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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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종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3가지 혁명을 통해 지구를 지배하고 진보를 이룩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집단 신화들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만의 신념을 구축했고, 그것을 뛰어넘어 신이 되고자 소망한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통해 심화시킨 의제들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호모 사피엔스 앞에 놓인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와는 달리 이 책은 역사적 서사를 의도하고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교훈의 선집이라고 하겠다. 교훈이라고 해서 단순 명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독자 스스로 더 생각해보도록 자극하고, 우리 시대의 주요 대화 중 일부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p. 10 _ 서문 중에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기술적 도전, 정치적 도전, 절망과 희망, 진실, 회복탄력성이라는 범주를 더욱 세분화하여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의제들을 제시한다. 저자 유발 하라리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는 이 모든 의제들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의제에 대해 독자들이 놓치고 있는 사안, 그 의제가 가지고 있는 의의 등을 쉽고 재밌는 예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뿐이다. 그렇다, 욕망을 뛰어넘어 신이 되고자 한다면 유발 하라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견을 이야기하라'라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한다.
  사실 《호모 데우스》 출간 이후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많은 의제들에 훨씬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AI 혁명(4차 산업 혁명)이 시작되고 난 뒤, 컴퓨터의 처리 속도와 지적 수준은 상향화된 것은 물론이고 생명 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과 욕망, 선택을 뒷받침하는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컴퓨터가 인간 행동을 분석하고 의사 결정을 예측하는 능력 역시 월등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들을 점점 AI에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있다. 그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들이 구축한 오랜 집단 신화들의 기반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호모 사피엔스들이 믿었던 상호 주관적 실재인 법, 돈, 종교, 국가 등 말이다. 오랜 집단 신화와 기술의 발전 사이에서의 괴리에서 사피엔스들은 서서히 현실과 허구를 구별할 힘을 필요로 하게 된다.

  사실, 호모 사피엔스의 의제에서 진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잘못 전달하면 머지않아 지지자들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현실을 더 정확히 반영한 경쟁자들에게 뒤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그런 가정 역시 또 하나의 마음 편한 신화다. 현실에서 사람들 간의 협동력은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달렸다. (p. 358)


" 인간은 언제라도 의심하고, 다시 검증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다른 길을 시도해볼 자유가 있어야 한다. "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유발 하라리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시대의 거대한 혁명들과 개인의 내적인 삶이 연결돼 있다'라는 사실이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지구 차원의 관점에서 쓰였을지 언정, 개인의 차원에서도 소홀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혼돈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무거운 환상들을 던져 버리기 위해 그는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선지자들이 사람들에게 촉구한 바를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자고 나면 빠르게 바뀌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인지하고,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늘 자각해야 한다. 당신이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들어 온 이 세계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최우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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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 - 여기는 복지과 보호계
센자키 소이치 지음, 이수영 옮김 / 출판미디어 율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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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은 슬픔과 허무가 얼룩덜룩하게 섞인 줄무늬 같은 거야.
거기에 돌발적으로 기쁨이 첨가되는 거지.
기쁨은 인생의 선물인 거야.


  우리 사회는 경제가 성장하고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정작 그 속에는 고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실내·외의 온도는 40도를 웃돌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는 일이 잦았고,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던 나는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집 안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조차 없어 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어려운 노인들이 많았고 정부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침과 저녁 2차례에 걸쳐 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 사이로 물을 뿌려주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갑자기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일은 고달파. 들려오는 게 매일 어두운 얘기인데다가,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거든. 불합리할 때도 많지. 그러다 보니 이 부서 사람들은 다들 동료 의식이 강하고 상호 협력할 수밖에 없게 돼. (p. 48)

  저자 센자키 소이치는 《복지인:여기는 복지과 보호계》는 일본의 복지 시스템을 소재로 하여 '생활 보호'를 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곁에 서 있는 복지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별일 없이 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구청에 취직한 사카이라는 인물이 배속된 부서의 '복지과 보호계'를 통해 저자 센자키 소이치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회 최하위층의 생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흡한 복지 시스템으로 인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국가의 성장 속에서 그동안 모두가 편안히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복지란, 생활보호란 무엇인가?"

