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징어 게임〉 ─ 자본주의 게임,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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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역대 최대 흥행작이 됐다. 전 세계 수억 명이 불과 3주 만에 이 시리즈를 봤다.

대본 작업은 원래 2008년 경제 공황 중에 시작됐지만 이 드라마는 거의 10년 동안 제작사를 구하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은 생존 게임 장르의 드라마로, 자본주의와 경쟁, 계급을 다루고 있다.

부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456억 원의 상금을 노리고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다. 그런데 탈락의 대가는 죽음이고, 부자들이 게임의 진짜 주인이다.

물론, 참가자의 과반수가 원한다면 게임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처지가 절박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실상 선택권은 없는 셈이다.

노동자 성기훈(이정재 분), 탈북민 강새벽(정호영 분), 이주노동자 압둘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분)도 ‘오징어 게임’을 그만뒀다가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불공정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로요. 불평등이 심해지고 경쟁이 심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계의 가장자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전 세계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이 시리즈가 묘사하는 인물들의 곤경에 어떻게든 연결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황동혁 감독)

주인공 성기훈은 극중 “드래곤 모터스” 노조의 점거파업(2009년 쌍용자동차 점거 파업과 매우 닮았다)에 참가했던 노동자다. 점거파업 도중 희망퇴직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파업에서 그랬던 사람들은 끝까지 남아 싸운 해고자들보다 죄책감과 고립감 등 정신적 고통이 더 심했다고 한다. 자살하거나 돌연사한 쌍용차 노동자의 다수가 이들이었다. 한 아버지는 선처해 준다는 말만 믿고 아들을 설득해 점거파업을 그만두게 했는데, 나중에 희망퇴직을 한 아들을 보고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10월 12일자 〈중앙일보〉 칼럼 ‘목숨 걸고 핥은 달고나…456번 성기훈씨, 행복합니까?‘는 〈오징어 게임〉의 화제성을 이용하는 데 급급했다. 노동계급의 고통과 정서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없다. 그러면 풍자가 아니라 조롱이 된다.

아쉽지만 〈오징어 게임〉에서 이 위대하고 가슴 아픈 노동자 투쟁과 같은, 야만에 맞선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도전을 볼 수는 없다.

이런 경우 무엇을 얻어갈지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시청자 개인의 세계관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깡패들

성기훈의 팀과 대립하는 팀은 깡패(조직 폭력배)가 주축인 팀이다.

전문가(범죄 조직원)가 거기 있고 선동하고 지휘한다. 주최측은 그걸 계산하고 리얼리티 TV쇼에서 흔히 그렇게 하듯이 이용한다(주최측 대사에도 나온다).

주최측은 갈등을 유발하고 조작한다. 반면, 성기훈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을 독려하고 조직한다.

깡패, 범죄 조직의 폭력배는 자본주의적 존재다.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든 체제 유지에 기능한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노조와 파업을 파괴하고 운동을 공격하면서 성장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마피아, 야쿠자, 삼합회, 깡패가 전쟁 말기에 부상한 좌파와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데 동원됐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대중운동이 크고 강력하면 범죄 조직(마피아)은 감히 정면에서 그 운동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이 운동의 지도자를 암살해도 장례식은 곧 마피아 반대 시위로 변했다. 오히려 하층계급 출신의 일부 조직원이 운동에 가담했을 정도다.

파리대왕

생존 게임 장르의 기원은 소설 《파리대왕》(1954)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들이 섬과 야생에서 생존 경쟁을 벌인다는 설정은 〈배틀로얄〉(2000)과 〈헝거게임〉(2012)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리얼리티’ 서바이벌 TV쇼도 갇힌 공간에서 진행되는데 특히 섬을 배경으로 할 때가 많다.

《파리대왕》은 금세 청소년 필독서가 되었고 후에 작가 윌리엄 골딩은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는 인간 본성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썼고, 말했다.

“우리가 깨끗한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망쳐 놓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벌이 꿀을 생산하는 것처럼 인간은 악을 생산한다.

“나는 언제나 나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본래 그런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의 전제는 인간이란 제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두면 짐승이나 야만인처럼 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거짓말과 협잡, 배신과 편 가르기, 적대감 유발하기 등을 제작진이 유도하고 조작했다는 폭로들이 나왔다.

과연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인가?

흔하고 지배적인 입장은 사실 지배자들의 입장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 본성

환경 파괴, 기후 위기, 여성 차별, 인종차별, 파시즘, 불평등, 전쟁, 학대, 범죄, 실업, 가난, 부패, 독재, 자본주의에 대한 대답은 하나다. “인간 본성이 원래 그래.”

본성이 문제면 변화의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변할 수 없어’, ‘세상도 변할 수 없어.’ 따라서 ‘우리의 통제(사실은 지배)를 받아야 해.’

세상 모든 지배계급에게 아름다운 이론 아닌가.

그러나 자본가의 공장과 조선소와 발전소는 노동자들이 협동심을 발휘하는 덕분에 돌아간다. 노동자들이 서로의 뒤를 봐주는 덕분에 죽음의 공장에서도 산재가 덜 나온다. 간호사들이 스스로를 혹사해 팬데믹에서 우리를 구한 게 그들의 이기심 때문일까? 부모가 자녀를 다 버리고 자기만 생각한다면 자본주의가 하루라도 굴러갈 수 있을까?

1963년 이래 700여 건의 재난 현장을 연구한 결과(델라웨어대학 재난연구센터, 2006)에 따르면, 재난이 벌어질 때 살인·강도·강간 등 범죄율은 감소하고 사람들이 물품과 서비스를 분배하는 등 이타적 행동은 증가했다.

팬데믹 재난 상황에도 지난해에 거의 모든 개인 기부가 늘었다. 자선단체가 모은 기부액은 사상 최대이거나 평년보다 늘었다. 서울시가 모은 개인 기부액도 5배나 늘었다. 그에 비해 기업의 기부액은 1.4배밖에 늘지 않았다. 심지어 액수 자체도 개인 기부액이 더 증가했다.

자본주의의 일상은 이렇듯 절망과 희망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수많은 죽음과 아픔, 울분과 슬픔을 갚을 길은 오직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혁명 외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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