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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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과학과 의학의 진보로 이제 인간은 질병에서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과거에 비해 늘어난 수명으로 '백세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의 수명을 100세라고 가정한다면 50세는 딱 절반의 나이다. 그동안 살아온 치열한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내기 위한 준비 단계인 그런 나이. 공자가 50세에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여 '지천명'이라고 불리는 이 지혜의 나이를, 중년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중년, 잠시 멈춤》은 저자 마리나 벤저민이 '폐경'이라는 신체적 변화를 겪고 난 후 자신의 심리를 써 내려간 책이다. 젊음이 떠난 후 남아 있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의 나이 '50'이 자신을 위한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중년에 접어든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걱정들을 마리나 벤저민은 자신만의 담담하면서 시원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길을 가다 시들기 직전의 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꽃잎의 바깥쪽 가장자리는 이미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고, 꽃의 형태를 잡아주는 꽃받침은 힘없이 시들어가고, 꽃잎은 떨어지기 직전이지만, 그래도 사실 그 꽃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답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을 사이에 두고, 활짝 피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한 동시에 막 스러지기 시작한 모습도 갖고 있기 때문에. (p. 28)

  마리나 벤저민은 준비할 새도 없이 자신에게 찾아온 '폐경'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남들처럼 불안정한 생리 주기를 시작으로 하여 어느 순간 찾아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마리나는 뜻밖의 수술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폐경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혼란스러웠던 그녀는 이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따금 드는 우울감에 살짝 괴롭기도 하지만 호르몬 치료를 통해 극복해낸다.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달라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이 물리적 치료에 언제까지나 기대지 않기로 작심한다.

  《중년, 잠시 멈춤》은 젊음과 늙음, 딱 그 가운데 선 여성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마리나는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젊음과 늙음, 그러니까 그녀의 딸과 엄마의 삶을 바라본다. "모든 엄마는 딸들이 성인 연성에 가까워질수록, 자기 자신은 (성인 여성의 세계와) 멀어지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p.143)"라고 비유하며 사춘기의 딸과 중년의 자신이 신체적 변화를 넘어서서 어떤 심리적 변화를 느끼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라 둔해지고 약해진 엄마의 노년을 바라보면서 마리나는 어떻게 중년을 보낼지 다짐한다. "쉰을 코앞에 둔 나는 그렇듯 자유로운 탐험이 발견을 이끌고, 그런 발견을 통해 소유하게 되리라는 걸 확신한다.(p. 181)"라며.

  우리 몸은 나이의 무게를 견딘다. 그래서 우리 몸은 중년기에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다. 감지하기 어렵지만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는 것, 눈에 띄지 않게 신경세포의 발화 빈도가 줄거나 발화력이 약해지는 것, 피로감이 높아지는 것, 점차 행동이 굼떠지는 것 등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들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재조정할 뿐 아니라 우리 생각의 형태 또한 변화시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 242)