  대학을 졸업한 사카이는 안정적인 이유로 구청에 취직한다. 그가 배속된 부서는 모두가 기피하는 '복지과 보호계'. 복지와 보호라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사카이는 사회의 최하위층에 놓인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고 병, 고령, 장애라는 수렁 속에서 미흡한 복지 시스템에 의해 인간다운 생활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게 된다. 80명 이상의 케이스들을 관리하면서 사카이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고자 하는데……

  그런 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 어떻게든 해 주고 싶다, 가족처럼 힘이 돼 주고 싶다, 그런 마음가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호계에서 계속 일해 보고 싶다는 의욕 한편에는 이런 불완전한 인간이 끼어들었다간 오히려 피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 법률뿐만이 아니다.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고 가족처럼 그들을 보살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너무나도 불완전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p. 245)




  인생은 각양각색이야. 결말이 그 케이스처럼 비참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좋은 경우도 있지. 하지만 인생을 결과만으로 판단할 순 없어. 누구든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고, 나쁠 때만 이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불평등 속에서도 말야,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중요한 건 딱 그거거든. (p. 82)

  사카이는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공원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된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들을 그저 못마땅한 사람들로 바라보는 여자친구와, 그들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바라보게 된 사카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했던 일을 하면서 사카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 그들이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
  저자 센자키 소이치는 조금은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사카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한 방울 가미된 사랑 이야기로 누구든지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든다. 가벼운 책의 무게와는 달리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을 센자키 소이치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길 원했고,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은 변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사회의 아픈 고름들이 덧나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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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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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집에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아울러 우리는 '식구'라 한다. 다른 단어로 표현하자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특별한 관계로 이루어진 이들에게는 '가족'이라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식구'라는 사전적 정의가 훨씬 잘 어울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혼인과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가족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그 어떤 가족보다 뭉클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좀도둑 가족》은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이대로 유리는 여기서 살 작정일까. 쇼타는 살짝 불안해졌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데, 갑자기 가족이 한 명 늘고 생활이 변해버리지 않을까. (p. 53)

  한 슈퍼마켓, 아버지 오사무와 아들 쇼타는 가업을 목적으로 그곳에 방문했다. 오사무가 망을 보는 동안 쇼타는 준비해 둔 가방에 컵라면을 담아 챙긴다. 그들의 가업은 소위 말하는 '좀도둑질'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쇼타와 오사무는 늘 그렇듯이 고로케 가게에 들어 고로케를 구입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층짜리 낡은 아파트 단지 입구 앞에 벌을 받는 듯한 어린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특유의 성격 때문에 오사무는 어린 소녀를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갑자기 데려온 여자아이를 보고 아내 노부요는 아이 부모가 찾을 거라며 걱정하며 아이를 돌려보낼 것을 권한다. 저녁을 먹은 후, 오사무와 함께 아이를 돌려주러 찾아가지만 이내 집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노부요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유리 같은 아이가 있으니 자신의 결점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의 불행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다.
  나에게는 그런 억지조차 사치인 것일가. 눈 앞의 유리를 보며 노부요는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여길 수는 없었다.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주워 온 것이 아닌데. 노부요는 그렇게 생각했다. (p. 104)




   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좀도둑 가족》을 통해 가족의 탄생과 해체, 그리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을 엮어내는 탄탄한 유대감을 그려낸다. 그는 각자의 세상에서 불온전한 인물들이 모여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지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좀도둑 가족》을 읽다 보면, 인물들이 서로에게 결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온다. 노부요와 유리, 오사무와 쇼타, 그리고 하쓰에와 아키는 다른 듯 비슷한 아픔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한다. 
  이들에게 '식구'라는 정의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유리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어린 쇼타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들은 자신들의 저녁 식사인 고로케를 유리에게 양보한다. 무언가를 나누어주고 함께 밥을 먹는 것에서 비롯된 그들의 관계는 파고들수록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 한 켠을 내주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노부요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던 유리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되고, 유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자 한다. 허나, 뜻밖의 유리의 행동으로 인해 노부요는 오히려 자신의 지난 상처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오사무와 쇼타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고 하쓰에와 아키 역시 그러했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 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조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은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p. 136)




