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 수용에 인색한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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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국가들이 난민 발생에 1차적 책임이 있다.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는 아사드 정권의 제거/유지에 상충된 이해관계를 가진 외부 강대국들(미국, 러시아, 프랑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경쟁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난민 발생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가들은 난민 수용을 사실상 거부한다. 그 결과 난민 최대 수용국들은 터키(360만), 콜롬비아(180만), 파키스탄(140만), 우간다(140만) 등이다.
각국 지배자들은 수용 여력 부족을 운운한다. ‘유럽 국경 및 해안 경비대’(프론텍스Frontex)의 예산은 2020~2027년 사이 120억 유로가 늘어난다. 이 액수는 유럽연합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동안 쓴 이민통합기금 약 31억 유로의 네 배에 이른다.
프론텍스는 폭력적인 난민 저지 작전인 ‘푸시백’ 작전을 벌인다. 난민들을 태운 고무보트나 나룻배, 뗏목 등을 터키 영해 쪽으로 밀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무수한 난민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저명한 기아 문제 연구자인 장 지글러는 프론텍스가 난민을 저지하는 폭력 집단이라고 일컬었다.
사실, 한국인들도 난민의 고통을 겪은 역사가 있다. 예컨대 4·3 제주 항쟁 때 많은 제주도민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했고 다시 강제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추방을 모면하면 타국 땅에서 멸시와 차별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론, 그후 한국은 난민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난민이 들어오는 국가가 됐다. 그러나 한국 지배자들은 오랫동안 난민을 배척해 왔다. 문재인 정부도 그 ‘과거’를 이을 테세다. 한국을 찾아온 난민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강요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더러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에 해악적이다.
한국이 그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낳는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불안정 증대 속에서 난민·이주민을 속죄양 삼는 일도 잦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한다면 사회 분위기가 우경화될 수 있다.
이에 맞서는 일은 가능하다. 1980년대 유럽 전역에서 우익이 난민에 대한 적개심을 퍼뜨리기 시작했을 때 인종차별에 맞서는 운동이 벌어졌다. 네덜란드에서 20만 명이 참가한 서명 운동이 추방 위협을 받고 있던 난민들을 구했고 영국에서는 수천 명이 난민 학생들의 추방을 막는 캠페인을 조직했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난민에 연대하는 지역 네트워크들이 생겼다.
난민과 이웃으로 살아가고 이들과 함께 연대하는 경험은 다른 여러 편견을 녹이는 데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난민에 대한 연대는 난민들에게 큰 희망과 위안이 될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뿜어내는 차별과 천대를 끝장내는 투쟁을 구축하는 장기적 과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추천 소책자]
왜 난민을 환영해야 하는가?
김어진·이현주·임준형·차승일 지음, 2019년 8월 22일, 90쪽, 4,000원, 노동자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