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과 불평등 ─ 왜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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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월 14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주최 온라인 토론회 ‘청년과 불평등 — 왜 청년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가?’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보강한 것이다.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 전 세계 청년 실업자는 6900만 명이었으나 2009년 75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경제 위기 여파로 2011년 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저항이 벌어졌다. 튀니지에서 가난한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작된 튀니지 혁명이 이집트 혁명으로 이어졌고, 아랍 전역의 혁명으로 확산됐다. 미국에서도 청년들이 일자리, 교육, 의료를 요구하며 월가를 점거했고, 스페인에서도 청년들이 주축이 돼 ‘분노한 사람들’ 광장 점거 운동이 벌어졌다. 이 세계적 저항을 촉발한 중요한 불만이 바로 청년층의 실업과 빈곤이었다.

역동적으로 성장해 오던 한국 자본주의도 1997년과 2008년에 큰 위기를 겪었고,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1970~1980년대 한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노동력을 빨아들이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일자리 창출도 줄어들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고용 감소는 생산성 증가의 결과이기도 하다. 10억 원 재화를 생산할 때 유발되는 취업자 수(취업유발계수)는 2000년 평균 26명에서 2019년에는 10명으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런 주기적 경제 위기와 실업 확대는 자본주의에 붙박여 있는 풍토병이다. 그런데 역대 우파 정부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을 대놓고 비난하며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오히려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은 2020년에 신규 채용이 크게 줄었다(6000명 감소). 노동 인력이 넘쳐나서 그럴까? 전혀 아니다. 공무원들은 인력 부족으로 과로사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 보건소 공무원이 자살했는데 그는 일주일에 70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그의 동료들은 한 달에 초과근무만 100시간씩 했다.

심화된 불평등

평범한 청년들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이 별로 없다고 느낀다. 특히 아무리 ‘노오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격차, 불평등 때문에 절망한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빠르게 악화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가 내놓은 2016년 통계를 보면,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43퍼센트를, 전체 부의 65.7퍼센트를 차지했다. 부와 특권은 상속으로 대물림된다.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30대 하위 20퍼센트의 자산이 2000만 원인인데 상위 20퍼센트는 8억 원이나 됐다.

불평등은 특정 유형의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작동 방식의 결과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착취 체제 때문에 한쪽에는 부가 쌓이고 다른 한쪽에는 빈곤이 쌓인다. 이윤율 회복을 위해 취해진 위기 대응 조처들(부자 감세, 규제 완화, 복지 삭감 등)이 빈부격차를 늘린 것만 봐도 자본주의 논리가 불평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일부 언론은 MZ세대가 기존 노동조합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단결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종종 보도한다. 얼마 전 항의 행동을 벌인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총과 거리를 둔 것이 그 사례로 언급된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MZ세대의 태도는 일면적이고 않고 불균등하다. 많은 청년이 박근혜 퇴진 운동 이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일부 청년이 기존 노동조합에 대해 불신을 드러낸 일은 국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여러 번 있었다. 예컨대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그런 경향이 강했다.

사실 청년들의 불신은 기존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취한 부문주의적 태도나 배신 등에 대한 반발 성격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타협과 외면은 결국 기존 노동자들의 조건에도 하락 압박을 가하고, 청년과 노동조합 사이에 반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둘 모두에게 해롭다.

또한, 지난 몇 년 사이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주요 세력들이 청년층이 민감하게 여긴 쟁점들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청년들이 크게 분노한 조국 사태에서 민주노총은 침묵했다.

노동조합이 청년 문제를 중시하고 이들을 조직하려 애쓰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냐 아니냐 같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정당한 분노를 적극 지지하고, 이들의 저항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속에서 신임을 얻는 것이다. 청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러 쟁점과 운동, 예컨대 기후 운동이나 여러 차별 반대 운동에도 노동조합이 자신의 조합원에게 참가를 적극 호소하는 게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부문주의적인 성격에 맞서 논쟁하고 토론하며 노동조합이 청년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혁명적 좌파의 몫일 것이다.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

오늘날 평범한 청년들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실업과 일자리 불안정, 그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 심화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물려받은 지구는 심각한 기후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에 도전해야 한다. 부를 복지 확대에 쓰도록 요구하고, 군비 증강 대신 괜찮은 일자리를 마련하라고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광범한 투쟁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도 자본주의와 다른 근본적인 변화 없이 저지할 수 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 운동에 나선 청년들은 급진화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그러나 이런 저항이 성공하려면 특정 세대, 특정 부문만 참여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청년과 중장년 노동계급이 단결해야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편, 노동자주의 경향이 있는 일부 좌파는 소위 ‘상위권’ 대학 청년들의 불만과 저항을 부잣집 엘리트의 보수적 행동쯤으로 싸잡아 취급하기도 한다. 조국 사태 때 이런 문제가 얼핏 드러났다. 그러면서 ‘상위권’ 대학의 청년이 아니라 지방대 출신의 청년이 급진적 잠재력이 더 크다며 이 둘을 대립시킨다.

