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이십일년 시월 십팔일 ::: 2021 10 18 :::


      아프다는 것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1593

사람은 누구나 몸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병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몸이 아파서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 없다면 처량하다. 한때는 맘껏 걷고 달렸는데 하루아침에 그럴 수 없다면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사람에게 다른 시야를 열어준다. 『아픈 몸을 살다』를 쓴 아서 프랭크는 질병이 삶을 전체로서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삶을 넓은 시각으로 조망해내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앓는 질병의 정체를 모른다면 이런 통찰은 어렵다.
아픔에 이름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병명을 부를 수 없다면 질병을 받아들일 수도, 삶을 조망하기도 어렵다. 나는 간혹 희귀한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자기 병명을 알아냈을 때 슬픔 가운데도 일종의 안도감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철학자 니체는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었다. 두통을 포함한 만성적 통증이었다. 니체는 자신의 병을 명명했다.
“나는 내 통증에 이름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개‘라고 부른다.”
통증이 충직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눈에 띄는 개의 특질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병명을 아는 것은 나름의 수확이다. 병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면 병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내가 질병의 주인으로서 병을 명명할 수 있다면 호령할 수도 있다. 병을 내칠 힘이 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는 <병든 바쿠스>를 그렸다. 바쿠스의 안색은 좋지 않다. 입술과 눈두덩은 푸르스름하고 볼은 창백하다. 그는 나뭇잎 화환을 머리에 두르고 포도송이를 들고 있다. 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이다. 원래 넘치는 생명력으로 쾌락을 누리는 신이어야 맞지만, 카라바조의 바쿠스는 아픈 신이다. 아프지만 그는 미소 짓고 있다. 심지어 고개를 살짝 틀어 감상자에게 교태를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바쿠스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고아였던 카라바조는 밀라노에서 미술을 배우고 로마에 정착했다. 스물두 살에 화가는 심각한 병이 들었다. 말라리아와 간 질환을 앓았다. 그는 극빈자 구호 병원에 입원했고 이 무렵 <병든 바쿠스>를 제작했다. 아픈 자신을 거울에 비추고 관찰하여 그렸다. 그는 병을 이겨내리라는 걸 알았을까? 다행히 병을 이겼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기질 때문에 걸핏하면 싸움에 휘말리면서 도망자로 살게 됐다. 그런데도 재능은 특출 나서 그림 주문은 끊이지 않았다. 바로크 화가 중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는 거의 없었다.
카라바조는 훗날 자신의 무절제를 후회했지만 삶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했다. 아깝게도 그는 3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어쩌면 그는 잠시 병을 불러 세운 뒤 죽음을 미뤘던 것일지 모른다. 결국 말라리아로 사망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병의 노예로 살진 않았다. 그는 삶의 주인이었다.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은 삶의 작은 공간으로 부터 희망을 함께 나누는 큰 길로 통하는
‘길목‘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100-845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3길 27-5(을지로2가 164-11) * 손전화 010-3330-0510
이메일 gilmok@gilmok.org * 웹진 www.gilmokin.org * 홈페이지 www.gilmok.org
후원계좌 * KEB하나은행 101-910034-06504(예금주:사회적협동조합 길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