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김하영 지음 / 책벌레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북쪽이 일으킨 북풍은 남쪽이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북풍‘을 요청˝해 왔음이 드러났다.
1997년 대선 때 구여권과 안기부는 이회창을 당선시키기 위해 활약했다. 이회창이 가장 ˝윗선˝인 셈이다. 권영해는 지난해 3월 한나라당 대표위원에 발탁된 이회창과 비밀 회동을 했다. 이 비밀 회동은 정형근이 주선한 것인데, 그는 ˝오익제 편지 기본 대응 계획˝의 주요 협력 대상자였다. 이회창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8월, 안기부는 남북이산가족상봉과 이회창 방북을 추진했다.
첫 주자는 청와대가 보낸 김우중. 그는 9월 13일 극비 방북해 김정일을 만나려다 실패했다. 두 번째 주자는 이명박. 그는 김정일의 매제인 북한 노동당 조직 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을 만났으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나중에 이명박은 장성택과 사업을 논의한 것 자체는 시인했다. 세번째 주자인 정재문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안병수를 만나 협조를 구했다. ˝흑금성˝ 박채서의 12월 9일치 보고서에는 정재문이 ˝36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북한측 인사에게 전달˝했다고 적혀 있다. 10월에는 안기부 공작원이 직접 북한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전금철을 만나 ˝김대중에게 타격을 줄 만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12월 초에도 박채서가 북한 관계자를 만나 ˝김대중에게 치명타를 가할 사진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오익제 편지나 비디오테이프는 북한의 도움 없이는 안기부 손에 들어올 수 없는 자료들이었다.
남북 정권이 서로 적대적이기만 하다고 여겨 온 사람들 - 남한에 반대해 북한을 지지해 온 사람들이든 북한에 반대해 남한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든 - 에게 북풍 공작의 폭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남북 지배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내부의 적을 단속하기 위해 사용해 온 수단이었다. 남북 지배자들은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를 지난 50년 동안 유지해 왔다.
(다함께 운영위원 김하영이 쓴 책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189-190쪽에서 인용)

"북쪽이 일으킨 북풍은 남쪽이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북풍‘을 요청"해 왔음이 드러났다.
1997년 대선 때 구여권과 안기부는 이회창을 당선시키기 위해 활약했다. 이회창이 가장 "윗선"인 셈이다. 권영해는 지난해 3월 한나라당 대표위원에 발탁된 이회창과 비밀 회동을 했다. 이 비밀 회동은 정형근이 주선한 것인데, 그는 "오익제 편지 기본 대응 계획"의 주요 협력 대상자였다. 이회창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8월, 안기부는 남북이산가족상봉과 이회창 방북을 추진했다.
첫 주자는 청와대가 보낸 김우중. 그는 9월 13일 극비 방북해 김정일을 만나려다 실패했다. 두 번째 주자는 이명박. 그는 김정일의 매제인 북한 노동당 조직 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을 만났으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나중에 이명박은 장성택과 사업을 논의한 것 자체는 시인했다. 세번째 주자인 정재문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안병수를 만나 협조를 구했다. "흑금성" 박채서의 12월 9일치 보고서에는 정재문이 "36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북한측 인사에게 전달"했다고 적혀 있다. 10월에는 안기부 공작원이 직접 북한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전금철을 만나 "김대중에게 타격을 줄 만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12월 초에도 박채서가 북한 관계자를 만나 "김대중에게 치명타를 가할 사진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오익제 편지나 비디오테이프는 북한의 도움 없이는 안기부 손에 들어올 수 없는 자료들이었다.
남북 정권이 서로 적대적이기만 하다고 여겨 온 사람들 - 남한에 반대해 북한을 지지해 온 사람들이든 북한에 반대해 남한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든 - 에게 북풍 공작의 폭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남북 지배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내부의 적을 단속하기 위해 사용해 온 수단이었다. 남북 지배자들은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를 지난 50년 동안 유지해 왔다. - P189

"북쪽이 일으킨 북풍은 남쪽이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북풍‘을 요청"해 왔음이 드러났다.
1997년 대선 때 구여권과 안기부는 이회창을 당선시키기 위해 활약했다. 이회창이 가장 "윗선"인 셈이다. 권영해는 지난해 3월 한나라당 대표위원에 발탁된 이회창과 비밀 회동을 했다. 이 비밀 회동은 정형근이 주선한 것인데, 그는 "오익제 편지 기본 대응 계획"의 주요 협력 대상자였다. 이회창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8월, 안기부는 남북이산가족상봉과 이회창 방북을 추진했다.
첫 주자는 청와대가 보낸 김우중. 그는 9월 13일 극비 방북해 김정일을 만나려다 실패했다. 두 번째 주자는 이명박. 그는 김정일의 매제인 북한 노동당 조직 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을 만났으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나중에 이명박은 장성택과 사업을 논의한 것 자체는 시인했다. 세번째 주자인 정재문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안병수를 만나 협조를 구했다. "흑금성" 박채서의 12월 9일치 보고서에는 정재문이 "36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북한측 인사에게 전달"했다고 적혀 있다. 10월에는 안기부 공작원이 직접 북한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전금철을 만나 "김대중에게 타격을 줄 만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12월 초에도 박채서가 북한 관계자를 만나 "김대중에게 치명타를 가할 사진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오익제 편지나 비디오테이프는 북한의 도움 없이는 안기부 손에 들어올 수 없는 자료들이었다.
남북 정권이 서로 적대적이기만 하다고 여겨 온 사람들 - 남한에 반대해 북한을 지지해 온 사람들이든 북한에 반대해 남한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든 - 에게 북풍 공작의 폭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남북 지배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내부의 적을 단속하기 위해 사용해 온 수단이었다. 남북 지배자들은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를 지난 50년 동안 유지해 왔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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