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신황제의 딸>을 다 봤다.

자미와 제비(건륭제에게 친딸 자미의 유품을 전달하려다가 건륭제가 유품을 보고, 자신의 딸로 오해해서 ‘환주공주‘가 됨.)
일행은 건륭제의 비인 향비를 궁에서 탈출시킨 죄와 자미와 제비를 궁에서 제거하기 위해, 자미의 친척을 동원해서 황제의 친딸이 아니라는 가짜 정보를 내놓은 황후의 농간으로 때문에 북경을 탈출하고 남양으로 피신했는데, 건륭제가 제비와 자미의 내시와 궁녀와 일행의 아버지까지 데려와서 북경으로 돌아갈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자미 일행과 친어머니의 간곡한 편지에 흔들린 오왕자 영기는 돌아갔다. 하지만 제비는 만주의 청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한인 부모의 존재를 알려준 친오빠를 찾았고, 궁궐의 권력다툼에 환멸을 느꼈다는 이유로 북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친오빠 소검과 제비의 친구 영국인 벤자민과 함께 소검의 거처인 대리(오늘날의 운남성)으로 왔는데, 이 지역 소수민족 백의의 환영을 받고 평화롭게 산다. 하지만 윈난(과 구이저우, 광씨장족자치구)의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대리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대리국(대리석이 이 지역의 특산품이다.)은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에 오늘날 동남아시아 국가 미얀마와 라오스, 타이가 되는 소수민족의 대규모 이동을 유발했고, 이후에 한인 왕조 명에 맞섰으며, 19세기에도 청에 맞선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다른 소수민족 지역과 비교해서는 큰 갈등이 없고, 시진핑이 방문하면, 환영식에 대규모로 동원된 소수민족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드라마에서 소검과 제비 일행을 환영한 백의인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대리에서는 실제 건륭제와 용비(향비의 실제 모델) 초상화를 그린 이탈리아 선교사 낭세녕(본명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중국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등장한다.)의 제자이자 제비의 친구 이탈리아 어머니를 둔 영국인 벤자민(가상인물. 실제 ˝벤자민˝이란 이름의 캐나다 배우가 연기)도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벤자민은 드라마 내내 중국 어린애들에게조차 ˝양귀신˝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만주와 몽골 황실 인사들로부터는 ˝외국인은 참견하지 마라.˝, ˝고급노비˝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중국문화에 동화되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중국을 좋아하고, ˝친구˝ 인 중국인 오황자 영기(황제 계승권리가 있는 친왕이었고, 8명의 자녀를 둔 실존인물인데 젊은 나이인 25살에 죽었다. 그래서인지 <연희공략> 등 청을 다룬 문학작품에 종종 등장한다.)의 부탁을 받아서 제비를 챙기다가 마지막에 제비의 애인 오왕자 영기가 돌아왔을 때 미련없이 영국으로 떠난다. 이는 중화민족주의자 경요의 생각보다는 드라마를 제작한 방송국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공산당의 다음과 같은 의도가 드러난 것 같다.

비록 아편전쟁 이후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는 중국이 불가피하게 서양의 눈치를 봐야했지만, 21세기는 다르다. 특히 2012년 시진핑 지도부 출범 이후의 중국의 방송매체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패배와 미국 내 빈부격차와 인종차별,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의한 수십만의 사망자(중국의 ˝공식통계˝에서는 사망자가 없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백신 접종수치도 22억이기도 하다.) 부각시키며 ˝실패한 국가˝로서 미국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팍스 시니카, 즉, ‘중국의 평화‘ 시대다. 서양은 중국어와 공자 등 중국문화를 열심히 공부하고, 중국의 인권문제를 문제제기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라.

하지만 이 드라마는 서양에게만 말하는 것 같지 않다. 권리 향상을 원하는 중국 민중들에게도 말을 거는 것 같다.

황제의 딸에서 등장한 유교 경전 예운대동편을 공주는 물론, 황제와 관료가 합창하는 내용은 현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유교윤리를 민중들도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소수민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신편의 이슬람교도 향비처럼 청의 공식종교였던 불교미술을 배경삼아 춤을 추듯이 자신의 민족성을 강조하지 말고, 자신의 독특한 문화를 활용해서 통일적 다민족 국가 중국의 발전에 기여하라.

