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썸머 베케이션 살림 YA 시리즈
이희영 지음 / 살림Friends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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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왔다. 옷장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걸쳐 입었다. 쌀쌀해지는 바람에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니 녹음이 짙어져 싱그러웠던 여름이 생각났다. 겨울이 찾아오는 지금, 여름을 찾기엔 너무 먼 이야기인 것 같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썸머썸머 베케이션》은 이희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로, 한 여름의 싱그럽고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을 화자로 하여, 첫사랑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아버지를 여읜 하준은 엄마와 형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와 살게 된다. 악착같이 공부한 형은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하게 되고 마을의 자랑이 된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하준은 학교 근처 은행나무에서 드라마 촬영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여름방학을 앞둔 그때, 하준은 같은 반 예빈과 사귄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그 소문이 귀찮은 하준은 그저 여름방학을 기다린다. 시작된 여름 방학, 슈퍼 아주머니와 친하던 하준은 어느 날 아주머니의 조카 서연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문득 4년 전, 자신을 '묭실이'라고 소개한 슈퍼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나 부끄러워진 하준은 서연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서연과 부딪힐 일이 많아진 하준은 서연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찰나의, 그래서 차마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짧은 마주침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과연 맞닿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개구리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새가 벌레를 채 가는 것처럼, 꽃잎이 개화하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짧고 강렬한 찰나의 순간이 지나갔다. (p. 66)

  이희영 작가는 '이하준'이라는 고등학교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그려낸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열여덟 살이라는 나이로 하여금, 아직은 세상의 여러 측면을 헤아리지 못하는 순수한 모습과 더불어 형이 악착같이 공부하여 이루고 싶은 꿈을 이해하게 되는 성장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심에는 첫사랑이라는 싱그럽고도 풋풋한 감정이 있다.

  중요한 건 서연이가 묭실이로 기억했든 강아지로 기억했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평상 위 아이를 오랫동안 기억했던 것처럼. 어쩐지 가슴이 막 쪄 낸 고구마처럼 몰캉몰캉해지는 기분이었다. 올여름은 무척이나 뜨겁다. 얼마나 뜨거우면 가슴마저 녹아내리게 하냔 말이다. (p. 132)

  하준을 통해서 이희영 작가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하준 가족이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문제를 짚어낸다. 전기 설비 하청 업체의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고, 드라마 촬영으로 관광객이 늘어나자 바닷가 마을에 불어닥친 개발의 바람으로 하여금 생계의 위협을 당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준의 눈과 귀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아버지의 사고 이후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태도, 무분별한 개발과 대형 마트의 입점으로 인해 불안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결코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니, 대한민국의 어디에선가 현재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눈을 돌려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좁은 2차선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 도미노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넘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하루아침에 묭실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건 너무 서운할 것 같으니까. (p. 118)

  《썸머썸머 베케이션》의 첫 장을 읽었을 때, 다시 고등학생이 된 느낌을 받았다. 왠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속 작품을 읽는 것처럼. 성인이 되고 나서 복잡한 플롯 구성의 소설들을 읽다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은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플롯 구성이지만 그 속에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자 했던 이희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썸머썸머 베케이션》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방학을 기다리는 그 설렘을 다시 일깨워준다. 하준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소설 밖의 나는 이제 곧 추워질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올 여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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