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을 통해 진짜 중국을 만나다 - 13억의 리더 시진핑이 고전으로 말하는 중국의 현재와 미래
인민일보 평론부 지음, 김락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시진핑이 글을 쓸 때 참고한 여러 중국 고전의 구절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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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계급이란 무엇인가?》: 불평등의 핵심, 계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오해를 풀다
https://wspaper.org/m/25274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불평등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심화된 양극화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가 평평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팬데믹 하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도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급이다. 반면 많은 자본가들은 이 시기에 재산이 더 늘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 많은 좌파들도 갖가지 불평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서 계급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번에 출간된 《계급이란 무엇인가?》는 불평등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사회체제의 작동 원리 속에서 계급을 살펴본다. 무엇보다 계급에 대한 각종 표피적 접근과 혼란에서 벗어나 계급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저자 린지 저먼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하며 계급투쟁 속에서 계급·여성해방·개혁주의 문제를 다룬 많은 글과 책을 써 왔다. 난해한 학술 서적들과 달리, 이 책은 날카로운 폭로, 풍부한 역사적 사례, 다양한 쟁점을 담고 있고 마르크스주의의 접근법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책갈피, 2017)의 저자 김하영은 추천사에서 “계급 문제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쓴 쉽고 명쾌한 입문서”라고 했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분량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상당수 진보·좌파들은 ‘노동자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나 각성한 정치 의식이 있는 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계급이라고 본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현재(있는 그대로)의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구별”했다. 린지 저먼은 “노동계급에 속한 누군가가 보수당에 투표하고 공영주택을 사거나 주식을 약간 소유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노동자”라며 이 점을 놓치면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에 낙담해 그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부정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계급을 생산수단 지배 여부로 구분하지 않고 막스 베버처럼 다양한 경제적 요인으로 구분하거나, 사무·전문기술직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신중간계급’으로 분류하는 관점도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관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금속 노동자와 교사·간호사를 하나의 계급으로 보지 않는다. 이처럼 계급을 소득, 지위, 직종,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잘게 나누기 시작하면 결국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더는 이 사회를 양대 계급이 적대하는 사회로 보지 않게 된다.

반면 저자는 이런 피상적 구분을 거부하며, 착취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계급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착취 관계 속에서 발휘되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집단행동을 통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사유재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생산을 조직하는 사회를 확립”할 특별한 존재라고 봤다.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노동계급은 이런 집단적 힘으로 특별한 구실을 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보여 줬다.

파업 집회 중인 한진택배 노동자들 대공장 생산직 등 특정 부문만을 노동자라고 보면, 노동계급의 구성 변화를 노동계급의 쇠퇴로 잘못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새롭게 등장한 부문도 노동계급의 일부이고, 착취에 맞설 잠재력이 있음을 거듭 보여주고 있다ⓒ조승진

한편, 이 책은 1996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된 책임에도 현재 한국 노동운동 안에서 유행처럼 제기돼 온 주요 쟁점들, ‘제조업 육체 노동자들이 쇠퇴했는가’, ‘서비스 노동자 증가로 노동계급이 약화했는가’, ‘비정규직 증가로 노동계급이 분절되고 이질화됐는가’, ‘비정규직이 무한정 늘어나고 있는가’ 등에 답하고 있다. 20년 전 영국의 구체적 현실에 관한 자료와 사례들을 이용했음에도 시대에 뒤처지기는커녕 오히려 요즘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생산의 변화와 함께 변해 왔다. 20세기 후반 서비스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고용 확대, 사무직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노동계급의 구성이 변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구성 변화를 노동계급의 종말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저자는 비정규 노동(유연 노동)도 증가했지만 이것을 과장해선 안 된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와 통계 등으로 입증한다. 이 책의 편집자는 최신 통계를 병기했는데, 이를 보면 놀랍게도 저자가 20년 전에 진단한 추세가 현재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을 다룬 부분도 무척 흥미롭다. 저자는 자본가 계급을 생산수단 소유 여부뿐 아니라 기업을 관리·경영하는 사람들, 자본가 계급을 대신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모든 국가 기구의 고위 관료, 직업 정치인 등도 자본가 계급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착취에서는 모두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가 계급이 서로 경쟁하기에 분열이 벌어지고, 노동계급이 이를 이용해 단결해 싸운다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양대 계급(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낀 중간계급도 다룬다. 중간계급은 현대 사회에서 계급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상당수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변화하면서 점점 중간계급이 양산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신중간계급’으로 분류되는 전문직·기술직·관리직 종사자 중 많은 수가 프롤레타리아화해 왔음을 보여 준다. 중간계급은 단일하지 않고 양대 계급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이기에 더 단호한 쪽을 따르게 된다. 중간계급의 이런 특징을 잘 이해한다면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중간계급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차이를 흐리는 민중주의 전략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혁명적 정당