그러나 ‘상위권’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상층 계급 출신도 아니고, 부모의 계급이나 의식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도 아니다.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학생은 특정 계급이라고 볼 수 없고, 종종 이데올로기와 사회 부조리에 민감하다. ‘상위권’ 대학 출신 청년 중에도 급진화하고 노동계급의 규율을 받아들이면서 노동계급의 운동에 헌신하게 된 사람도 많다.

이처럼 출신 대학이나 사는 곳 등을 기준으로 청년들을 구분해 서로 대립시키는 관점은 투쟁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해롭다.

청년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국가가 재원을 쏟아부어 청년 일자리와 복지를 늘리라고 주장해야 하고, 이런 개혁이 가능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저항 속에서 청년과 노동자들이 단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방식의 복지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를 충분히 늘리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혁명적 좌파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자본주의와 연결시키고, 그들의 반감과 저항이 반자본주의로 향하도록 애써야 한다.

청년·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청중 토론)

“저는 노동자연대TV를 애청하는 대학생입니다. 청년의 주거권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청년들의 주거가 경제 위기와 함께 매우 열악해져 왔습니다. 청년의 평균 주거 면적은 가뜩이나 비좁은데 지난 10년 동안 2평이나 줄었습니다[2008년 평균 약 11평에서 2018년 8.6평]. 청년의 전체 소득에서 임대료 비중은 지난 수년간 계속 올랐고, 최저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택에 사는 청년 가구가 전체 평균의 2배에 달합니다.

공공임대주택이 대안이 돼야겠지만, 현재 공공임대주택은 물량이 너무 적고, 면적도 코딱지 만합니다. 위치나 경쟁률 등을 따져 보면, 사실상 시장의 여느 부동산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노동자 투쟁이 공정 담론을 넘어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은 극심한 계급적 불만이 대중 항쟁으로 얼마든지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새롭게 투쟁에 뛰어드는 청년과 노동자들의 쟁점을 살펴서, 운동이 벌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 20대 대학생

“저는 얼마 전까지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였다가 지금은 실업자입니다.

청년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개인의 탓이 아닙니다. 개별적 노력이나 스펙 쌓기를 통해서 일부는 좀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승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청년 실업이나, 소외, 고통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2년 동안 일하면 1300만원 목돈을 더 얹어 주는 정부의 청년 정책인 청년내일채용공제를 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그간 적립된 돈을 도로 가져가서 [2년 동안] 꼼짝없이 노예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청년내일채용공제를 빌미로 사장은 저임금을 정당화했습니다.

청년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 사장들에게 괴롭힘 당한 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인들 중에서도 직장 스트레스, 취업 준비, 주거 문제 등으로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상당합니다.

오죽하면 청년 노동자인 우울증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은 부류의 책이 청년층에서 인기를 엄청 끌었겠습니까?

정부의 청년 정책에만 기댄다면 이런 상황은 되풀이될 것입니다. 청년 불평등 문제는 정규직, 비정규직, 청년, 기성세대가 단결한 투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청년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 20대 청년입니다. 청년들의 자살과 자본주의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최근 발표된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이 높은데 그중에서도 20대 자살률 증가 폭이 높습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이 매우 큽니다. 이는 코로나 이후 타격을 받은 음식숙박업, 도소매 서비스업, 교육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던 2030 여성들의 실업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엥겔스 말을 인용하자면, 청년들은 “어떤 도피 수단도 없는 처참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죠. 청년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에게 지원과 복지를 늘리라고 주장하면서도, 자본주의 자체가 경제 위기를 내재하고 있고 코로나 같은 심각한 전염병을 만들면서 사람들을 빈곤과 고립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감을 얻고 삶의 희망을 느꼈던 역사도 언급하면서 투쟁을 통해 함께 자본주의를 끝장내자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 최근 카페에서 일하다 해고된 청년

이 밖에도 노동계급 기성세대를 옹호하며 세대가 아니라 계급적 단결이 중요하다는 의견, 이재명과 심상정의 청년 정책의 의의와 한계, 문재인 정부가 키운 교육 불평등 폭로 등 여러 발언이 있었다. 노동자연대TV 유튜브에서 생생한 청중 토론을 포함한 토론회 전체 영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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