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들은 반공 선전하는 자유 유럽 방송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레닌이 살아있던 시절의 소비에트 러시아가 자신들을 반대하는 소비에트를 뺀 다른 소비에트만 지원한다는 식의 내용이 나오는 등 볼셰비키의 오류도 지적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볼셰비키의 민족문제를 책임진 혁명가로서 레닌이 죽기 직전까지 스탈린을 경계하고 서기장직에서 몰아내야 하는 점도 상세히 언급한다. 그리고 레닌의 민족 이론은 후대에 소수민족 공산당원들이나 반체제 활동가들이 소련 중앙정부의 대러시아주의를 비판할 때 인용하는 점도 나온다. 또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가 한때 소련 영향을 받은 점도 나오며, 중소 분쟁 당시 중국정부가 소련 타지크 공화국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도 나온다.

[북플] <러시아 민족문제의 역사> ★★★★★를 평가했습니다. 더보기
https://bookple.aladin.co.kr/~r/feed/45582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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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김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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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2일 씀.

김태형의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책 읽었는데, 사회적 관점과 더불어 심리학적 개인 치유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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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디카페인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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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마셔도 맛있습니다. 카페인 부담이 적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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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미국 신문발행인들 앞에서 한 농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1851년에 ‘뉴욕 데일리 트리뷴‘이 칼 마르크스라는 이름의 보잘것없는 저널리스트를 런던 특파원으로 고용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원고료로 회당 5달러나 받으면서도 더 올려달라고 줄기차게 졸랐다는군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친구는 다른 생계 수단을 찾아 나섰고, 결국엔 ‘트리뷴‘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이 세상에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 혁명과 냉전의 씨앗을 뿌릴 사상에 자신의 재능을 풀타임으로 쏟게 되었지요. 만일 뉴욕의 그 자본주의 신문이 그에게 원고료를 조금 더 많이 주고 계속 특파원으로 활동하게 했더라면, 아마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런던 특파원 칼 마르크스> 옮긴이의 글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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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마르크스가 저널리스트로서 뛰어났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뉴욕 데일리 트리뷴˝ 기고문을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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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악마들 -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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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중국정부가 외국인 탐험가와 학자들이 유물 발굴하고 해외로 유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면서(대신 중국정부가 모두 관리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유물의 훼손 및 해외 유출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이 끝이다.

해외의 왕과 박물관이 ˝야만적인˝ 중국인들로부터 유물을 ˝보호˝하겠다는 순수한 동기이든, 자국의 해외 침략을 위한 길 알기 위한 ˝정치적˝ 동기이든, 신장위구르에 찾아갔던 학자/탐험가 중에는 러시아에서 혁명가로서 활동하다가 감옥과 시베리아 유형 갔었고, 탐험 중에도 유물을 자국으로 가져가는 것을 자제했던 올덴베르크와 의화단 사건 때 의화단의 깃발을 뺐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지나치게 오만하다는 성격으로 ˝적을 많이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뛰어난 중국어와 고대 아시아어 실력으로 인해 유물 탐사 후 ˝중국학계의 아버지˝라고 불린 프랑스 중국학자 펠리오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전시되지 않은 유물이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유물을 중국에서 반출한 것으로 인해 대영박물관에서조차 가장 초라한 중앙아시아 전시실에 그의 유물이 전시되고, 그가 발견했다는 언급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후세에 ˝유물 약탈자˝로 비판받고 잊혀진 헝가리계 영국인 스타인(그래도 전 재산을 영국과 헝가리인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을 위한 기금은 조성하는 좋은 일은 했다.)과

최초로 신장위구르지역을 탐험한 스웨덴인(동시에 유대인이지만 나치 편 들면서 옛 영광은 뒤로 하고 철저히 잊혀진 채 쓸쓸하게 죽어간) 헤딘, 베제클리크의 3미터 이상의 벽화를 통째로 훔쳐서 박물관 벽에 붙여놨다가 제2차세계대전 미군 폭격으로 완전 파괴되어 이전에 만들어진 사진과 도면으로만 볼 수 있고,

일부 유물은 소련군에게 약탈당하는 비극을 경험하기 전에 죽은 독일인 르콕, 지리학자이자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불교종단의 대표로서 성지순례에 대한 호기심 혹은 침략준비인지 알 수 없는 의도로 신장위구르지역을 탐험해서 많은 유물을 획득했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물들을 일본, 조선(덕분에 남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타니가 남긴 신장위구르 유물 전시실이 있다. 한국전쟁 중에도 큰 파괴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만주(제2차세계대전 중 소련이 가져가고 행방불명)에 처분해야 했던 오타니 백작 등

끝이 안 좋았던 이야기를 보면서 문화재가 후세에도 잘 전해지고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위해서라도 제1차세계대전때처럼 국가 간 군사적 긴장이 강해지고 있는 현재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에 반대하고 다른 세상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때 단체여행 가면서 갔던 지역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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