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 - 18세기 산업혁명에서 20세기 민족분쟁까지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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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두 번째로 읽는 세계사 책은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였다. 그래도 역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역사 책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두려움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나열과 그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책을 집어 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는 역사적 사실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기존의 역사 책과는 다르게 어떤 주제를 관통하여 하나의 흐름으로 전개하여 조금은 이해하기 쉬웠다.

  요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 것처럼 현대사를 이해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이고 재료가 되는 '사건'의 연결 방식, 이미지 방식도 다양할 것이다. 역사에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라는 규칙은 없다. 나이나 인생 경험에 따라 취향이나 문제의식도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살려 역사를 바라보면 된다. 무엇보다도 현대사를 편안하게 대했으면 한다. (p. 6)

  독자들이 편안하게 역사를 대하길 바랐던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역사의 밑바닥을 흐르는 몇 가지 동기들을 제시한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국민국가 시스템, 도시의 팽창, 철도 등의 다양한 인공적 네트워크의 성장, 기술혁신에 의한 기술 체계의 변화, 그것과 상호 관계에 있는 사회 시스템의 변모라는 6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19,20세기의 역사는 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뒤엉켜 여러 가지 마찰을 일으켰기에 이 6가지 키워드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는 1부는 18, 19세기 세계의 변화, 그리고 2부는 주로 20세기 세계의 변화를 다룬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도시의 팽창을 통해 어떻게 근대적 사회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시작으로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 퍼진 국민국가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식민지 경쟁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후 20세기 세계를 장악했던 제국주의가 불러온 결과들을 차례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신문, 라디오 및 미디어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을 언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신문 방송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역사 책에서는 다루지 못한 이야기이기에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만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사회 문화 시스템이 마련되었기에 그 점을 잘 짚어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모든 장이 끝나는 부분에 칼럼을 통해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는데, 과거와 현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인구 폭발의 세기인 20세기를 끝으로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 마무리가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는데 20세기에 가장 대두되었던 환경 문제를 끝으로 갑작스럽게 끝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사회의 장래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조건이 더해지거나 여러 요인들이 미묘하게 얽혀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면서 예측하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가 새로운 조건을 부여하거나 적극적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이용하는 입장에 선다면 적게나마 역사의 방향을 바꿔 나가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p. 11)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구축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사회 시스템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면, 역사의 방향을 서서히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 책을 읽는 이유는, 아마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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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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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도미자와 미쓰루. 도내에서 경영 컨설턴트 사무소를 경영하고 있는 소시민이다. 고객은 중소기업이 많아 수입이 결코 많지 않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부업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 부업이 바로 청부살인이다. (p. 111)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이라니. 자극적인 제목이 굉장히 호기심을 건드렸다. 짧고 간결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선, 그냥 놓치기엔 뭔가 아까운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사카 고타로 등 많은 일본 추리 소설을 즐겨 읽어왔지만, 사실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그리고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앞으로 그의 작품을 종종 챙겨 볼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도내에서 경영 컨설턴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도미자와 미쓰루는 부업인 청부살인을 통해 부수입을 얻는다. 청부 살인에 대한 대가는 650만 엔. 의뢰인이 청부 살인을 요구하면 잘 나가는 치과의사 이세도노와 도미자와의 친구 쓰카하라, 2명의 연락책을 통해 도미자와에게 그 의뢰가 전달된다. 의뢰가 들어오면 도미자와는 사흘 안에 수락할 것인지 판단하고, 작업에 착수하면 선납금 300엔을 받아 2주 안에 수행한다. 의뢰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에 도미자와는 타깃을 중심으로 역으로 그들이 청부 살인을 의뢰한 이유를 생각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자신의 부업 사실이 밝혀지지 않기 위함이 있다. 그는 언제까지나 이 부업을 이어나가고 싶으니까.

  청부살인업자는 상상해선 안 돼. 표적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혹은 이 사람이 죽으면 곤란한 사람이 있겠지 같은 걸 상상해선 안 된다고. 반대로 표적이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이런 녀석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상상은 감정이입과 이어지지. 인간은 감정이 들어간 상대에게는 냉정해질 수 없어. 즉 죽일 수 없다는 말이지. (p.27)

  일본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유독 '킬러' 혹은 '청부살인업자'라는 직업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주 읽는 추리 소설 작가인 이사카 고타로도 '킬러'라는 소재로 끊임없이 소설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시모치 아사미는 우리가 이전의 여러 추리소설 속에서 만났던 청부살인업자와는 다른 신선함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의뢰인을 직접 만나지 않으며, 2명의 연락책을 사용하여 자신의 정보가 발각되지 않게 주의한다는 점. 그리고 주어진 표적을 중심으로 그 살인이 왜 의뢰되었는지를 되짚어가는 탐정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킬러나 청부살인업자라면 액션 영화에서처럼 굉장히 잔혹한 방법으로 표적을 죽일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의 주인공 도미자와는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아주 깔끔한 방식으로 표적들을 처리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하나의 일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은 실제로는 잔인하지만 전혀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묘사가 굉장히 눈에 띄는 작품이다.