  《중년, 잠시 멈춤》을 읽으면서 중년의 나이에 놓인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깊게 내색은 하지 않으셨겠지만, 속으로 굉장한 고민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마리나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중년은 어떨까란 생각도 들었다.
"누구도 자신의 삶 전체를 뒤돌아 볼 수는 없다. 단지 부분부분만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참고하거나 가설 혹은 까다로운 질문을 바탕으로 우리 삶 전체를 상상해본다.(p. 82)" 언젠가 다가올 시기겠지만, 나는 이렇게 무덤덤하면서 시원하게 그 시기를 보낼 수 있을까. 그 시기가 오면, 나도 한 번쯤은 이렇게 삶의 부분부분 돌아보고 잠시 멈춰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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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이 - 아홉가지 무민 골짜기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6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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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용품이나 디자인 소품에서 자주 만났던 무민의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거짓 처음이었다. 코인지 입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뭉툭하고 동글한 얼굴에, 하마를 닮은 듯한 귀여운 생물체 무민은 토베 얀손의 연작 소설 주인공이다. 무민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캐릭터로 처음 만나게 되며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매력에 빠져 무민이 그려져 있다면 살까, 말까 고민하다 이렇게 소설로 만나게 되니 너무도 반가웠다. 사실 무민을 제외하고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 하얀 하마처럼 생긴 종족 전체를 무민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다른 캐릭터들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에 무민 골짜기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무민처럼 소설이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캐릭터들은 널리 사랑받아 왔다. 무민처럼 비슷하게 곰돌이 푸도 디즈니 사의 캐릭터로 재탄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곰돌이 푸 영화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아해왔다. 무민도 그와 비슷하게 소설 속 캐릭터치고는 굉장히 친숙한 것이 큰 매력이다.
  토베 얀손은 매우 독특한 스타일로 '무민'의 이야기를 구축해나간다. 이렇게 사랑받는 캐릭터들의 원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대부분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곰돌이 푸의 경우에도 숲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곰돌이 푸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드물다. 《보이지 않는 아이》는 무민이 주인공이거나 혹은 주인공이 아닌 단편 소설 아홉 편이 엮인 소설집으로, 무민이 등장하지 않아도 토베 얀손은 특정 캐릭터들을 모두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적어내려간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아이》의 무민 골짜기 주민들은 모두 다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나도 어엿한 이름이 있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다 의미가 있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티ㅡ티ㅡ우우인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티ㅡ티ㅡ우우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고 생각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어? (p. 26)


 


《보이지 않는 아이》를 읽다 보면, 무민 외에도 무민 파파, 무민 마마 혹은 무민의 단짝 친구인 스너프킨, 조금은 심술 맞은 미이 등 다양한 인물들 하나하나에 자연스럽게 애정이 간다. 사실 무민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를 자주 보아서 그런지 굉장히 겨울 분위기에 맞게 잔잔하고 조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 꽤나 있었다. 무민 골짜기에서는 토베 얀손의 상상 속에서 마치 환상의 나라처럼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주인공들을 각자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구축해 나간다. 
 
  내가 널 돌봐 주고 사랑해 줄게. 밤에 내 베개에서 자도 돼. 네가 더 커서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랑 바다에서 헤엄칠 수도 있어. (p. 84)

  무민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무민 연작 소설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귀여운 매력에 덧붙여 굉장히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매력까지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아이》의 마지막 이야기 '전나무'를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앞으로 다가올 겨울과 크리스마스가 매우 기대된다. 올겨울은 무민과 함께 보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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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
존 벨레어스 지음, 공민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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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거리 곳곳에 '할로윈' 분위기가 조성된다. 연예인들의 할로윈 코스튬에 관한 기사도 여느 때보다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지 항상 이 시기 즈음이 되면 판타지 장르의 영화들을 찾아보곤 한다. 애니메이션 <유령신부>, <몬스터 호텔>이나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등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가 조금은 어우러진 그런 영화들 말이다. 갑작스럽게 바빠진 일정 탓에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할로윈에 맞춰 흥미진진한 영화 하나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잭 블랙과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가 그 주인공이었고, 나는 영화보단 원작 소설을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딕 소설의 양식을 고스란히 따른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는 부모님을 여읜 루이스가 유일한 혈육인 조너선 삼촌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몬스터 하우스>를 연상하게 만드는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 속 조너선 삼촌의 집은 여느 평범한 집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루이스는 어딘가 미스터리한 이 집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던 중, 매일 밤마다 무언가를 찾아 집 안 복도를 돌아다니는 조너선 삼촌을 마주하게 된다. 조너선 삼촌은 루이스에게 자신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고백하며 이 미스터리한 집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사실 자신과 이웃집에 살고 있는 플로렌스는 마법사이며, 과거 이 집의 주인이 집 어딘가에 마법 시계를 숨겨 놓았다고.