건륭제는 비록 한인의 백련교도의 난을 진압하고 신장 북부에 거주하던 준가르인들을 대량학살한 ˝살인자˝이긴 했지만, 현 중국의 기본적인 영토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존경받아 마땅하다.(이는 소검을 제외한 제비 일행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심지어 가족이 건륭제에 의해 누명을 써서 가족을 잃었다는 것을 모르기 전에 고아였던 제비도 황후를 싫어했어도 자신을 아버지로 따뜻하게 대하는 건륭제를 진심으로 존경했었다. 하지만 제비가 친오빠 소검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듣고 나서 건륭제에게 ˝살인자˝라고 소리지르며,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건륭제가 당시 소검, 제비 부모 살인사건을 재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하고 나서는 건륭제를 용서했다. 하지만 현실은 한인은 만주인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서 분노가 많았다. 그래서 신해혁명 당시에는 많은 한인혁명가들이 만주인들을 동북으로 쫓아내자는 생각에 동조했었다.)

이런 생각은 할아버지가 청 마지막 황제 푸이의 스승이었던 경요도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그는 친중 성향이면서 ˝대만의 트럼프˝로 불린 한궈위를 ˝역대 중국 황제처럼 훌륭하다˝며 지지선언하기도 했다. 한궈위도 경요를 위해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가오슝시를 애정소설문학을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10대 시절의 나는 1999년과 2000년대에 방영한 <황제의 딸>이 다소 과장되고 유치한 내용이 나오긴 해도 활달하고, 할 말하는 제비와 선비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기에 다소 고지식하긴 해도 마음씨가 착한 자미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청의 거대한 영토와 만주인들의 복장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대학에서 중국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뤘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어 교육 열풍이 불었었다. 이 드라마는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을 아주 싫어하기에 미국과 일본과 친한 몽골에서조차 인기가 있었다. 초원이 종종 나오고, 비록 만주인이 중심이었지만, 청 초대 황제 누르하치가 칭기즈칸 가문과 혼인을 했기에 몽골 혈통을 동시에 가졌고, 청 역시 티베트 불교를 믿었다는 점에서 몽골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 모두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이때는 천수이벤에 대한 중국의 무력압박 시도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갈등이 덜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경요가 남편의 병을 간호하면서 생긴 아픔을 극복하려고 처음 황제의 딸 극본을 쓰던 즐거운 시절을 떠올리며 <신황제의 딸>을 썼다. 그래서 구편의 일부 감동적인 장면을 빼고 내용의 7, 80%를 수정한 이 신황제의 딸이 만들어진 2010년대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가 약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중국에서도 티베트나 위구르, 내몽골 몽골인의 저항이 일어나고, 정부도 이를 진압하면서 동시에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어 교육을 강화시키고, 애국주의를 부추겼다. 양안 갈등도 심해졌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이러한 정책에 대한 세계인들도 정당한 반발감을 느꼈다.

나는 박사논문 쓰는 것과, 그 밖에 살면서 느낀 스트레스를 풀 겸 올해 9월 중순부터 ˝신 황제의 딸˝을 정주행했다. 시청하면서 모처럼 웃고, 감동받아서 좋았다.

동시에 나는 서구를 밀어내고 새로운 패권국가로 도약하고, 공산당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중국의 야심 역시 이 드라마에서 은근히 등장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었다.

이제 83세인 경요는 신편을 쓰는 과정에서 내심 양안갈등이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과거 교류가 많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랄 지도 모른다. 구편에서 자미 역할을 했고,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친중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임심여조차 쯔위가 그랬던 것처럼 일부 친중파 대만인으로부터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대만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대만독립론자로 몰렸던 현상황은 확실히 부당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한계가 많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좀더 힘들지라도 좀더 시진핑의 독재에 침묵하고 있을 사람들이 다시 저항을 시작하는 것을 바란다. 시진핑이 헝다그룹 부도문제나 석탄 자원 부족 문제, 혹은 푸젠성 샤먼과 헤이롱장성의 하얼빈 코로나 감염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반대세력이 결집할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대만에서도 독립 주장이 약해질 수도 있고, 과거 중국과 대만의 합작드라마 <황제의 딸>이 탄생할 수 있었던 토대가 만들어지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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