노동자는 자본주의 이윤 시스템과 사용자들이 가하는 압력 때문에 집단적 투쟁으로 떠밀리고 바로 이런 투쟁 속에서 관념이 바뀌고 사상이 발전한다. 한국 노동계급도 1987년 7~8월 대중파업뿐 아니라 지난 30년간 여러 집단적 투쟁 속에 의식과 조직을 성장시켰다. 노동조합은 그런 의식과 조직 발전의 산물이다.

이 책은 여기서 설명을 멈추지 않고 노동조합 투쟁을 통한 의식 변화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노동조합은 착취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물을 놓고 싸운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의 요구만이 아니라 사측의 사정도 살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많은 투쟁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불가피하지 않은데도 양보와 타협을 하는데 기층 노동자들도 이를 뛰어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과 실제 현실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려면 노동조합에서 더 나아가 혁명적 정당이 필요하다. 혁명적 정당은 노동계급 운동에 뿌리내리고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혁명적 정당은 운동 내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과거의 투쟁과 전통에서 발전시킨 이론과 사상을 전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발전하고 새로운 조직과 투쟁 형태를 만들어 내는 노동계급에게 배우기도 해야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계급 문제를 보려 할 때 아주 유용한 입문서다. 입문서라고 해서 깊이가 없을 것이란 선입견은 버려라. 계급 문제에 대한 최신 논쟁까지 다루기에 경험 있는 활동가들도 꼭 읽어 봐야 할 필독서다. 이 책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을 분석한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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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미얀마˝가 과연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였을까-안광획의 민플러스 기사에 대한 반론 

김재원(경상대 대학원 정치경제학과 박사수료. 프닉스 연구위원) 

