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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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집에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아울러 우리는 '식구'라 한다. 다른 단어로 표현하자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특별한 관계로 이루어진 이들에게는 '가족'이라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식구'라는 사전적 정의가 훨씬 잘 어울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혼인과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가족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그 어떤 가족보다 뭉클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좀도둑 가족》은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이대로 유리는 여기서 살 작정일까. 쇼타는 살짝 불안해졌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데, 갑자기 가족이 한 명 늘고 생활이 변해버리지 않을까. (p. 53)

  한 슈퍼마켓, 아버지 오사무와 아들 쇼타는 가업을 목적으로 그곳에 방문했다. 오사무가 망을 보는 동안 쇼타는 준비해 둔 가방에 컵라면을 담아 챙긴다. 그들의 가업은 소위 말하는 '좀도둑질'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쇼타와 오사무는 늘 그렇듯이 고로케 가게에 들어 고로케를 구입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층짜리 낡은 아파트 단지 입구 앞에 벌을 받는 듯한 어린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특유의 성격 때문에 오사무는 어린 소녀를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갑자기 데려온 여자아이를 보고 아내 노부요는 아이 부모가 찾을 거라며 걱정하며 아이를 돌려보낼 것을 권한다. 저녁을 먹은 후, 오사무와 함께 아이를 돌려주러 찾아가지만 이내 집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노부요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유리 같은 아이가 있으니 자신의 결점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의 불행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다.
  나에게는 그런 억지조차 사치인 것일가. 눈 앞의 유리를 보며 노부요는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여길 수는 없었다.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주워 온 것이 아닌데. 노부요는 그렇게 생각했다. (p. 104)




   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좀도둑 가족》을 통해 가족의 탄생과 해체, 그리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을 엮어내는 탄탄한 유대감을 그려낸다. 그는 각자의 세상에서 불온전한 인물들이 모여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지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좀도둑 가족》을 읽다 보면, 인물들이 서로에게 결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온다. 노부요와 유리, 오사무와 쇼타, 그리고 하쓰에와 아키는 다른 듯 비슷한 아픔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한다. 
  이들에게 '식구'라는 정의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유리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어린 쇼타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들은 자신들의 저녁 식사인 고로케를 유리에게 양보한다. 무언가를 나누어주고 함께 밥을 먹는 것에서 비롯된 그들의 관계는 파고들수록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 한 켠을 내주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노부요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던 유리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되고, 유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자 한다. 허나, 뜻밖의 유리의 행동으로 인해 노부요는 오히려 자신의 지난 상처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오사무와 쇼타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고 하쓰에와 아키 역시 그러했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 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조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은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p. 136)




   하지만 남들에게는 비정상적인 관계로 보였던 걸까. 이 가족에게도 시련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린 쇼타의 시선으로 이 가족의 해체를 그려낸다. 그 과정 속에서 인물들은 각기 하지 못한 속마음들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들을 알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뭉클한 감정은 점점 커져간다.

  우리가 대체 누구를 버렸다는 말인가. 아들 부부에게 버림받은 하쓰에와 함께 살고, 살 곳을 잃은 아키에게 있을 곳을 제공하고, 방치되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쇼타와 린을 보호했다. 만일 그것이 죄라면, 그들을 버린 사람들에게는 더 무거운 죄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p.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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