론 티벳 여우보다는 늑대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딸에게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아빠로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진다.
  네코노히와는 또 다른 매력의 소유자로, 스나오카 씨의 다른 에피소드도 매우 기대된다. 《친절한 티벳 여우 스나오카 씨》의 마지막에는 큐라이스 작가의 또 다른 캐릭터 네코노히와 컬래버레이션 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훗날 함께한 에피소드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츤츤해서 더 좋은 친절한 티벳 여우 스나오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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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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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는 꽤 깊이 박혀 있었다. 그 자리를 빨았더니 비릿한 피 맛이 날 뿐 가시는 꼼짝하지 않았다. 족집게를 찾아야 했지만 찾을 생각을 하니 피곤했다. 가시를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결국 저절로 빠질까? 아니면 영원히 남아 살이 될까? (p. 312)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조금 불편한 게 있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좁은 건물 사이 때문에 쉽게 열지 못했던 창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종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서 문득 밖을 내다본 시선 끝엔, 맞은편 집의 주방이 보였다. 가지런히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컵들이 자세하게 보일 정도로 건물과 건물 사이는 너무도 가까웠다. 창문을 열고 돌아서면서 한편으로는, 누군가 유리창 너머의 내 방을 지켜보고 있진 않을까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쓴 피터 스완슨은 독특한 구조를 가진 아파트먼트를 배경으로 하여 '누군가 당신을 지켜볼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단일적인 구조를 가진 기존의 아파트먼트와는 달리 안뜰 정원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는 구조의 아파트먼트는 압도적인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피터 스완슨은 케이트라는 주인공을 통해 그녀의 평화로운 일상을 깨버릴 수 있는 두려움들을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에 녹여낸다. 그녀의 일상을 무너뜨릴 만큼 거대한 두려움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치 이 세상에 나쁜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는 투였다. 케이트의 아빠가 말했을 법한, 어리석지만 선의에서 비롯된 단언이었다. 하지만 케이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는 여자를 본 순간부터 누군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은 늘 그런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늘 최악의 결론을 도출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결론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 23)

  케이트는 자신의 육촌인 코빈 델에게서 6개월 동안 아파트를 바꿔 살자는 제안을 수락해 보스턴으로 이사 오게 된다. 처음 방문한 보스턴이 주는 낯섦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불안 증세가 맞물리면서 그녀는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더구나 이사 온 코빈의 옆집 여자 오드리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에 케이트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트는 자신의 생각대로 오드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이웃사촌 앨런이 창문을 통해 오드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실종된 오드리를 만나러 온 잭 루도비코, 자신의 육촌인 코빈과 오드리의 관계가 석연치 않음을 알게 된다. 과연, 오드리의 죽음은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가 오드리의 집을 보고 있었던 건 당연하다. 살인 사건 현장이니까. 그도 분명 소문을 들었을 테고 궁금했으리라. 궁금하면서 불안했겠지, 아마도. 당연하다. 나쁜 일이 터지면 사람들은 늘 지켜보는 법이다. 케이트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p. 110)

  피터 스완슨은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를 통해서 '집착'이 낳은 '욕망'에 대해서 서술한다. 어두운 곳에서 생겨난 욕망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분출하게 되며, 이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전에 만났던 조지로 인해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케이트는 극심한 불안 증세에 떨게 된다. 사람이 많은 곳에 함부로 가지 못하며 답답한 곳에 머물게 되면 발현되는 공황장애에 힘들어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유일하게 그의 모습이 나타나는 꿈 속이다. 꿈속에서 조지는 라이플총을 들고 다니며 케이트를 위협한다. 케이트는 언제 어디선가 그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소설을 극적으로 끌고 가는 또 하나의 집착은 앨런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드러난다. 앨런은 흔히 말하는 '피핑 톰(Peeping Tom,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즉 관음증 환자다. 그는 우연히 창문을 통해 보게 된 오드리의 모습에 사랑에 빠지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항상 창문에 앉아 그녀를 관찰하는 것이 그의 취미가 될 정도로, 그는 그녀에게 집착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기며 그녀와 친해질 궁리를 하기도 했다.