안광획 4.27시대연구원 편집기획위원(이하 존칭 생략)은 민플러스 기사 ˝[긴급진단] 미얀마 사태에 대한 고찰 – 단순한 반독재 민주화 시위로만 볼 수 있는가?˝에서 아웅산 수치 정부 이전의 미얀마 군사독재 정권인 ˝사회주의 버마(미얀마의 영어 표현)˝를 서방에 비판적이고 중국정부와 우호적인 반제국주의 정권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아웅산 수치가 민주화운동 중에 서방의 지원을 받았고, 집권 후에도 대통령 위에 군림해서 서방에서조차 비판을 하는 등,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또한 군부와 마찬가지로 로항야 학살을 지지한 점을 지적하며, 사실상 군사쿠데타를 옹호했다.
이에 대해 나는 반론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군사독재 정권인 ˝사회주의 미얀마˝가 이상적인 사회주의 정부였다는 안광획의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회주의 버마˝ 정권은 군부가 지배계급으로 군림하고, 중국과 인도에 의존해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점에서 여느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군부 지도자의 자녀들이 특혜를 누리면서 동시에 생필품 가격을 인상하기까지 했다.
미얀마인들은 이러한 군부에 맞서서 1988년, 2007년에 대규모 저항을 벌였다. 비록 군부는 이를 진압했지만(아웅산 수치는 이를 묵인했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미얀마인들의 염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부는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NLD) 정부에 권력을 이양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주 KBS 시사프로그램 <특파윈보고 세계는 지금> 에서 인터뷰한 미얀마의 어느 대학 한국어과 학생이  ˝2007년에 10대를 군사정권을 경험했다면서 다시 군사정권이 돌아오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리고 안광획이 지적한대로 아웅산 수치가 ˝국가 고문˝으로서 미얀마의 대통령 위에 군림하고, 군부와 함께 미얀마인들과 달리 불교를 믿지 않는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탄압을 하며, ˝사회주의˝하고 거리가 먼 억압적인 중국정부와 우호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반독재 항쟁에 참가하는 미얀마인들이 아웅산 수치의 위선에 대해 무비판적인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웅산 수치에 비판적일 여러 소수민족 운동 단체들조차 군사쿠데타에 반대하고 있다.(《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일부 소수민족 단체들은 지금도 중국정부로부터 전략과 무기 지원을 받는다. 미얀마군 장성 상당수는 이들에 맞서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력을 키웠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줄이고 경제 자유화를 추진하고자 아웅산 수치와 타협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중국정부가 군부 쿠데타를 무조건 지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반갑게도 일부 미얀마인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소수민족 탄압에 침묵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안광획과 마찬가지로 미국 제국주의 등 서방이 진심으로 미얀마인들의 투쟁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광획과 달리 미얀마 군부를 사실상 두둔하는 중국 정부가 진정 ˝반제국주의 투쟁˝의 동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위구르족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나는 위구르족들을 ˝재교육˝ 미명하에 강제수용소에 가둘 정도로 소수민족의 저항을 두려워하는 중국 정부가 진정 미얀마 군부와 아웅산 수치의 로힝야족 학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로힝야족을 포함한 소수민족과 미얀마인들이 단결해서 군부에 맞서는 것을 중국정부는 더더욱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거주하는 중국의 주류 민족인 한족들이 위구르족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중국인들과 달리 신장 밖으로 이주는 물론 해외이주조차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억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서서 주류민족인 미얀마인과 소수민족의 연대 현상이 중국에서 발생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더욱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얀마 군사쿠데타에 맞서는 총파업과 더불어 이러한 소수민족과 미얀마족의 연대야말로 단순히 미얀마 민주주의 향상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한족 우월주의로 억압받는 소수민족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중국정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19를 빌미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이주민과 난민, 유색인종 탄압을 벌이는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정부에 맞서는 많은 세계 민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반제국주의˝적인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미얀마인들의 군부쿠데타에 맞서는 투쟁을 진심으로 지지하며 승리하기를 원한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raw_pg.aspx?Gb=3&CNTN_CD=A000272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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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414436018983036/posts/1122271918199439/

페이스북 계정 《도서출판 책갈피》 인용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로 불린 혁명적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작고한 지도자 토니 클리프가 그 정수를 뽑아 알기 쉽게 설명한 입문서를 소개합니다.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개혁주의자들에 맞서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 즉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전통을 옹호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투쟁을 소개하며 자본주의의 근본 변혁을 위한 전망을 제시합니다.

3월 5일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일을 맞아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추천합니다~

자세한 책 소개 보기와 구입 안내
bit.ly/알라딘_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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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룩셈부르크 #토니클리프 #마르크스주의 #혁명적사회주의 #개혁이냐혁명이냐 #로자룩셈부르크의사상 #도서출판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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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ilmokin.org/board_LiTX99/13955

2013년 말에 읽고 노동자연대에 서평으로 투고했다가 게재되지 않은 글입니다. 올해 3월에 길목에 보냈습니다. 그래서 7년의 시차가 있지만(서평을 썼을 때, 베이징에서 위구르족에 의한 차량폭발 테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서평 내용과 책 분석은 유효한 것 같습니다.
=====
조합원의 책 소개 : 중국 신장 위구르족과 한족의 갈등 | 오홍엽 | 친디루스
 