  사람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쉽게 빼앗을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청부살인업자라는 존재가 필요한 거지. 쉽게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을 대신 빼앗아주는 전문직의 존재 의의 말이야. (p. 71)

  저자 이시모치 아사미는 모든 에피소드마다 도미자와가 청부살인을 하는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한다. 사람들이 청부살인을 의뢰할 수 없는 이유를 도미자와의 입을 통해 매 에피소드마다 언급하면서, 도미자와의 캐릭터의 존재를 굉장히 탄탄하게 만든다. 그래서 역자의 말에 쓰인 그대로 이상하게 느껴야 하는 사실들도, 모두 자연스럽게 여겨지며 묘한 쾌감을 얻게 된다. 그만큼 너무도 매력적인 책이었다. 앞으로 새로이 만날 그의 작품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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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 뚜벅이변호사 조우성이 전하는 뜨겁고 가슴 저린 인생 드라마
조우성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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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소송을 시비를 가리는 과정, 분쟁을 처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것이 '치유의 과정이자 분노를 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만약 이때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 과정은 보다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p. 7)

  2013년, 우연히 극장에서 영화 <변호인>을 보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선 변호사 송우석 역할을 맡은 배우 송강호의 연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명대사를 핏발 세우며 외치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멋있어 보였다.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되 그 뒤에 숨어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의뢰인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모습. '변호사'라는 직업은 그렇게 내 머릿속에 인식되었다.
  실제 변호사의 삶은 어떨까? '뚜벅이 변호사'라는 별명을 가진 조우성 변호사는 그동안 자신이 맡아 온 소송들의 이야기들을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을 통해서 풀어 놓는다. 얽히고설킨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송의 뒷이야기들은 단순하게 승소와 패소, 두 결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조우성 변호사는 소송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덧붙이고, 그 이야기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외의 또 다른 결과들을 이야기한다.

  의뢰받은 사건의 상대방을 속 시원히 두들겨서 이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쟁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화를 풀게 만들어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변호사는 성직자와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p. 187)

  조우성 변호사는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때로는 의뢰인의 상황에 맞춰 무료 변호를 하기도 하며, 혹은 의뢰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들에게 변호 이상의 관심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변호 이후에 모든 의뢰인들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가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에 소개한 사례들 속 의뢰인들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무언가 함께 뿌듯해짐을 느끼게 된다.
  영화 <변호인> 속의 변호사 모습이 머릿속에 인식되었다고 해도, 사실 변호사라면 법에 입각하여 냉철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느꼈으나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속의 정우성 변호사의 모습은 또 다른 변호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들을 밝히며 자신의 소신들을 드러낸다.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의뢰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276)" 그래서 그는 진심으로 의뢰인들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분노'를 헤아리고자 노력한다.

  때로는 나를 기쁘게 하고 때로는 나를 절망에 빠뜨리게 했던 여러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가장 본질적인 덕목은 무엇보다 '잘 듣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p.293)

  삶이 힘들어질 때, 누군가 진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속의 의뢰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조우성 변호사는 굉장히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몇몇 사례에서도 느끼듯이 그들의 분노와 억울한 감정들을 미리 헤아려 준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은 '소송'이라는 수단까지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해주는 직업, 변호사라는 직업이 빛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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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썸머 베케이션 살림 YA 시리즈
이희영 지음 / 살림Friends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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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왔다. 옷장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걸쳐 입었다. 쌀쌀해지는 바람에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니 녹음이 짙어져 싱그러웠던 여름이 생각났다. 겨울이 찾아오는 지금, 여름을 찾기엔 너무 먼 이야기인 것 같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썸머썸머 베케이션》은 이희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로, 한 여름의 싱그럽고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을 화자로 하여, 첫사랑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아버지를 여읜 하준은 엄마와 형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와 살게 된다. 악착같이 공부한 형은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하게 되고 마을의 자랑이 된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하준은 학교 근처 은행나무에서 드라마 촬영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여름방학을 앞둔 그때, 하준은 같은 반 예빈과 사귄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그 소문이 귀찮은 하준은 그저 여름방학을 기다린다. 시작된 여름 방학, 슈퍼 아주머니와 친하던 하준은 어느 날 아주머니의 조카 서연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문득 4년 전, 자신을 '묭실이'라고 소개한 슈퍼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나 부끄러워진 하준은 서연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서연과 부딪힐 일이 많아진 하준은 서연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찰나의, 그래서 차마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짧은 마주침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과연 맞닿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개구리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새가 벌레를 채 가는 것처럼, 꽃잎이 개화하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짧고 강렬한 찰나의 순간이 지나갔다. (p. 66)

  이희영 작가는 '이하준'이라는 고등학교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그려낸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열여덟 살이라는 나이로 하여금, 아직은 세상의 여러 측면을 헤아리지 못하는 순수한 모습과 더불어 형이 악착같이 공부하여 이루고 싶은 꿈을 이해하게 되는 성장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심에는 첫사랑이라는 싱그럽고도 풋풋한 감정이 있다.