  대부분의 마법은 평범한 사물 위에 생겨난단다. 사물을 놓고 거기에 주문을 걸거든. 내가 아는 어떤 마녀는 적을 없애려고 그 사람의 사진을 배수로에 넣었어. 사진 속 얼굴이 물에 다 씻겨 내려가면 남자가 죽게 될 거라 생각했지. 평범한 방법이야. 그러니 아니란다, 루이스. 이 시계는 저기 있는 할아버지만큼 실재하는 거야. 그저 마법에 걸린 것이 다를 뿐이지. 하지만 무슨 용도로 마법을 걸어 두었는지는 삼촌도 아직 몰라. (p. 54)

  존 벨레어스는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에 마법과 공포라는 소재를 넣어 읽는 내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조너선 삼촌과 플로렌스 부인이 어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루이스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집 안 전체에 울리는 알 수 없는 마법 시계 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조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한편,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는 조너선 삼촌과 살게 된 루이스가 낯선 곳에서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그려내기도 한다. 조너선 삼촌과 플로렌스 부인이 마법사라는 사실에 적응하는 과정과 더불어 루이스가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함께 풀어낸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친구'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존 벨레어스는 루이스를 통해서  보여준다.

  게다가 루이스를 절망에 빠지게 만든 게 하나 더 있었다. 루이스는 타비를 잃었다. 계획을 세우고 몰래 집을 빠져나와 온갖 짓을 다 했지만 친구를 잃었다. 어쩌면 그 일 때문인지도 몰랐다. 죽은 사람을 깨울 수 있다고 말한 건 굉장하지만, 진짜로 살려내는 건 다르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은 마법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p. 132)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를 읽으면서 그리 매끄럽지 못한 전개가 조금은 아쉬웠다. 2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에서 마법과 미스터리한 공포 분위기에 집중하면서 전개되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화려한 CG 기술을 이용하여 이 자연스럽지 않은 전개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차올랐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시작되었지만, 뒤늦게나마 할로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소설과 영화 둘 중 하나를 골라보면 될 것 같다. 개인의 취향에 맞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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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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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시인이 고독을 노래한다. 알렉산더 포프는 "부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채 살게 해주소서"라고 갈망했다. 하지만 고독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일반적으로 더없는 행복과 고통의 차이는 선택된 고독인가, 원치 않는 고독인가의 차이인 듯하다. (p. 209)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SNS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오프라인 외에도 온라인에서까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를 온라인에서 이어나갈 수도 있었고, 온라인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반대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런 관계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피로함을 안겨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요즘같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고독'이 존재하기에는 어려워졌다. 오프라인, 온라인 속에서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기 시작하고, 타인을 상대하다 보니 개인의 시간을 갖는 데에는 제한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제 이 사회에서 홀로 남겨지는 '고독'이란 두렵고 무서운 것이 되어 버렸다.

  '천하무적 젊음'이라는 축복을 누리며, 윙윙 소리를 내는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며. 그러다 어떤 생각이 점점 커지더니 '깨달음'이 되고, '단호한 결심'으로 굳어졌다. 살아온 날들을 통틀어 그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다. 타인과의 만남은 전부 충돌처럼 보였다. 운전하는 동안 어쩌면 자기 안에서 두려움과 전율의 웅성거림을 느꼈을 수도 있다. (p. 120)

  《숲속의 은둔자》는 저자 마이클 핀클이 27년간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한 크리스토퍼 나이트라는 인물에 대한 기사를 접한 뒤, 그를 취재한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이다. '미국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리는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27년간 1000번의 무단 절도를 범하면서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다 2013년 파인 트리 캠프에서 식량을 절도하다 발각되게 된다. 마이클 핀클은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발각되는 현장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그에게 편지를 써 인터뷰를 요청한 것,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마치 소설처럼 서술한다.
  숲속으로 들어간 나이트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두렵고 무서워하는 고독과 고요, 무엇보다도 정적은 나이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는 늦여름 밤의 고요한 호숫가에 조용히 물에 떠 누워 있는 상태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나이트는 홀로 있는 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는 몽상이나 사색에 자주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시작하여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현대인으로서는 몽상과 사색에 빠질 여유가 없다. 혹여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지루함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숲에서 지낸 생활 가운데 가장 그리운 것은 고요와 고독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상태예요. 가장 그리운 건 정적이에요"라고 나이트는 말했다. 숲은 꽁꽁 얼어붙고 동물들은 구덩이 속에 들어간 자연 그대로의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 이르려면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다. (p. 217)

