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페이스북에 쓴 글

쟈스커지 연대 활동가에게 1989년 천안문 항쟁에 대해 물어보니, ˝노동자, 학생이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도였지만 최종 실패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더 멀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가 처음 ˝자신과 자신의 쟈스커지 연대 단체 활동가들은 소수민족을 존중한다는 말이 떠올랐고, 현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을 차별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그럼 ˝마오쩌둥 때가 진짜 사회주의였다고 생각하냐? 그때도 ‘민족문제는 곧 계급문제다.‘라는 관점으로 소수민족을 차별했다.˝고 묻자, 그는 개인 의견인 걸 전제로 ˝마오쩌둥 때는 소수민족과 한족이 사회주의의 건설자로서 하나였고, 서로 잘 조화를 이뤘다.˝고 답하면서 나에게 ˝마오쩌둥 시기의 신장은 평안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당시 생존자의 글을 보내줬다. 아무래도 그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의 빈부격차가 커지고, 중국정부가 해외진출하는 모습이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오쩌둥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마오주의자인 것 같았다. 조금 아쉬웠지만, 마르크스조차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조차 처음에는 그 사회의 지배사상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그는 ˝천안문 항쟁은 중국정부를 반대하는 시도였기에 진압하는 것이 당연했다.˝, ˝빈곤과 고된 노동, 추상적 사상 강요˝로 마오쩌둥 시대를 기억하는 일반 중국인들과 달리 현 중국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8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운동에 투신해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이야기할 만하고 응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마오쩌둥주의를 지지한다 할지라도 중국의 다른 좌파운동이 사라지거나,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상황에서는 기존의 교육과정에서도 배우는(비록 민중을 급진화시키거나, 동원하는 내용은 가르치지 않지만) 마오쩌둥 이론이 그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일 수도 있다. 레닌조차 처음의 형의 죽음을 계기로 나로드니키(민중주의자)였고, 한국 좌파운동에서 민족해방운동가들이 다수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하고 어려운 조건이지만, 꾸준히 토론하다 보면 스탈린주의가 장악한 중국이 당관료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즉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도 토론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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