  앨런은 거실이 더 어두워지도록 옆에 있는 램프를 끄고 여자를 계속 지켜봤다. 여자가 어찌나 평화롭고, 자기만의 작은 세상에 만족하는 듯이 보였는지 앨런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가슴이 찌릿하게 아플 정도로. 여자가 앉은 소파 반대쪽에 앉아 다리를 쭉 뻗어 서로의 맨발이 닿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 환상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완벽히 편안한 존재였다. (p. 75)

  이 밖에도 피터 스완슨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는 광기의 집착을 하나 더 보여준다. 광기의 집착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이 숨기고 있던 과거를 풀어내며, 자신의 감정들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 광기 속에서 얽히고 얽힌 인물들 간의 관계는 소설을 더욱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다만, 그 팽팽한 긴장감이 짧은 사이에 풀어지면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범인에 대한 반전은 있었음에도 그 요소가 생각보다 강하게 오지는 않아 갑작스러운 결말에 조금은 실망했음에도 400페이지 가량 탄탄한 긴장감을 유지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누군가 우리 집을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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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 허난설헌 시선집
나태주 옮김, 혜강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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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학년 때, 우연히 고전 문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단군 신화부터 시작해서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전기까지 고전 문학의 변천사를 훑어내는 수업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시조, 한시가 창작되기 시작했다. 유명 사대부들은 시를 창작하면서 풍류를 읊어내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나 지조, 절개를 표현했다. 당시 시대상으로 글 공부나 글 짓기는 남성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에 비해 많은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한글 창제 이후, 쉽게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그나마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마저도 영역이 넓지 못해 여성 작가들의 수는 남성 작가들의 수보다 훨씬 적었다.
  이매창, 황진이, 홍랑, 이옥봉, 그리고 난설헌 허초희 등 몇몇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만이 지금까지 전해졌다. 이 모든 여성 시인들 가운데 시 작품의 편수로나 품격의 높이로나 발군의 시인은 허난설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는 그녀의 작품들을 모두 엮어 놓은 시선집이다.




  허난설헌의 시 중에서 <연밥 따기 노래>는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대사로 사용되면서 사랑받고 있다. 주인공 애신이 유진을 향해 물결처럼 일렁이는 자신의 마음을 연시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는데, 허난설헌의 시 자체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애절함이 유진을 향한 애신의 마음과 일치해 더욱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연밥 따기 노래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사실 허난설헌의 생애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녀 차별 없이 글 공부를 시켰던 부모님 덕에 좋은 재능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결혼을 기점으로 그녀의 삶에는 어둠이 드리워진다. 평탄하지 못한 결혼 생활 속에서 나이가 들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공부하는 남편과 글 재주가 뛰어난 허난설헌 사이에서는 트러블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시어머니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 김성립이 글 재주가 뛰어난 허난설헌에 대해 시기, 질투가 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그녀가 가진 아이들을 모두 먼저 보내게 되면서 그녀는 슬픔 속에서 요절하게 된다.
  이런 기구한 운명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든 감정들을 토로한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감정 호소는 여성에게 지조와 절개 등을 강요하던 조선 시대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띈다. 허난설헌의 작품들은 여성이어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담아낸다. 아이를 잃은 슬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절절한 고백, 사계절에 대한 노래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노래한다.

느낀 대로 1

창가에 놓아둔 난초 화분
난초꽃 벙글어 향기 그윽했는데
건듯 가을바람 불어와
서리 맞은 듯 그만 시들었어요.

어여쁜 모습 비록 시들었지만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난초의 향기.
마치도 시든 난초가 나인 듯 싶어
흐르는 눈물 옷소매로 닦아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의 실린 허난설헌의 시는 모두 풀꽃 시인이라 불리는 나태주 시인의 풀이로 되어있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시를 쓰기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손을 거쳐서 그런지 허난설헌 시의 감성들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잠이 오지 않는 가을밤, 다시 읽어보기 좋을 것 같은 시집이다.

마음에 있는 말 7

멀리서 나를 찾아오신 손님
당신이 보내오신 잉어 한 쌍을 주셨어요.
무엇이 들어있나 배를 갈라보았더니
그 속에 편지 한 장이 들었지 뭐에요.

첫 말씀을 '늘 보고 싶다'로 쓰셨고요.
그다음은 '잘 있느냐' 물으셨네요.
편지를 읽어가며 당신 뜻 알고는
눈물이 흘러서 옷자락을 적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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