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롭 월러스, 너머북스): 감염병 위기를 낳는 자본주의 농축산업 https://wspaper.org/article/245307부 33개 장의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1부 4장 ‘역외 농업의 바이러스 정치학’이다. 이 글은 롭 월리스의 인생에 커다란 변곡점이 된 조류인플루엔자 연구 결과를 대중용으로 풀어 쓴 것으로 바이러스 진화의 배경이 된 중국 광둥성 일대의 역사적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이 탁월하다.7부 1장 ‘숲과 에볼라’는 자본주의적 농축산업이 그 내부에서 독성 바이러스를 키워 낼 뿐 아니라 ‘미개척지’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감염병을 ‘발굴’해 내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현재 코로나19의 기원으로 알려진 박쥐에서 어떻게 천산갑을 거쳐 인간에게 이 감염병이 전달됐는지 단서를 제공한다. 조만간 출판될 롭 월리스의 신간 《죽은 역학자들》(먼슬리 리뷰)에서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길 기대한다.코로나19 국면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무능과 친(親)제국주의적 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데, 롭 월리스는 이런 태도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롭 월리스의 책을 출판한 〈먼슬리 리뷰〉의 편집자 존 벨라미 포스터는 여러 저서에서 엥겔스 이후 마르크스주의 과학자들의 전통을 언급하며,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도 그 계승자로 포함시켜 왔다. 롭은 이들의 제자인 셈이다. 롭 월리스도 책의 곳곳에서 마르크스를 비롯해 그 전통에 있었던 이들의 기여를 언급한다. 다만 이 대목에서 너머북스 출판사와 번역자들에게 아쉬움을 표해야겠다. 원서의 핵심 주제와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듯하지만 번역서에는 원서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누락돼 있다. 역자들이 서문에서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임을 감안해 의학·병리학을 깊숙히 파고든 설명들은 일부 생략했다” 하고 밝히기는 했다. 일부 장의 내용이 지나치게 전문적이라 일반 독자들에게 어려울 수 있음은 저자 자신이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이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여 — 마르크스, 레닌, 데이비드 하비, 이스트반 메자로스 등에 대한 언급들 — 가 상당부분 누락되거나 압축된 것은 특히 유감이다. 분명히 저자인 롭 월리스는 이런 식의 번역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원서의 4부에 있는 ‘붉은 백조’라는 장이 별 설명 없이 빠진 것도 의아하다. 이 장에서 롭 월리스는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비판하며, 탈레브의 역사 이론 비판에 맞서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방어한다. 너머북스 출판사 측이 너무 늦지 않게 완역 개정판을 출판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그럼에도 이 책은 감염병 위기의 원인과 근본적 대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를 끝장내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