 
지난 10월 말 최근에 출범한 시진핑 지도부의 정책을 결정하는 중국공산당 3중전회가 열리기 전에 위구르족에 의한 천안문 차량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의 배후에 신장 위구르족 독립운동세력이 있다고 보고, 위구르족들이 북경에 들어오는 즉시, 휴대폰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럴 때 오홍엽의 ‘중국 신장 위구르족과 한족의 갈등’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중국인으로서 중국의 화남이공대학을 졸업하고, ‘신장위구르족 문제’를 주제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가 이 책을 출판할 즈음에 2009년 광동성의 한 완구 기업에서 “위구르족 노동자가 한족 노동자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위구르족 노동자 2명’이 죽고, 많은 위구르족 노동자들이 부상한 것에 대해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이 시위는 중국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100여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과 한족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격렬했다. 저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소수민족 관련 서적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고자 자신의 석사학위 졸업논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중국정부와 중국 소수민족 연구자, 신문의 자료를 바탕으로 신장위구르족과 한족 갈등의 오랜 역사와 현재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상황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낙후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경제와 민족 문제 해결에 대한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비록 사막이 많지만, 석유, 천연가스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 그리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투르크족들의 국가,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인접 국가들 때문에 대외무역도 활발하며, 오아시스 지형에 따른 아름다운 관광자원으로 인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중국 정부도 먼저 개혁개방을 시작한 상하이, 북경, 광둥성 등 동부지역이 발전하면서 벌어진 서부지역의 경제 격차문제 해결하기 위해 서부 대개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일본 등 서방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대외무역도 계속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정책이 서부가 개혁개방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한족들이 많은 지역이란 점에서 민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은 동부에 비해 사회 간접시설이 낙후하였다는 점과 중국 정부가 연방제 국가가 아닌 단일제 국가로서 에너지자원을 국가 혹은 집체소유하고 있고, 세금마저 소비세와 소득세는 모두 중앙이 가져가기 때문에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경제발전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재정지출의 60%를 중앙정부 재정에 의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금사발을 들고 굶주리는 부유한 빈곤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그마한 경제발전 혜택마저 대부분 1950~60년대 중국 정부의 격려로 신장에 이주한 도시 거주 한족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2003년도 각국 인권보고서>는 따르면, 서부개발프로젝트 과정에서 소수민족은 건축업에 종사할 자격이 없으며, 대부분 사천성과 기타 지역에서 뽑아온 한족들로 노동자들이 충당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한 경제학자는 “신장에서 한족 인구가 1% 증가하면 1인당 소득은 44위안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자치구’ 발전을 위해 집중하고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 등 기술 분야의 노동자들은 전부 한족이다. 
 
반면에 위구르족들은 청나라 때에 가서야 중국 정부의 영역에 편입되어서 중국에 대한 소속감이 약하다. 게다가 그들은 청나라가 망한 후에는 신장을 지배한 한족 군벌과 국민당에 반대해서 격렬한 독립운동을 펼쳤고, 영국과 소련의 지원 하에 ‘동투르키스탄이슬람공화국’, ‘동투르키스탄인민공화국’을 세운 전통이 있다.(그래서 중국정부는 ‘동투르키스탄’이란 단어를 ‘독립’을 주장하는 말이라고 여겨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초기 중국 정부가 신장지역을 점령했을 때만 해도, 위구르족들은 ‘한족 군벌’의 오랜 횡포에서 해방되었다고 여겼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슬람교’를 탄압하지 않고, 봉건적 사회제도를 개선한 민주개혁을 펼친 것 때문에 정부를 지지했었다. 일부 위구르족 민족 간부들은 소련이 ‘카자흐스탄’처럼 중앙아시아의 각 민족이 다수인 지역에 그 민족 이름의 자치공화국을 만들었던 것처럼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독자적인 공화국인 ‘신장위구르스탄자치공화국’을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금의 몽골공화국인 외몽골이 소련의 지원으로 독립한 것과 내몽골이 중일전쟁 당시 일본의 지원을 받아서 독립하려는 시도를 보고, 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민족자결론’을 폐기하고, 항일전쟁에 함께하는 “민족단결의 전제하에” ‘자치’를 보장하는 ‘민족자치론’으로 입장을 바꾼 후였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이러한 주장을 한 ‘위구르족 민족 간부’들이 ‘공산당원’임에도 불구하고, ‘분리주의자’로 낙인찍고 탄압했다. 이것을 보고 위구르족들은 중국 정부에 대해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 정부가 신장을 점령하기 전부터 신장지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소련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런 위구르족 독립 정서를 이용했다. 그 결과, 이닝 주재 소련 영사관의 “선동”으로 이리 지역과 타청 지역의 위구르족 5~6만 명이 가축과 중국 정부 문서를 훔치고, 소련으로 집단 월경하는 ‘이타사건’과 이닝 주민 2,000여 명이 참가한 정치적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소련은 위구르족이 만든 ‘동투르키스탄인민혁명당’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조직은 신장 전 지역에 조직을 만들려고 했으나, 중국 정부에 진압당했다. 이 시기에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신장 위구르족이 믿는 이슬람교에 대한 탄압이 가장 심했던 시기로 많은 모스크가 파괴되었다. 
 