   하지만 남들에게는 비정상적인 관계로 보였던 걸까. 이 가족에게도 시련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린 쇼타의 시선으로 이 가족의 해체를 그려낸다. 그 과정 속에서 인물들은 각기 하지 못한 속마음들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들을 알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뭉클한 감정은 점점 커져간다.

  우리가 대체 누구를 버렸다는 말인가. 아들 부부에게 버림받은 하쓰에와 함께 살고, 살 곳을 잃은 아키에게 있을 곳을 제공하고, 방치되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쇼타와 린을 보호했다. 만일 그것이 죄라면, 그들을 버린 사람들에게는 더 무거운 죄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p.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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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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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이 성의 게스트로 초대받았습니다! "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 벅찬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랐다.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겐 표지부터 제목까지 그 어떤 것 하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2018 일본 서점 대상에서 역대 최고 점수로 대상을 받은 《거울 속 외딴 성》은 그 명성에 어울리듯이 탄탄하고 뭉클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책의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심리 묘사는 물론, 600페이지가 넘음에도 가지고 있는 빼어난 흡입력, 그리고 놀라운 반전과 더불어 작가만의 가슴 뭉클한 위로를 담아낸다.

  나만은 리셋하지 마.
  고코로는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마음속에서 다시 중얼거리다가 바로 취소했다.
  뭐 괜찮아, 잊어버려도 돼. 내가 네 몫까지 기억하고 있을게. 너와 오늘 친구였던 것을. (p. 500)

  중학교에 입학한 고코로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있을 곳이 없다. 어느 학교에나 한 둘씩 있는 주목 받는 아이들이 고코로의 말을 비웃기 시작하면서부터 고코로는 학교에 가기 두려워진다. 집에서는 학교에 가지 않는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님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날, 고코로의 방 안에 있던 거울이 빛나기 시작하자 고코로는 호기심에 손을 뻗어본다. 거울 속으로 들어간 고코로 앞에는 성 하나가 놓여있고 어느새 자신의 옆에 늑대 가면을 쓴 기묘한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놀라 거울 밖으로 도망친 고코로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그곳에 자신과 같이 '등교 거부'를 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늑대 가면을 쓴 기묘한 여자아이는 거울 속으로 들어온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제안을 한다. 이 성 어딘가에 숨겨진 열쇠를 찾아낸다면 소원을 들어주리라고……. 고코로는 문득 자신을 괴롭히던 미오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아이들은 열쇠를 찾아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고코로가 들어간 거울 속 외딴 성에 모인 일곱 명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들은 빛나는 거울 속을 통해 성에 드나들며 서로를 알아간다. 처음 '외딴 성'이라는 단어는 마치 고코로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홀로 떨어져 지내는 고코로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주변 인물이 없다는 생각으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부모님께 미안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교에 갈 용기가 나지 않던 아이였다.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이러한 고코로의 사정에 투영하여 청소년 문제를 풀어나간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이유를 알지 못하는 괴롭힘을 당했을 때의 당혹감과 두려움을 고코로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 시기에 청소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에 대해 세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빠르게 소설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거나 또는 그 시기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이 어느 정도는 다가올 것이다.




