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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 - 여기는 복지과 보호계
센자키 소이치 지음, 이수영 옮김 / 출판미디어 율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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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슬픔과 허무가 얼룩덜룩하게 섞인 줄무늬 같은 거야.
거기에 돌발적으로 기쁨이 첨가되는 거지.
기쁨은 인생의 선물인 거야.
우리 사회는 경제가 성장하고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정작 그 속에는 고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실내·외의 온도는 40도를 웃돌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는 일이 잦았고,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던 나는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집 안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조차 없어 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어려운 노인들이 많았고 정부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침과 저녁 2차례에 걸쳐 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 사이로 물을 뿌려주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갑자기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일은 고달파. 들려오는 게 매일 어두운 얘기인데다가,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거든. 불합리할 때도 많지. 그러다 보니 이 부서 사람들은 다들 동료 의식이 강하고 상호 협력할 수밖에 없게 돼. (p. 48)
저자 센자키 소이치는 《복지인:여기는 복지과 보호계》는 일본의 복지 시스템을 소재로 하여 '생활 보호'를 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곁에 서 있는 복지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별일 없이 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구청에 취직한 사카이라는 인물이 배속된 부서의 '복지과 보호계'를 통해 저자 센자키 소이치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회 최하위층의 생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흡한 복지 시스템으로 인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국가의 성장 속에서 그동안 모두가 편안히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복지란, 생활보호란 무엇인가?"
대학을 졸업한 사카이는 안정적인 이유로 구청에 취직한다. 그가 배속된 부서는 모두가 기피하는 '복지과 보호계'. 복지와 보호라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사카이는 사회의 최하위층에 놓인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고 병, 고령, 장애라는 수렁 속에서 미흡한 복지 시스템에 의해 인간다운 생활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게 된다. 80명 이상의 케이스들을 관리하면서 사카이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고자 하는데……
그런 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 어떻게든 해 주고 싶다, 가족처럼 힘이 돼 주고 싶다, 그런 마음가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호계에서 계속 일해 보고 싶다는 의욕 한편에는 이런 불완전한 인간이 끼어들었다간 오히려 피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 법률뿐만이 아니다.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고 가족처럼 그들을 보살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너무나도 불완전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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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각양각색이야. 결말이 그 케이스처럼 비참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좋은 경우도 있지. 하지만 인생을 결과만으로 판단할 순 없어. 누구든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고, 나쁠 때만 이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불평등 속에서도 말야,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중요한 건 딱 그거거든. (p. 82)
사카이는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공원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된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들을 그저 못마땅한 사람들로 바라보는 여자친구와, 그들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바라보게 된 사카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했던 일을 하면서 사카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 그들이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
저자 센자키 소이치는 조금은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사카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한 방울 가미된 사랑 이야기로 누구든지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든다. 가벼운 책의 무게와는 달리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을 센자키 소이치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길 원했고,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은 변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사회의 아픈 고름들이 덧나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