  중요한 건 서연이가 묭실이로 기억했든 강아지로 기억했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평상 위 아이를 오랫동안 기억했던 것처럼. 어쩐지 가슴이 막 쪄 낸 고구마처럼 몰캉몰캉해지는 기분이었다. 올여름은 무척이나 뜨겁다. 얼마나 뜨거우면 가슴마저 녹아내리게 하냔 말이다. (p. 132)

  하준을 통해서 이희영 작가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하준 가족이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문제를 짚어낸다. 전기 설비 하청 업체의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고, 드라마 촬영으로 관광객이 늘어나자 바닷가 마을에 불어닥친 개발의 바람으로 하여금 생계의 위협을 당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준의 눈과 귀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아버지의 사고 이후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태도, 무분별한 개발과 대형 마트의 입점으로 인해 불안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결코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니, 대한민국의 어디에선가 현재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눈을 돌려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좁은 2차선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 도미노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넘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하루아침에 묭실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건 너무 서운할 것 같으니까. (p. 118)

  《썸머썸머 베케이션》의 첫 장을 읽었을 때, 다시 고등학생이 된 느낌을 받았다. 왠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속 작품을 읽는 것처럼. 성인이 되고 나서 복잡한 플롯 구성의 소설들을 읽다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은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플롯 구성이지만 그 속에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자 했던 이희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썸머썸머 베케이션》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방학을 기다리는 그 설렘을 다시 일깨워준다. 하준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소설 밖의 나는 이제 곧 추워질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올 여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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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마흔입니다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마음철학 수업
키어런 세티야 지음, 김광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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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현대 사회 속 현대인의 삶을 다각적으로 바라본다. 통계학을 통해서 현대인들이 어떤 생활 패턴을 보이는지 수적인 지표를 통해서 알 수 있고, 사회학을 통해서 현대인들이 사회 속에서 중요시 여기는 문제와 가치들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심리학과 인문학 속에서는 현대인들이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지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통찰하며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을 찾아내는 철학의 경우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의 지표를 남길 수 있을까?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철학 교수 키어런 세티야는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를 통해 철학이 우리들에게, 특히 인간의 생애 중반에 놓인 중년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 보여준다. 성인기와 중년기에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들을 소개하면서 철학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저자 키어런 세티야는 존 스튜어트 밀을 시작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버지니아 울프, 쇼펜하우어 등 다양한 철학가들의 이론들을 통해 설명한다. 기존의 '중년'의 삶을 담아낸 책들이 개인적 일화를 통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자기계발서적인 역할에 치중했다면,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가장 나다운 '현재'를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철학적인 해답을 찾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년의 위기에서 오는 공허함을 다른 종류의 공허함들, 이를테면 무언가를 실행할 근거를 찾지 못하거나 특정 결과가 다른 것보다 나은 근거를 찾지 못할 때 등의 불특정한 공허함과 구분하는 것은 철학의 문제이다. 궁극적 가치가 존재한다면, 도대체 우리 삶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p. 67)

  독특하게도 저자 키어런 세티야는 중년이 된 사람들에게 불현듯 찾아온 어떤 감정들을 모두 한데 모아 '중년의 위기'라는 표현으로 묶어낸다. 지금껏 이루기 위해서 애써 왔던 삶의 모습을 성찰하게 되는 과정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와 후회, 질식감, 연민,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 상태를 '중년의 위기'라는 표현을 통해 중년이 된 많은 사람들의 모든 감정들을 아우른다. 더 나아가서 이 '중년의 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서 드러나게 되었는지 철학 외에도 사회학, 문학, 언론 등에서의 표현들을 찾아 설명하고, 그가 앞으로 철학에서 어떤 해결 방안을 찾을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것이 중년의 위기의 한 단면이다. 밀의 신경쇠약과는 달리 이것은 허무주의와 거리가 있다. 세상에서 비롯되는 가치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일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이루어야 할 일이란 그만큼 실행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언가가 빠져 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설명하려면 궁극적 가치를 지닌 행위들 사이에서도 개량적인 것과 '단순히 개량적인 것만이 아닌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p. 78)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는 주로 중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코 그 이야기들이 모두 중년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짧은 삶을 살았지만 돌아볼 것이 많은) 나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앞둔 20·30대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우리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후회로 선택을 주저할 때가 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이라는 한숨 섞인 말을 내뱉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다시 주워 담기란 어려운 일이다.

  무엇이 선이고, 언제가 중요한 순간이고, 친밀한 인간관계는 어떠하고,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매일과 매주, 매년을 설명하려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 내어도 부족할 만큼 삶은 냉엄하다. (p. 159)

  선택에 앞서, 향수와 후회로 둘러싸여 있다면 가감하게 그 모든 것을 떨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오로지 이 '현재'에 모든 것을 집중한 채 말이다. 요즘 삶의 중요한 선택을 앞둔 나는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가장 가까운 과거를 되새겨 보기도 하고, 고민이 깊어지는 밤에는 후회로 가득 찬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떡하죠, 마흔입니다》의 6장 <지금 이 순간을 살다>까지 읽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바로 그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 키어런 세티야가 하고 싶은 말들을 곱씹어 보아야겠다. 중년이 되어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았을 때, 향수와 후회가 많지 않을 삶을 그리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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