현재 위구르족들은 한족들이 잘살지 않는 남부 신장지역 농촌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면화수입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면화수입조차 화학비료, 종자와 같은 원자재 가격은 해마다 상승하는 반면에 면화가격은 최저 보호 가격제도가 없어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태환경이 악화하면서 경작지가 감소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의 문자개혁 실패로 위구르족 청소년 200여 만 명이 한자도 위구르문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 상태가 되어버리는 문제와 사회적으로 “이슬람종교가 민족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편견을 경험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많은 유랑아가 신장위구르족에서 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구르족들이 믿을 수 있는 안식처는 그들의 신앙인 이슬람교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마오쩌둥이 생애 마지막 10년에 펼친 문화대혁명에 대해 잘못됐음을 반성하면서 종교 완화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세계에서 모스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되었다. 특히 과거 동투르키스탄이슬람공화국의 수도였으며, 위구르족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남부 신장지역의 중심지인 카스는 문화대혁명 이전보다 더 많은 모스크가 생겼다. 이때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이슬람국가들이 코란 등 종교용품을 지원했으며, 중국 정부가 석방한 위구르족 독립운동가들이 대학 등 여러 교육기관에서 ‘독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 결과, 일부 학교에서는 공공연하게 “이슬람교”를 가르치는 현상이 생겨서 ‘비이슬람교도’들은 살아남기 힘든 지경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동족에게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을 설명해야 하는 위구르족 민족 간부들은 동족으로부터는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무시당하다가, ‘집단 탈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거기에 ‘알 카에다’와 같은 중국 외부의 이슬람주의조직들이 ‘독립’을 염원하는 신장위구르족 청년들을 지지하면서, 신장위구르족 독립운동가들이 이슬람주의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2009년 위구르족 저항에 대해 이슬람권에 대해 이 문제를 잘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서방 제국주의에 의해 세력이 약해지던 오스만투르크 제국 말기에 시작되어 ‘모든 투르크족의 단결’을 주장하는 ‘범투르크주의’도 현재 신장위구르족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터키 정부가 2009년 위구르족 저항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진압을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교육기관에서 중국어와 위구르어 교육을 강화하면서, 이슬람주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상하이협력기구’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면서,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초기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만 해도, ‘범투르크주의’와 ‘이슬람주의’적 언어를 구사하던 중앙아시아 국가 지도자들도 독립 후에 증가하는 빈부격차에 따른 민중들이 ‘이슬람주의’를 기치로 저항에 나설까봐 두려워서 중국 정부의 ‘반테러 정책’에 협조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거주하는 평범한 한족들 역시 어떻게 보면 중국 정부의 희생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점령한 이후에 한족들이 황무지 개발과 소련의 침입과 위구르족의 독립운동을 막는 역할을 하는 신장생산건설병단의 설립 등을 위해 신장지역에 대규모로 이주했다.
 