  혼자 있는 시간이 짧은 현대인에 비해서 나이트는 27년의 긴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된다. 마이클 핀클은 《숲속의 은둔자》를 통해 나이트야말로 진정한 은둔자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를 진정한 은둔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은둔자는 '사회에서 벗어나 멀리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나이트가 사회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고향 마을과 멀지 않은 숲속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점, 사람들의 물건을 무단 절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 점, 그리고 숲속에서도 끊임없이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으며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던 점들을 엮어본다면 그를 은둔자라고 지칭하기엔 조금 거리가 멀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구나 나이트가 물건을 훔쳐 가는 바람에 안전의 위협을 받은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이트는 그저 숲속에 사는 이방인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숲속의 은둔자》 속 나이트는 굉장히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인간은 남들 앞에선 언제나 세상에 내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쓴다. 심지어 혼자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연기를 한다. (p. 221)" 숲속의 고요와 고독 사이, 그 정적에서 나이트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했다. 피로한 관계 속에서 지치고 있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 남겨진 시간, 고요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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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심리학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영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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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믿는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남을 믿는 것은 어마어마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잘못된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다. (p. 112)

  우리는 생각보다 타인을 쉽게 믿는다. 내게 보인 조금의 호의로 하여금, 우리는 때로 '이 사람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다'라는 착각에 흔히 빠지곤 한다. 타인을 믿는 건 죄가 되지는 않는다. 모든 관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관계에 대한 전제에서 우리는 그가 보인 호의적인 태도로 인해 한 가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과연,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그는 믿을만한 사람인가? 《속임수의 심리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준다. 저자인 김영헌은 현직 검찰 수사관으로서  경험한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허를 찌르는 사기꾼들의 행동, 수법들을 이 책에 모두 담아 놓는다.

  속임수는 실제 사실과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실의 간극을 벌려놓는다. 사기꾼은 이를 위해 욕망, 신뢰, 불안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p. 206)

  《속임수의 심리학》은 우리의 주변에 너무 많은 속임수들이 놓여있음을 먼저 설명한다. 동대문을 쇼핑하면서 보았던 옷을 백화점에서 브랜드명이 달린 태그 하나로 몇 배 이상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옷을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하려고 백화점 아울렛 매장으로 가서 가격을 확인해 보면, 원가 그대로지만 50% 할인된 가격이라고 붙인 가격표를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경험해보았다. 이 외에도 많은 상황들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꽤나 많은 속임수의 덫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 김영헌은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그런 속임수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속임수는 욕망, 신뢰, 불안이라는 장치들을 이용해 우리들의 마음속을 쉽게 헤집어 놓는다. 물량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만 특가! 이런 방송 또 없습니다! 매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는 홈쇼핑 방송을 보면서 '저걸 사야 할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엄마는 종종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안 사도 다음 달에 또 방송해~" 홈쇼핑 방송을 보는 내내 나는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물건이 다 팔리면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는 불안 심리에 가득 차 있었다. 속임수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나의 마음을 매우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 마케팅과 속임수의 그 경계부터 시작해 저자 김영헌은 이 세상에 크고 다양한 속임수에 대해서 말한다.

  신뢰란 무엇일까? 에드거 샤인 MIT 명예교수는 '상대방이 나를 이용하지 않거나, 내가 이야기한 정보를 나에게 불리하게 사용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가족이나 동창, 선후배 등 원래 알고 있던 이를 신뢰한다. 이들이 자신을 위해 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낯선 상대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높인다. (p. 115)

  《속임수의 심리학》을 읽으면서 꽤나 곤란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아는 사람'으로부터의 사기였다. 일명, '아는 사람 효과'는 친밀함으로 심리적 거리의 간극을 줄이면서 타인을 쉽게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옛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나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의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 김영헌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며 경고한다.

  "속지 않으려면 이들의 제안 뒤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이익이 있는지, 무슨 이유로 그런 제안을 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속임수에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p. 132)"

  '이 사람은 무조건 믿을 수 있지.'라는 생각에 한발 앞서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속임수 수법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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