   거울 속에 들어간 고코로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두려웠지만, 이내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 여느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는 것처럼 그들은 매일 성 속에 들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문득 아이들은 자신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고, 곧이어 성 속이 아닌 학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학교에 간다고 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변함없이 고코로의 가슴을 얽어맸지만 보건실과 거기서 기다릴 교복 모습의 친구들을 상상하니 가슴이 뛰었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
  함께 싸울 수 있다. (p. 345)

  성에 들어올 때만 해도 곁을 잘 내어주지 않았던 아이들은 '함께'라는 사실에 용기를 내기로 한다. 그렇게 여렸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세계를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뗀다. 400페이지에 걸쳐 아이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도와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하는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비로소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혼자라고 여겼던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 훌륭해. 잘 견뎠어. "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성장하는 과정에 놓인 아이들이 서로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는지 굉장히 탄탄한 전개 속에서 풀어낸다. 결말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그 예측한 결말이 모두 맞지는 않을 정도로 의외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심리 상태에 있던 고코로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이 솟구쳤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그 인연은 언제가 되었던 다시 만날 것이라는 서로에 대한 약속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은 고코로. 그 아이가 알게 된 따뜻함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어딘가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 얼굴을 들어줘, 그런 마음을 담아서 이 책을 썼습니다."
_2018년 서점대상 수상소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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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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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있다마다요!


  혹시 여러분들은 책 좋아하시나요? 저는 1년 전부터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장르에 상관없이 여러 종류의 책들을 읽다 보니 그동안 제가 알지 못했던 제 취향도 다시 알게 되고, 무엇보다도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긴 글을 읽으면 생기는 울렁증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네, 이제는 책을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네요! 
  책을 좋아하다 보니 때로는 책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책들이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요.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니 자체 발광하는 특수 용지를 사용해서 불을 끄고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고, 혹은 눈의 움직임을 파악해 알아서 책장이 넘어가는 책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책을 상상하고 계시나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책에 대한 것들은 어쩌면,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에서 만나볼 수도 있겠군요.
  어느 마을 변두리 한 귀퉁이에 있는 '있으려나 서점'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있으려나 서점에는 '설마 이런 책도 있겠어?'에 관한 책들이 있는 곳이죠. 조금 더 특별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상상하는 '책과 관련된 책'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서점입니다. 주인아저씨에게 "혹시, ○○에 대한 책, 있나요?"하고 물으면, 대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예, 있다마다요!"



《있으려나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저마다 다양한 책들을 찾으러 옵니다. 물론, 주인아저씨께서는 항상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여러 종류의 책들을 소개해주곤 하지요. 조금 희귀한 책, 책과 관련된 도구에 관한 책, 책과 관련된 일에 관한 책, 책과 관련된 이벤트에 관한 책, 책과 관련된 명소에 관한 책, 그리고 도서관·서점에 관한 책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책들이 있을까, 하며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 요시타케 신스케는 재치 있는 상상력으로 이 모든 책들을 그려냅니다.



  열매 대신 책을 맺는 작가의 나무에 대한 책, 상·하권으로 분리되어 둘이서 함께 읽어야 하는 책, 책 제목에 따른 적절한 진열법이 담긴 책, 책과 이별하는 플랜이 담긴 책, 모두가 독서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독서초에 관한 책 등 저자 요시타케 신스케는 《있으려나 서점》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귀여운 일러스트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수중 도서관」에 관한 책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책을 무척 좋아하던 부자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도서관을 짓고 자신이 모든 동서고금의 책들을 빽빽이 채운 후 계단과 사다리를 치워버렸다는 내용인데요, 그가 죽은 뒤로 그 땅에 물이 차올라 조금씩 수위가 높아졌고 수위에 따라 읽을 수 없는 책,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나누어져 신기했습니다. 아, 물론 이 현실에 존재하기란 어렵겠죠. (물로 인해 책과 책장의 상태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이 있다면, 수위가 높아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모두 읽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길 것 같네요. 그림은 왠지 모르게 <해리 포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뇌리에 박혀버렸습니다.
  《있으려나 서점》을 읽으면서 굉장히 즐거운 상상 속에 빠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뭐, 평소에 제가 상상하던 책들은 아직 《있으려나 서점》엔 입고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마 《있으려나 서점》을 나오는 마지막엔 큰 즐거움을 느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독서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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