그 결과, 점령 당시 6%에 불과하던 한족 인구가 40%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수도 우루무치에서는 절대다수 민족이 되었다. 그 결과, 한족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위구르족 다음으로 많은 민족이 되었으며, 지역적으로 북부 신장에 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신장위구르자치구 자체가 사실상 남부 신장의 위구르족, 북부 신장의 한족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한족 이주민들에 대해 “고향으로의 이주를 허락하지 않는” 강경책을 펼쳤다. 나중에 자격을 갖춘 일부는 상해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였지만 대부분은 신장에 남아 있어야 했고 자녀 한 명은 상해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타협책을 마련했다. 1990년대에는 토지임대료와 세금을 낮추어 서부로 자본과 인력을 끌어들이는 정책으로 신장지역으로의 한족 유입을 유도했다.
 
이 사실은 다수 민족인 한족 역시 중국 정부의 ‘식민 정책‘의 희생자라는 점을 잘 보여준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한족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자 가장 경제적으로 발달한 동부지역의 한족 노동자들이 정부에 맞서는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신장 거주 한족들 역시 ‘자신들의 자유로운 귀환’을 위해서라도 소극적이더라도 신장위구르족의 독립운동 지지가 자신들의 고향으로의 귀환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장지역에서 한족들이 소수민족인 위구르족보다 좀더 나은 조건이라 해도, 정치적 억압을 소수의 공산당 간부로부터 당하고 있다는 점은 위구르족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점에 대해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신장 위구르족과 한족의 갈등은 위구르족 분리주의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폭동과 진압이 일상사처럼 반복되는 악순환만 지속할 뿐 아무런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이나 위구르족이나 모두에게 딜레마이다.”라고 결말을 내고 있다. 한족과 위구르족의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드러난다.
 
아무래도 저자 자신이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이고,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사람이 ‘북한 인권 전문가‘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중경 목사여서 그런지, 위구르족의 독립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고, 이슬람 신앙에 대해 적대적인 것 같다.
 
가령, 그는 문화대혁명 이후에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이슬람교가 부활한 것에 대해 ˝극단적인˝ 이슬람신앙을 보여준다고 묘사한다. 이 점은 중국 정부가 ‘이슬람주의’를 빌미로 위구르족을 탄압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비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오히려 신장위구르족들이 교육, 경제적 측면에서 완전히 한족(그리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보는 중국 정부)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사상으로서 이슬람주의를 택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한족 이주 정책이 북부 신장 소수민족에 대한 ‘민족 동화 정책’이라는 “비난받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도, 한편, 한족 인구의 증가로 신장지역의 전반적인 경제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족을 신장으로 이주시켰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같이하는 점도 아쉽다.
 
또한, 연방국으로서 각 주가 독립적인 권한 가진 미국조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국가 자본주의적인 정책을 펼친 점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자치구 정부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세금 제도를 바꿔서 혜택”을 준다고 해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경제문제는 물론 민족갈등도 해결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저자도 잠깐 언급했듯이, 신장위구르족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점령된 티베트족과의 독립을 위한 협력을 하는 것이 ‘자살 폭탄 테러’와 같은 소수의 영웅적인 ‘전술’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1989년 천안문 항쟁에 대해 신장위구르족 대학생들이 연대시위를 하다가, 동시에 자신들의 ‘자결권’을 주장했던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것처럼, 힘들더라도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독립’을 주장하는 운동가들이 교수로 채용된 신장위구르자치구 최고 교육기관인 ‘신장대학’과 여러 교육기관 등을 감시하는 이유는 이러한 대중운동을 막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족 노동자들이 신장위구르족이 적이 아니라, 중국 정부에 맞서 싸우는 ‘동지’임을 인식하고,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저자가 ˝대안˝이 없다고 말한 한족과 소수민족의 갈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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