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갈등을 보면서, 아르메니아 여행 중 만난 아르메니아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친척이 카라바흐 문제가 터지기 전에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소련군으로 근무했다면서, ˝카라바흐 문제는 우리가 일으킨 게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는데, 소련 시절에 단일 화폐 유로와 비슷한 ˝루블˝이 쓰였고, 국경 통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스탈린의 국경획정이 만든 비극이 이번 사태이기에 그 말을 지지할 수 없다. 하지만 갈등이 여전히 계속되는 게 안타깝다. 그런 갈등은 3년 전에 아르메니아 장기집권한 총리(아르메니아 분리파 기독교인들이 세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세운 ˝야르차흐 공화국˝의 지도자이기도 했다.)를 몰아낸 아르메니아인들의 시위와 같은 대중 시위를 억압하는 것이기에 더욱 지지할 수 없다.
10월 6일에 쓴 글
아르메니아 군대가 아제르바이잔 간자시에도 포격을 했다니...
간자시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 제국에 억압당했지만 볼셰비키에 반대했던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자들이 세웠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러시아 혁명 영향 때문인지 이슬람교가 우세했음에도 여성 참정권도 인정받은 곳이다.
한편, 볼셰비키를 지지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공화국 수도는 러시아 노동자들과 아르메니아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한 석유도시 바쿠(중동 석유 채취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석유가 많이 채취되었고, 지금도 소형 석유채취 장비로도 석유 채취가 가능한 지역이다.)에 있었고, 아르메니아 볼셰비키 지도자가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의 주요 지도자였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는 영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공격으로 바쿠가 함락될 때 탈출하지 못해서 붙잡혀서 처형당했다.
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v=4FSlo3Y8a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